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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띠정 Aug 16. 2024

빼기 연습 중

허영의 흔적들

 어쩌면 나는 허영으로 부풀어 올라 있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불현듯 몰려오는 순간이 잠시 내게 머물다 가곤 한다. 아니라고 애써 부인해 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니 숨겨진 허영덩어리 뭉치가 하나 둘 눈에 띈다.

소박한 척, 알뜰한 척, 심지어 겸손한 척, 청빈한 척했던 내 모습을 부인할 수가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즉, 모두가 그렇다는 게 절대 아니다. 내가 북카페를 운영하겠다고 마음먹고 꿈을 갖게 된 그 자체가 허영의 시작점이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나 북카페를 시작할 수 있는 게 아닐 텐데,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지금 생각해도 놀랍고 어이가 없기도 하다.


당근 마켓에서 테이블과 의자를 사다 나르고, 돌아보면 불필요한 것들 까지도 북카페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말로는 대형 유명 카페처럼 크게 인테리어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큰소리치면서도 다른 모양으로 투자에 투자를 이어갔던 것이다. 더하기만 주야장천   한 결과는 영국과 인도에서 살며 모아 둔 온갖 본차이나와 핸드 크래프트(수제 장식품)로 북카페가 꽉꽉 채워졌다.


화분들을 얼마나 많던지. 죽어가는 화분들까지 아까워서 살리는 노력을 더해 북카페 앞 데크나 실내에도 화분들이 넘쳤다. 거기에다 봄이 되면 정신이 혼미해져서 꽃들에 빠져버렸던 나는 새로운 화분을 만들어 냈다. 너무 많은 식물들이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전체가 실내로 들어오는 사태가 일어났다. 마치 실내 정원을 이루어 북카페 꿈꾸는 실내 정원이 되는 듯했다. 물론 겨울에도 초록정원이 꽃들과 연출되면 그야말로 정원의 이름을 충족시키기에 안성맞춤이겠지만, 복잡해진 실내는 답답함과 비좁음을 남겼다.


텃밭과 세 개의 정원은 어떠했던가? 월동하는 아이들을 계절마다 데려와 심었더니 얼마나 예쁘고 건강하게 잘 자라는지 내게 커다란 행복을 준다. 하지만 불과 두 번째 봄을 맞이하는 순간 정원에서 비좁다고 아우성치는 꽃들의 부르짖음이 들려왔다. 먼저 자리를 차지하는 꽃과 식물들은 날로 무성해졌으며, 늦게 올라오는 꽃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마치 투쟁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돌보는 내 손길에 의해 자리를 잡아가며 한숨 돌리는 꽃밭과 식물들을 보며, 나는 나의 과한 욕심과 허영을 다시 한번 보게 된다.


상추와 방울토마토는 어떠한가? 텃밭에서 주렁주렁 열매 맺고 탐스럽게 피어나는 상추잎은 얼마나 많은지, 미처 우리 식탁에 올라오지 못하고 텃밭에 덩그러니 남겨지기 일쑤였다.

딸기는 어떠한가? 끝없이 번식하여 수많은 딸기를 제공하던 딸기밭의 새콤달콤한 딸기를 미처 다 따지 못하고 지나가버리기도 했다. 지금도 매해 쑥쑥 자라나 잘라 달라고 눈치를 주는 부추를 나는 오늘도 눈길만 주고 스쳐 지나와 버리고 말았다.


예뻐서 처음에 뿌렸던 코스모스와 메리골드, 나의 울타리 영국 장미들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그리도 번식을 잘하는지, 그 생명력에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리고 말았다. 수북이 올라온 코스모스와 메리골드를 데려가라고 밴드에 올려서 나눔을 해도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한때는 우리 집에 반려견 10마리가 같이 생활하지 않았던가? 울면서 새끼 강아지들을 입양 보내느라 힘들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찔하다.


북카페의 메뉴는 얼마나 다양했던가? 모든 사람의 마음을 만족시키기 위해 온갖 맛있는 메뉴를 준비하지 않았던가?


나는 이제 빼기를 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더하기는 잠시 절제하고 빼기에 집중하는 것이 내게 유익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올해는 텃밭에 모종 수와 종류를 대폭 줄였다. 화분도 비워냈다. 특히 코스모스와 나팔꽃, 메리골드, 사랑꽃, 카모마일, 애플민트와 페퍼민트, 때론 샤스타데이지까지도 뽑아서 그냥 풀무더기 위에 던져버리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풀꽃 하나도 너무 예뻐서 뽑아버리지 못했던 내가 이제 꽃들도 정리하게 된다. 크게 성장한 게 분명하다.


북카페 프로그램들을 계속 진행하고, 지역 주민들과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창출해서 제공해주고 싶어 하던 내 의욕과 허영은 올해 초 있었던  '사춘기 부모를 위한 특강'을 마지막으로 멈추어 섰다. 현재는 그저 오프라인과 온라인 독서모임만을 위한 마음을 쏟고 있다. 프로그램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빼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심지어 내가 출간한 '김치가 바라본 카레세상 인디아'  출간 기념  북토크를 계획했다가 과감하게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봄에 있었던 OBS 촬영을 하고, 또 다른 방송 촬영 제안이 들어왔지만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고 단호히 거절했다. 빼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하는 순간들이었다. 여전히 내게 더하기에 대한 유혹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 내 안에 있는 허영의 흔적은 무엇이든 하나하나 찾아내어 거품을 빼고 싶다. 인정받고 싶고, 칭찬 듣고 싶고, 잘하고 싶은 욕심도 털어내고 싶을 뿐이다. 더 간소하고 간편하게 살고 싶다. 다 빼고 나면 다시 중요한 것들을 정돈하여 채워나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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