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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띠정 Apr 15. 2024

OBS 촬영을 하다

북카페가 방송에 나가면

전화가 걸려왔다. 아니 말하자면 부재중 전화가 남겨 있어서 시간이 지나서야 내가 전화를 걸었다. 혹시 중요한 전화를 놓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망설이다가 건 전화였다. 수화기 너머에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무슨 방송국이라고 했다. 이번엔 내 목소리가 더 조심스러워졌다. 잘 알아듣지 못한 나는 다시 반문했다.

"네?..."

"정** 선생님이시죠? obs 방송국입니다."

무슨 일로 내게 전화를 했는지 호기심이 달음박질쳤다. 진짜 방송국이 맞기는 한 건지 궁금하기도 하던 차에 차분하게 자신을 방송 작가라고 소개하며,  오마이뉴스에 실린 내 기사를 보고 연락을 했다며 양해를 구해왔다.   


내용인즉슨, 북카페에서 시작된 한국어 교실에 대한 내 기사가 감동이 되었다며, OBS 경인방송 '이것이 인생'이라는 프로그램을 위해 북카페에 와서 촬영을 하고 싶다는 거였다. 갑자기 작가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얼떨떨해서 뇌가 작동을 멈춘 듯했다. 그저 내게 묻는 여러 질문에 대답만 해줄 뿐이었다. 아무래도 작가님은 내 대답을 토대로 이야기를 구성해 가는 듯했다. 아직 나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말이다. 회의를 거치고 촬영 날짜를 알려주겠다고 하며, 한 가지 요청을 해왔다.


"중국 여성들이 한국어 수업하는 모습도 촬영하고 싶어요. 혹시 중국인들이 텔레비전에 모습이 나와도 괜찮은지 물어보고 허락을 받아주시겠어요? 원하지 않는 분들은 카메라에 잡지 않을 거예요. 꼭 연락 주세요."


일단 나는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중국 여성들에게 의사를 물어보겠노라고 답했지만, 왠지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행히 중국 아줌마들은 미인인 데다 촬영 일을 알려주면 화장을 하고 오겠다며 신나 하는 서너 명이 있었다. 나만 괜찮다고 하면 촬영을 하게 될 텐데, 내 속에서 불편한 마음이 가시지 않은 채 고민에 잠겼다.  


밤새 뒤척이며 깊이 잠들지 못했다. 생각이 꼬리를 물며 방송국 촬영을 할 만큼 보여줄 것도 없고, 근사하지도 못한 북카페라는 생각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특히나 요즘 내 고민은 더없이 깊어갔다. 취미로 북카페를 운영하기엔 손실이 크고, 운영은 그런대로 한다고 하지만 수익이 나지 않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22년 7월 2일 북카페 꿈꾸는 정원을 오픈하던 날엔 적어도 10년 이상은 충분히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으리라 호언하며 자부했지 않던가? 어떤 걱정들, 시골이라는 부족한 입지 조건에 걱정을 표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좋은 곳이면 멀리서도 찾아올 거라는 낭만적인 꿈을 꾸고 있었기에.

이제 북카페가 문을 연지 곧 2년이 되어간다. 여전히 나 스스로를 자원봉사자라고 부른다. 내 인건비를 가져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고민이 차올랐다.


날이 밝아 아침에 되었을 때, 조금 더 해가 중천으로 올라가기를 기다렸다. 이미 나는 마음을 정하고 있었다. 프로그램 담당 작가님께 어떤 답을 드려야 할지 파도치는 깊은 갈등 속에서 결론을 도출해 냈다. 내가 전화를 걸지 않자, 내 핸드폰의 진동소리가 들렸다. 기다리다가 먼저 물어오셨다.


"중국 여성들에게 촬영 허락을 받으셨는지요?"

"네, 몇 분은 괜찮다고 오히려 좋아해요. 그런데...

사실 제가 좀 문제예요."


방송 작가의 밝은 목소리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세요?"

"제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때가 아닌 거 같아요. 제가 너무 부끄럽고 카메라 앞에 설 자신이 없어요. 죄송합니다."


아쉽고 안타까워하던 작가님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했다. 어깨에 걸려있던 돌덩이 하나가 떨어져 나간 기분이었다. 부담이 사라졌다.


' 내가 무슨 방송국 촬영을 한다고...'          


그렇게 얼마 정도 시간이 흘렀다. 따사로운 봄 햇살이 살갗을 간지럽히던 주일 오후, 가까운 교회 집사님 부부와 해물칼국수를 먹으며 일상을 이야기하다가 방송 촬영을 거절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랬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힘주어 말했다.  


"그런 걸 왜 안 해요? 홍보비가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당연히 해야죠. 빨리한다고 연락하세요. 얼른."

"그럴까요? 해야 하나?"

"당연히 해야죠. 왜 안 해요. 꼭 해요."


여전히 고민은 한가득, 숙제도 한가득, 부담도 한가득이었지만 한번 도전해 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독일의 루터가 했던 말처럼, 나도 오늘 내 앞에 놓인 그 일을 하리라고, 작은 실천을 옮기기로 했다.


월요일 아침, 작가님께 전화를 드렸다. 제가 한 번 해보겠다고. 두렵고 부끄럽지만 한번 시도해 보겠노라고. 잘 도와 달라며 촬영에 응하겠다고 했다.


바로 촬영 날짜가 정해졌다. 촬영 감독님이 오셔서 인터뷰와 전체 촬영을 진행하기로 한 날은 마침 비가 내렸다. 튤립 꽃봉오리가 막 입을 벌리고 꽃을 피우려 하던 수요일 아침엔 봄비가 대지를 적셨다.

북카페 초봄의 꽃밭

빗소리를 들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날씨가 좋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남았다.


중국 여성들은 예쁘게 화장을 하고 고운 옷을 입어 단장을 하고는 상기된 얼굴로 한국어 수업에 왔다. 나도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화장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지만 그냥 평소처럼 편안하게 가기로 마음먹었다. 갑자기 화장을 진하게 할 수도 없고, 정장을 입고 수업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남편과 함께 인터뷰에 대답하랴, 수업하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언제 어떤 질문이 날아올지 예측할 수 없었다. 또 어떤 모습을 촬영하고 계시는지 일일이 신경을 쓰기도 어려웠다.

북카페 한국어 수업

나중에 수업이 끝나고 마지막 인터뷰를 끝낸 내 얼굴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에 챙겨 발랐던 입술의 립밤은 어느새 다 지워지고 그야말로 있는 그대로 생얼 그 자체였다. 의상은 또 어떠한가? 계절이 애매하여 이도 저도 아닌 봄옷과 겨울옷의 경계에서 우중충하기만 했다.

감독님께 연락을 드렸다.


"제가 화면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자연스럽게 간다는 게 너무 맨얼굴에다가 의상도 칙칙하고 도움이 안 된 거 같습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말씀을 너무 예쁘게 잘해주셔서 저는 너무 좋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작가님이 내 걱정 소리를 듣고 전화를 걸어왔다.

"제가 편집 화면을 봤는데, 너무 자연스럽고 북카페 색깔도 너무 예뻐서 좋았어요. 정말로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도 텔레비전인데 예쁘게 나오도록 최소한 준비를 해야 했는데, 아쉽다고 했더니 예쁘게 나오려면 숍에 가서 풀 메이크업을 받고 왔어야 한다며,  그렇게 하면 오히려 부자연스럽고 이상하다고 나를 달래주기까지 했다.


얼굴이 돼지처럼 나오든, 뚱보처럼 나오든, 이제 내 손을 떠났으니 맡기기로 하자.

언제 외모에 신경을 썼다고....


방영은 5월 중이라고 한다. 경인 지역은 경인방송 OBS '이것이 인생'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나가고, 지방에는 MBC 지역 방송에서 방영된다고 하니 기다려 보기로 하자.


나는 그때까지 북카페 운영을 잘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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