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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띠정 Feb 27. 2024

북카페에서 시작된 한국어 교실

가슴 뛰는 한국어 수업

올해 1월부터 백암면 주민자치센터에서 주중에 외국인들을 위한 한국어 교실을 하기로 프로그램을 개설했는데, 폐강되었다. 외국인들이 그렇듯 대부분 주중에는 일터에서 일을 하고 있기에 한국어를 배우러 올 외국인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20명 모집에 최소 15명이 와야 하는데, 인원을 채우지 못하고 말았다. 면사무소에서 진행하는 주민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보니 주중에만 일정을 짜야했기에 직장을 다니는 외국인들은 주말에만 시간을 낼 수 있다고 했기에 그러했다.


그런데, 꼭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기다리던 중국 여성들이 있었다. 주민자치센터에서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어떻게든 수업을 시작해서 한국어를 가르쳐 주고 싶었다.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 담당자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한국어 교실을 그냥 북카페에서 하면 어떨까요? 장소가 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전화를 받은 나는 가슴이 뛰었다. 주민센터에서 하면 공신력도 있고,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편하니 더없이 좋겠지만 내가 바라던 대로 우리 북카페에서 수업을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사실 나는 처음 북카페를 준비할 때부터 외국인들을 위한 한국어 수업을 위해 작은 교실을 만들었다. 긴 책상과 큰 화이트보드를 벽에 붙여서 언제든 수업을 할 수 있도록 해 둔 것이다. 드디어 흰색 칠판에 판서를 하며 한국어 수업을 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속 깊이 잠재워 둔 꿈이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와 춤을 추는 듯했다.

주민센터에서 한국어 수업이 폐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쉬워하던 중국 여성들에게 서둘러 연락을 했다.

"우리 북카페에서 수업할까요?"

정말 한국어를 잘못하는 중국 본토의 여성들 중에 매* 씨는 그나마 나와 소통이 어느 정도 가능했다. 그녀를 대표로 수업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는 주민센터 프로그램과 같은 시간인 수요일과 금요일에 수업을 하기로 했다. 일단 주민센터에서 정한 수강료로 월 삼만 원에,  기초반은 우선 그렇게 시작하기로 했다. 수업은 무조건 기본적으로 적더라도 수강료를 내야한다는 나름의 신념을 지니고 있던 터였다.


1월에 그렇게 중국인 여성 5명이 수업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설날이 되면서 중국에 다녀오겠다고 세 명이 가고, 남은 두 명이 수업을 하고 있는데 계속 친구들을 데리고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벌써 지금은 10명이 채워졌다.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모르겠다.


수강료 삼만 원이 너무 적다고 안타까워하는 지인들도 있지만, 돈을 내고 한국어를 배우려는 그녀들이 너무 대단해 보이기만 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 대부분의 많은 외국인들은 무료로 배우는 한국어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백암면 주민자치센터에서도 몇몇 결혼 이주여성들이 신청하러 왔다가 매월 삼만 원에다 3개월씩 분기별로 9만 원을 내고 등록을 해야 한다는 말에 그냥 포기하고 돌아갔다고 내게 전했다. 돈을 내고 공부하려는 외국인이 없다고 다들 무료로 배우려고 한다며 마치 불 보듯 뻔한 결과라 여기는 듯했다. 나도 실망의 그림자를 감추기 어려웠다.


그런데, 교재비를 내고 월 수강료를 내면서 공부하겠다는 여성들이 있으니 어찌 사랑스럽지 않겠는가?

꽃신을 벗어던지고 버선발로 뛰어나가 반갑게 손을 붙잡아 꼭 끌어안고 싶은 심정이었다. 바라던 일이 시작되어 감사하다. 지금은 날씨가 추워서 걸어서 오기엔 거리가 멀어 지금은 내가 수업 전에 차로 태우러 가고, 끝나면 다시 데려다 주기를 반복하고 있다. 택시비라며 내게 교통비까지 건네는 그녀들의 마음이 예쁘고 고맙기만 하다.


젊은 중국 여성들이라 배우는 속도가 빠르다. 발음이 어려워서 연습을 반복하며, 열심히 노력하는 그녀들이 대견하고 아름답다. 나도 중국에 몇 차례 다녀온 적이 있어서 간단한 회화 정도는 배운 적이 있지만, 중국어를 잘 몰라 가능한 한국어로 한국어를 잘 가르치려고 애쓴다. 답답할 때는 혼자 생각한다.

'내가 중국어를 제대로 배웠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요즘은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나도 간단한 중국어를 그녀들에게서 배운다. 이참에 중국어 공부를 시작할까 하는 포부도 가져보면서.

한국어 수업

수업을 하면서 조금씩 친밀해지고, 아직 한국어로 대화가 어렵지만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서로의 삶 속으로 조금씩 서서히 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아픔도 보게 된다.

학생 중에 두 여성은 한국인 남자와 결혼했지만 이혼을 했다. 한 사람은 아이가 있지만 남편과 시어머니가 키운다고 했다. 다행인지 다른 여성은 이혼을 했지만 아이가 없다고 했다.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왜 이혼을 했어요?"  

그녀가 대답했다.

"나 한국어 못해요. 남편 중국어 못해요. 그래서 많이 싸웠어요. 그리고 이혼했어요."

떠듬떠듬 한국어로 내게 이야기했다. 대화가 통하지 않은 가정생활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보지 않아도 내 눈으로 보는 것만 같았다. 언어가 통해도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을 때 얼마나 답답하고 고통스럽지 않은가? 하물며 언어가 아예 다르니 어떻게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타국에 와서 결혼을 했지만, 이혼해서 홀로 생활하는 그녀들은 풀잎처럼 가녀리게 보였다.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해서 겪어야만 했던 그녀들의 고통이 애처로이 흔들리고 있었다. 돈을 내고서라도 기필코 한국어를 잘 배워서 열심히 살아보겠노라고 다짐하는 그들에게는 강한 생명력도 함께 했다.


꺾이지 않는 그녀들의 삶과 의지가 대나무처럼 곧아 보이기까지 했다. 포기하지 않고, 이 땅에 남아있는 그녀들의 인생을 응원하고 싶어졌다.


속으로 나는 박수를 보내고 있다.

더 열심히 잘 준비해서 좋은 선생님이 되어주겠다고. 잘 가르쳐 주겠노라 다짐한다. 

그러면서 북카페꿈꾸는 정원에서 꿈을 꾼다.

그녀들이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그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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