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이 되어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는 일은 진땀 흘리는 그 어떤 일이기도 하다. 도전과 의욕만으로는 극복해야 할 험난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미 살아온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예상할 수 있기에 더욱이 그렇다.
그러나 누구나 착각을 하곤 한다. 새롭게 닥칠 그 엄청난 과업을 다른 사람들과 달리 무언가 특별한 존재로 자신에게 가치를 부여하며 벅찬 기대와 희망으로 모든 상황을 미화시켜 버리고는 누구보다도 용감하다.
바로 내가 그러했다. 나는 그렇게 용감무쌍하게, 다르게 표현하자면 무식해서 시골에서 북카페를 열게 되었다. 그때는 해외생활을 오래 하다가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었다. 세상 물정에 심히 약한 상태에서 부푼 가슴을 부여잡고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앞으로 전진을 외쳤다. 하늘을 찌를 듯한 자신감을 품고 말이다. 조금은 두려웠지만, 설렘과 기대가 그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덮어버리기에 충분했다. 넘치도록 풍성했던 희망을 뒤집어쓰고 있었으니까.
북카페가 나의 마지막 종점이 되리라고 모든 영혼을 갈아 넣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끌어모아 좋은 열매들을 맺기 위해 노력하고 힘썼다. 수많은 일거리들을 즐겼다. 씩씩거리며 숨이 차다가도 다시 일어났다. 아무것도 없던 정원과 북카페 마당은 날마다 새로운 꽃들로 가득하고, 메뉴도 궁리를 거쳐 연구하고, 우리만의 맛있는 커피와 음료, 샌드위치를 만들어냈다. 이웃들과 사람들에게 좋은 프로그램을 준비해서 알리고, 강사와 작가님들을 섭외하여 모셨다. 인도 축제와 가을 음악회, 북토크와 특강을 준비하며, 한 사람 한 사람 찾아와 주는 이들이 너무 귀하고 감사했다. 많은 이들이 호응해주지 않으면 조바심에 발을 동동 구를 때도 많았지만 말이다.
그중에서도 독서모임은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다.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을 기다리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그 시간들에 충만함을 느낀다. 물론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 있는 중국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 수업 시간은 내게 활기찬 기운을 주며, 기쁨을 얻게 되는 소중한 만남의 장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내 이름으로 내가 쓴 책을 출간했다. 서점에 내 책이 자리 잡고 있는 걸 보면 흥분이 되어 가슴이 뛰었다. 내가 꿈꾸던 교보 문고나 종로서적, 그리고 두란노 서원과 생명의 말씀사에 놓인 내 책을 바라보는 순간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온라인으로 책을 검색해서 누구든 책을 사 볼 수 있게 된 자부심을 갖게 한 또 하나의 자식을 낳은 느낌이다.
저자의 사인을 해준다는 그 놀랍고 부끄러운 일에 스스로 토닥였다. 볼이 붉어지고 손이 떨리는 일이지만, 그 특별한 경험을 한 번으로 그치지 말자고, 앞으로 계속 글을 더 써보자고 자신에게 말을 건넨다.
내가 낳은 이 책이 부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길 바라는 무명작가의 거대한 희망사항을 품고 소원을 빌어본다.
서점에서
아무튼 그러한 모든 시간을 경험하며 TV에도 나오고, 촬영 섭외도 여럿 들어오는 경험도 했으니 나름대로 꽤 잘 짜인 북카페를 운영해 온 듯하다. 성과도 꽤 컸다. 다만 수익을 내는 데는 실패했다고 해야겠지만. 나처럼 재정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이 운영하기에는 덩치가 너무 커서 기운이 달렸다.
그렇게 나는 이 북카페를 운영하는 이곳이 내게 끝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지니고 있었다. 인생의 끝을 감히 예단하다니. 어떻게 우리가 바로 다음 발걸음을 옮기게 될 여정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누가 감히.
이제는 이곳이 내게 끝이 아니라 거쳐가는 과정에서 만난 소중한 선물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순순히 인정하게 된다.
끝은 없다. 과정일 뿐. 지금도 과정을 거치며 다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뿐이다.
언제든 작별할 마음의 준비를 하며, 어느 곳에서든 또 다른 꿈꾸는 정원을 가꾸며 일구는 새로운 미래를 맞이할 준비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