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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띠정 Jan 11. 2024

읍내 병원 원장님

시골에서 눈이 내리면 생기는 일

시골에서 겨울을 나는 동안에는 포근하고 따스한 일도, 힘겹고 추운 일상도 함께 한다.

함박눈이 내리는 모습은 동심을 깨워 폭신하게 내려앉은 하얀 눈이 한없는 행복을 주다가도 금세 쌓인 눈을 치워야 하는 중압감으로 사로잡아버리고 만다.


마냥 행복해할 수만은 없는 시골의 눈 내리는 날이다. 최근 들어 눈이 자주, 그것도 많이 내린다. 남쪽이야 덜하겠지만 용인에서도 끝자락 산간지역인 이곳은 더 많이 온다. 그나마 이제 어느 정도 요령도 노하우도 좀 생겨가고 있다. 여전히 마음을 무겁게 하는 상황이기 되고 말지만 말이다.


눈이 내리는 순간에는 그저 눈 오는 풍경을 즐긴다. 그렇게 하는 게 정신 건강에도 좋고, 마음의 기쁨을 맘껏 누리도록 내버려 두는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인 셈이다. 그러다가 한참 시간이 지나 눈이 소강상태에 들어가면 쌓인 눈을 언제 어떻게 쓸어야 할지 궁리하며, 가능한 힘들지 않게 처리할 수 있도록 나름 전략을 짠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 일에 항복하게 되는 순간, 어쩌면 우리는 시골 삶을 청산해야 할지도 모를 테니까.


길가와 앞마당, 안쪽 주차장, 데크, 들어오는 입구, 계단, 거기에다 바깥 주차장까지 눈을 그렇게 눈을 다 치우려면 한 시간이 훌쩍 흘러버린다. 남편과 딸아이에게 구역을 정해서 사이좋게 서로 마음 상하지 않게 배려하는 것은 꼭 지켜야 할 우리의 황금률이다.

시골의 눈 오는 풍경

아무튼 운동삼아 한다고 위안을 하면서 치우던 눈이지만, 결국 어깨에 병이 나버렸다. 거기에다 원고를 교정하며 마무리하는 단계라 마우스를 많이 썼더니 오른쪽 어깨가 너무 아파서 움직이기도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일단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고 싶었다.

아픈 어깨를 짊어지고 북카페 오픈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일이 더 생겼다. 우리 집 반려견 꽃순이와 백설이 모녀가 내 곁에 와서 서로 장난을 치더니 격하게 몸을 치대며 놀기 시작했는데, 내 다리 옆에서 흥분해서 둘이서 야단법석이었다. 마치 싸우기라도 할 듯이 뛰면서 놀더니, 순간 내 다리가 따끔하고 아파왔다. 뭔가 일이 있었다. 강아지 입질이 분명했다. 화장실에 가서 보니 청바지 속으로 다리를 보니 부어오른 자욱이 보였다. 일단 병원에 가려던 참이니 의사 선생님께 여쭤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확인을 하는 게 좋을 거 같았다. 다행이다 싶었다.


읍내에 있는 두 개 의원이 있는데 두 병원의 원장님은 성향이 완전 반대시다. 나는 상황에 따라 두 병원을 다 이용하고 있어서 두 분을 뵈면 어쩌면 저리도 다르실까 하며 혼자 실실 웃기도 했다.


한*의원 원장님은 그 바쁜 진료시간에도 환자들에게 농담을 건네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시며, 환자들에게 친근감 있게 대하신다. 편안하고 유쾌한 의사 선생님이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조정석이 연기했던 이익준 선생님 같은 분이다.


한편 다른 기*의원 원장님은 군말씀을 안 하시고, 진료시간에 정확한 질문과 처방을 내리시며 깔끔하게 진료하시는 분이시다.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정확하고 칼 같은 느낌의 빈틈없는 모습이 완벽을 추구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정경호가 연기했던 김준완 선생님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포근한 걸 좋아하는 꽃순이

아무튼 두 병원은 모든 면에서 비슷하다. 물리치료나 백신 접종도 같이 하고 있으며, 각각 약국을 하나씩 곁에 두고 있다. 그러니까 읍내에는 두 개의 의원과 두 개의 약국이 있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기*의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운전하고 가다가 마음 내키는 곳으로 가거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그저 내 마음대로 간다.


여전히 미소를 삼켜버린 근엄한 모습의 기*의원 원장님은 내 어깨의 승모근이 아프다고  물리치료와 약을 처방해 주셨다.


"또 어디 이상 있으세요?"

원장님의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강아지의 입질로 다리가 부었다며 미리 찍어둔 사진을 보여드렸다. 보여드리기엔 쫌 불편했던지라.


"다행히 상처가 덧나거나 그러지는 않았네요. 광견병 예방주사만 맞았으면 괜찮을 거예요."

원장님의 말씀이 끝나고, 나는 대답했다.


"광견병 주사는 안 맞았어요. 그럼 파상풍 예방  주사를 맞아야 할까요?"

"파상풍 접종은 상처가 덧나거나 할 때 예방차원으로 맞으니까 안 맞아도 됩니다. 한번 두고 봅시다."

"그럼 아예 광견병 예방 주사를 맞을게요."

갑자기 내가 광견병 예방접종을 받으려고 부탁을 드렸다. 오래전 인도 가기 전에 광견병 예방접종을 받은 게 생각이 났다.


"광견병은 사람이 맞는 게 아니에요. 못 맞아요. 개만 맞을 수 있어요."

"그래요? 그럼 우리 개들은 광견병 예방접종을 했어요."

"그럼, 괜찮아요. 혹시라도 상처가 생기면 오세요. 두고 봅시다. 그때 가서 항생제 처방을 받으면 되니까요."


물리치료실 침대에 누웠는데, 원장님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혼자 침대에서 웃음보가 터졌다.  내가 무슨 소릴 한 건지 나 스스로가 웃겼다. 내가 광견병 주사를 맞겠다고 하다니.

기억을 더듬어보면 인도에 가기 전에 접종받았던 광견병은 인천공항에서만 가능한 거였다. 일반인들이 광견병 예방접종을 받는 것은 한국에서 어려운 일이란 걸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게다.


실낱 같은 웃음기 하나, 손톱만큼만 한 미소 하나 보이지 않고 대답과 질문을 이어가시던 기*의원 원장님의 얼굴을 생각만 해도 웃음이 터져 나온다.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웃음소리를 꾹 참느라 애를 먹었다.

저녁 밥상을 물리고 약봉지를 열면서 혼자 낄낄거리며 또 웃었다.


나는 바보 사촌인가?

아니 겁쟁이다.


다행히 실수로 콕 했던 입질로 살짝 멍자욱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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