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카페를 하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모임이다. 이렇게 저렇게 시도해 보다가 마침내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 어엿한 정기 모임이 되었다. 함께해 주는 고마운 분들, 사랑스러운 분들 덕분에 이 모임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는 기다리며, 준비하고, 책을 읽는다.
무엇보다 은정 씨에게 고맙고, 직장 생활하면서도 휴무를 내서 참여해 주시는 미* 님, 인* 님, 그리고 이천에서 오시는 언니 같은 성*님, 수원에서 오실 때마다 맛난 간식을 챙겨 오시는 경*님, 누구보다 박식한 지식과 독서력으로 독서모임을 풍성하게 해주는 경*님, 바쁘지만 시간 있을 때는 꼭 함께 하는 독서 리뷰로 정말 책을 많이 읽는 정*님, 다시 취업해서 평일에 시간을 내지 못하지만 주말엔 함께해 주는 또 다른 은정 씨, 성실하게 꾸준히 핵심 멤버로 자리해 주는 재*님, 그 외에도 가능하면 함께 하려고 애쓰는 유*님, 스스로 박식을 자랑하며 실제로 많은 지식을 나눠주는 상*님, 그리고 정원 지기인 나에게 뜨겁게 감사한다. 함께 이루어가는 따스하고 친밀하며 재미난 모임을 나는 사랑한다.
몇 달 전, 블로그에 독서모임을 공지했더니 우리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그의 이름은 '지니'.
인도에서 잠시 한인교회 성가대에서 바로 옆자리에 앉아 함께 찬양하던 선량 집사님을 통해 알게 된 청년이다. 선량 님은 선량한 글방 지기로 여러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으며, 여러 책을 출간한 작가님이다. 바로 선량 님과 함께 글쓰기를 하던 얼굴 모르는 '지니'라는 청년은 나의 블로그 이웃으로 종종 소통하고 있었다. 얼굴도 실명도 모른 채 그저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청년이라는 정도밖에 알지 못했지만 마음이 가는 이었다. 바로 그가 비밀 댓글을 달더니 바로 계좌이체로 독서모임 참가비 만 원을 입금했다.
10월의 독서모임은 장류진 작가의 '연수'를 읽고 대화를 풀어갈 예정이었다.
목요일 11시에 시작하는 모임을 위해 커피 머신에 전원을 켜고, 청소를 부랴부랴 하며, 여럿이 함께 모여서 얼굴을 바라볼 수 있도록 테이블 세팅을 마쳤다. 각자 앉을자리를 정해 작은 이름표도 세워두고, 참깨 쿠키를 간단한 간식으로 영국에서 가져온 노란색 접시 위에 담았다.
고소한 커피 향이 북카페를 가득 채우며 함께 할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가 나타났다. 예정 시간보다 훨씬 일찍, 무려 30분 전에 도착한 것이다. 얼마나 일찍 집을 나서서 먼 길을 달려왔는지 그의 상기된 얼굴에 그대로 쓰여 있었다. 지니 씨는 생각보다 훨씬 어린 청년이었다. 내 눈에는 20대 초반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미 계좌번호에 이체된 기록을 통해 그의 이름은 알고 있었다. '지니'는 그의 이름의 끝 자 '진'을 일컫는 애칭이었다. 키가 훤칠한 청년이 들어서자 먼저 와서 기다리던 은정 씨와 우리는 그가 바로 '지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일어서 발걸음을 옮겨 마중을 나갔다.
"어서 오세요. 지니 씨죠?"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어디에서 오신 거예요?"
그는 인천에서 왔다고 했다. 1시간 30분을 예상했는데, 영동고속도로가 막혀서 두 시간이나 걸렸다고 했다. 얼마나 일찍 출발했으면 그럼에도 모임 시간 30분 전에 도착하다니. 그 마음에 울컥하며 감동했다.
"너무 고생했어요. 오느라 힘드셨죠?"
"아니에요. 그래도 오는 길이 너무 예뻐서 좋았어요."
그는 긍정적이고 밝았다. 그 힘든 걸음을 길을 따라 들어오는 길목의 예쁜 길로 다 덮고는 좋다고 표현해 주며 우리를 덜 미안하게 만들었다.
준비한 커피와 간단한 다과를 나누며 독서모임을 준비하면서 신선한 만남에 감사했다.
보통 우리 독서모임에는 남성이 두 명 정도밖에 되지 않고 대부분 여성분들인데, 남성이 한 분 더해지니 어느 정도 균형이 잡히는 듯했다. 30대에서 50대가 중심인 우리는 갑자기 나타난 20대 청년을 바라보며 기분이 좋으면서도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그의 말에 초집중하여 귀를 기울였다.
모두가 궁금해했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나 젊은 분이 그 멀리서 여기까지 왔어요?"
우리 모임에는 수원에서도 오시고, 이천에서도 오시는 분이 있긴 하지만, 인천은 그야말로 멀지 않은가? 지니 씨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사실 요즘은 또래들은 쉽게 만날 수 있는 플랫폼들이 많아요. 그런데 저는 더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하며 또래 아닌 다른 분들의 생각을 들어보며 나누고 싶었어요. 그래서 마침 이 모임을 알게 되어 오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는 군대를 다녀오고, 얼마 전에 직장을 그만두고 잠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는 27세 청년이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생활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며,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언젠가 좋은 글을 쓰고, 책도 쓰고 싶다고 했다. 출판 쪽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나눴다.
무엇보다 그는 얼마 전부터 두려움을 이겨보기 위해 찬물 샤워를 시작했다고 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해보는 게 목표라고.
11월 독서모임에도 오겠다고 미리 모건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을 북카페에서 사 손에 들고 갔다. 다음 모임에도 꼭 오겠다던 그는 11월 모임에도 등장해서 우리를 뿌듯하게 했다. 다시 찬물 샤워 이야기가 나왔다. '아직도 가야 할 길'에 대한 책의 주제를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두려움'과 만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솔직하게 마음을 터놓았다.
"사실 요즘은 날씨가 추워져서 찬물 샤워하는 게 정말 두려워요. 무섭기도 하고요. 저체온증으로 죽을 수도 있다고 해서 샤워기에 온도를 측정하는 시스템을 설치했어요. 물의 온도가 너무 낮으면 위험하다고 해서요. 정말 차갑고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찬물 샤워가 두려움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저 자신과 약속을 지키고 두려움을 이기려고 이걸 계속하고 있어요. 아직 하루도 빠트린 적 없이 해냈어요."
그의 말을 듣는 우리도 같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찬물 샤워에 동참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에 하나가 찬물에 들어가는 거라는데. 옆에 있는 남편이 군대 이야기를 꺼냈다. 훈련 중에 얼음물에 들어가는 훈련이 가장 무섭고 힘들었다고, 절대로 다시는 못할 거 같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도 마찬가지라 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날까지 계속하겠노라고 의지를 불태웠다.
나의 27살은 어떠했을까? 열정과 포부도 컸지 않았나? 그 누구보다도.
지금 내 앞에 있는 지니 씨를 보며,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나의 27세를 생각했다.
어쩌면 그가 나 대신 그날들을 더 푸르고 푸르게, 열정적으로 뜨겁게, 더 큰 나무가 될 거름을 듬뿍 머금으며 그렇게 깊고 크게 성장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나도 내게 남아 있는 시간 동안 조금은 더 푸르게 살아보겠노라고 다짐하게 하는 그다.
북카페 운영은 생각보다 너무 힘들고 어려운 현실과 마주해야만 한다. 요즘 나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며 부단히 도 고군분투하며 지내던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오는 거리와 괴리감을 극복하기에는 여간 힘든 여정이 아니기에.
그런데 지니 씨는 이곳이 좋다고 한다. 우리 북카페가 소중하다고 했다. 그래서 멀리서 한 달에 한 번씩 이곳까지 달려온다.
그가 내게 오늘도 북카페를 지켜내야 하는 이유를 하나 더한다.
지금 이곳이 누군가에게 소중한 공간이 되고, 그리워하고 달려오고 싶은 곳이 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