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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띠정 Oct 23. 2024

나는 무엇으로 불려지는가?

불편한 이름과 호칭

 "사장님~"

누굴 부르는 소리가 뒤통수를 자극했다. 정작 대답해야 할 본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채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사장님이 되어 있었다. 북카페 대표가 되었다. 그 호칭이 내 마음을 아래로 끄집어 당기며 숨을 곳이 있다면 몸을 감추고 싶었다.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내 어깨를 짓눌렀다. 그렇게 나는 사장님이 되어 있었다. 그리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만 같았다. 나는 어서 벗어던져 버리고 다른 빛깔의 옷을 걸치고 싶은 심정을 구겨 넣었다. 모른 척하고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면서.


북카페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불렀다. 썩 내키지 않았지만 나는 줄곧 아무렇지 않게 받아 들어야만 했다. 북카페를 준비하면서 미처 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앞으로 불려질 나의 호칭에 대해서. 그것이 그토록 무겁고 장엄하며 클 줄이야.


귀국해서 출석하게 된 교회에서 나를 '집사님'으로 부르는 이들이 생겼다. 북카페에서는 '사장님'이 되고, 교회에서는 '집사님'이 된 것이다. 나는 그 '집사님'이라는 호칭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집사 직분을 받은 적이 없는데, 그리 부르면 편한지 나를 그렇게 불렀다. 그 또한 어색하고 무거운 갑옷을 걸치는 기분이 나를 덮쳤다. 벗고 싶었다. '제발 나를 집사님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외치고 싶었다.


'별 거 아닌 호칭에 불편한 마음이 들다니. 그게 뭐 대수라고. 그냥 그러려니 해야지. 그런 걸로 신경 쓰지 말자고.' 나 자신을 다독였다. '아줌마'라는 호칭이 아무리 싫다한들 길가에 나가면 나는 그냥 '아줌마'인 것처럼.


내 이름은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름을 불러주는 이가 파도에 휩쓸려 사라지는 모래알처럼 스르륵 바닷물 깊숙한 곳에 서서히 가라앉는 것만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주 가끔씩 만나는 친구들이 "은경아~"라며 내 이름을 불러준다는 거다. 부모님과 함께.


'정은경 선생님'처럼 '정은경 사장님'으로 불려졌다면 기분이 좋았을까?


이곳 시골에서 만난 소중한 이웃 미아 씨는 수십 마리의 길고양이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그들을 돌본다. 그녀의 집은 마치 동화 속 풍경을 연상시키는 꿈같은 장소가 되었다. 디자인 일을 하는 그녀의 전원주택에 수 십 마리의 고양이들은 살아있는 예쁜 소품으로 온 집안과 밖을 장식하고 있다.


'어떻게 그녀는 그 많은 고양이들에게 딱 맞는 예쁜 이름을 지어줬을까?'

일일이 이름을 부르며 고양이들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그녀에게서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에 대한 의미는 존재의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을 배웠다. 나도 덩달아 우리 동네에 정착해서 살고 있는 다섯 마리 고양이들에게 이름을 불러주는 작은 사랑의 실천을 해보고 싶은 욕구가 차오른다.


지난주 생일날 아침에 축하메시지가 울렸다. 반가운 이들이 소식과 함께 생일을 축하해 주니 얼마나 좋던지. 특히 인도에서 가르쳤던 학생들이 날 기억하며 축하 인사를 전해왔다. 늘 나를 '정은경 선생님'이라 불러주던 그들이다.


그리고 하나  더.

"사모님, 생일 축하드려요."

그 짧은 메시지를 읽으며 마음이 찡했다. 뭔지 모를 편안하고 포근한 기운이 내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만 같았다.


'별 거 아닌 이 문장이 왜 날 만지는 걸까?'

그 또한 지난 20년 이상 내가 줄곧 들어왔던 나를 불러주던 다정한 말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그리워하고 있었나 보다. 새로운 옷을 불편해하면서.


이제 언제든 다시 바꿔 입게 될 그 어떤 옷이라도, 호칭이라도 너무 낯가리지 말자. 조금 더 일찍 조금은 친근해지도록 노력해 보기로 하자.

부디 내 이름 석 자가 불려지길 바라는 마음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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