"엄마, 목이 아파"

인도 학교 적응기

by 샨띠정

인도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고 시간이 서서히 흘렀다.
이제 제법 한국말로 쫑알쫑알거릴 때가 되었을 거라는 나의 기대와는 달리 샤이니의 말문이 쉽게 터지지가 않았다.
나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한국어로 된 책을 읽어주고, 한국어로 대화를 했는데도 어쩐 일인지 샤이니의 한국말은 좀처럼 트이지가 않았다.

주위에서는 인도 유치원을 보내라고 성화였지만, 나는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먼저 샤이니가 한국어를 좀 습득한 후에 인도 유치원에 보내려고요."
주변에서도 좀 기다려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이러다가 한국어를 잘 못하는 한국 아이가 되면 어떡하지?'
집에서 한국어 발화가 잘 되도록 도와줘야 했다. 그래서 한국에 긴급 SOS를 보냈다.
"디즈니 영화와 아이들 뽀로로 같은 애니메이션 파일 좀 보내주세요."
아무래도 한국어 환경을 만들어 주고, 한국어에 더 노출시켜 줘야 할 것 같았다.
늘 자상하게 잘 챙겨주는 시동생과 제부가 정성스럽게 한국어와 영어로 된 파일을 외장하드에 다운로드하여서 우리에게 보내줬다.
그제야 나는 샤이니에게 뽀로로를 비롯해 '신데렐라, 라이온 킹, 미녀와 야수, 인어공주, 겨울왕국, 백설공주, 라푼젤, 알라딘....'등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샤이니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한동안 아이의 한국어 발화가 조금 나아지는 가 싶었지만, 말문이 시원하게 터지진 않았다.
영어와 힌디어를 사용하는 주변인들 덕분에 샤이니가 힌디어와 영어를 말하기 시작했지만, 정작 중요한 한국어 발화는 되지 않고 있었다. ​

아직 한국어가 서툴지만, 아이가 만 4세가 되었을 때는 유치원을 보내기로 마음을 정했다.
지인의 추천을 받고 처음에 몬테소리 유치원 ‘매직 이얼스(Magic Years)’에 보냈는데, 사실 첫 등원 일부터 마음이 불안했었다. 샤이니의 반짝반짝 빛나는 성품처럼 활기찬 목소리로 “굿모닝”하며 인사를 하면, 선생님은 아주 근엄하고 낮은 조용한 목소리로 “굿모닝, 샤이니.”라며 인사를 했기 때문이다.
‘여기는 절제하며 조용하게 활동하는 몬테소리 유치원이군.’ 난 혼자 생각했다.
“큰소리로 말하면 안 돼, 조용히 있으렴."
하고 내가 샤이니에게 말했다.

난 그렇게 아이가 유치원 생활에 잘 적응한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울면서 말했다.
“엄마, 맴(선생님) 무서워.”
“왜? 샤이니, 왜 무서워?”
내가 다급하게 물었다.
“무서워...”
무슨 이유에선지 겁에 질린 샤이니는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나는 저녁에 아이 목욕을 시키며 샤이니 허벅지에 있는 시퍼런 멍 자국을 발견했다. 그리고 몬테소리 유치원은 아이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더 이상 그곳에 샤이니를 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

그 후에 호주의 유치원 교과과정을 따르는 캥거루 유치원에 아이를 보냈는데, 샤이니가 참 좋아했다. 재미있게 유치원 생활을 해 나가며, 연말에는 시내에 있는 오디토리움(강당)을 빌려서 친구들과 함께 멋진 공연을 발표하기도 했다.
애석하게도 캥거루 유치원은 샤이니가 무척 좋아하는 곳이었지만, 다음 해 우리가 이사를 가는 바람에 유치원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이사한 집 근처에 외국인 아이들도 다니는 유치원이 있었다. 샤이니를 그곳, ‘더 러닝 플레이스(The Learning Place)’에 보내기로 했다. 샤이니는 호주와 미국, 인도 아이들과 함께 아무 문제없이 유치원 생활을 하는 것 같았는데, 한 가지, 그 당시 다른 아이들과 달리 샤이니는 영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하지 않고 있었다.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리지만, 샤이니는 사이클 릭샤(자전거) 타는 걸 좋아해서 줄곧 나와 함께 사이클 릭샤를 타고 다녔다. 그래서 매일 아침이면 릭샤 왈라(릭샤를 끄는 사람)들이 몇 명씩 우리 집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곤 했는데, 그 시절이 지금은 우리에게 추억이 되었다.


드디어 샤이니가 만 6세가 되어 정식 학교를 정해서 유치원 KG에 들어갈 때가 되었다.
샤이니는 간단한 시험을 보고 정식으로 MDIS(Metro Delhi International School)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때는 MDIS에서의 KG 1년 동안이 샤이니와 우리에게 얼마나 힘든 시간이 될지 미처 알지 못했다.

영어와 힌디어, 심지어 한국어도 완벽하게 습득하지 못한 샤이니에게 KG에서의 공부는 너무 힘들었다.
나는 일을 하다가, 때로는 밥을 먹다가 학교에서 오는 전화를 받고 학교로 달려가야 하는 날이 많았다.
어쩌면 미국 학제를 따르는 국제학교는 샤이니에게는 벅찬 과정이었던 거 같다.

“딸, 학교는 어때?”
“힘들어..”
“뭐가 제일 힘들어?”
“엄마, 목이 아파... 목이 자꾸 아파.. 여기가..”
“그래? 목이 왜 아프지?”
“엄마, 말이 잘 안 나와..”
샤이니는 영어로 말하는 게 많이 힘들었나 보다.
선생님은 샤이니가 수업 시간에 자주 화장실을 간다고 걱정을 하셨는데, 난 그 말이 너무 가슴 아프게 들렸다.

아이가 숨 쉬는 공간이 화장실이었구나.
그렇다, 우리 샤이니는 목이 아프고
숨이 막힐 때마다 화장실로 가서
스스로 해소를 한 게 분명하다.'
화장실이 샤이니에게는 도피처였나 보다.

학교에서는 샤이니에게 영어만 말해야 한다고 했고, 우리에게도 집에서 영어로만 대화를 하라고 강요했다.
나는 안 된다고, 집에서는 한국말을 해야 한국어를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설득했지만, 선생님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인도에서 깊은 고민에 빠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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