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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띠정 Oct 23. 2024

콜롬비아에서 온 손님

반가운 사람

사무실 책상들이 도형을 이루어 파티션과 함께 질서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나이가 많으신 분도 계셨고, 우리처럼 풋풋한 20대 젊은 아가씨들과 30대 남자들도 여럿 있었다. 각자 자기 자리를 자기만의 취향과 개성에 맞춰 책상을 정리하고 꾸몄다. 최소한의 필요한 파일만 꽂아진 깔끔한 책상도 있었고, 뭔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는 서류 더미가 가득 쌓여있는 책상도 주인을 닮아 있었다. 의자에 몸을 맡기고 무언가에 열중하는 사람과 조금은 여유 있어 보이는 사람도 함께 공존했던 사무실은 가끔은 조용했고, 어떤 때는 활기찬 웃음으로 분위기가 달아오를 때도 있었다. 우리는 그 시절, 20대 젊은 청년이었다.

사무실에는 30대 초반과 20대 중반의 총각이 있었는데, 단연코 30대 총각이 인기가 많았다. 사실 그를 좋아하지 않은 자매가 있었을까? 어떤 이는 드러내놓고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한편 그저 조용히 속으로만 계산기를 두드리는 이도 있었을 테니  바로 나다. 그가 내게 먼저 다가오면 그때는 나도 마음을 열겠노라고 요즘 말로 썸을 탔다. 하루는 천국에 하루는 지옥을 넘나들면서.


그러던 어느 날, 명문대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외모 또한 준수하고 키까지 크며 예쁜  윤이 사무실에 신입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내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고, 우리는 함께 같은 부서에서 일을 했다. 물론 나의 썸과 줄다리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아무런 확신도 얘기도 근거도 없는 속절없는 희망 속에서.


윤과 나는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며 일을 같이 해나갔다. 그땐 나도 어렸으니 선배로서 부족한 부분이 많았을 터다. 다시 끄집어내지 않아도 얼마나 어설펐을지 뻔하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모르는 것들을 배워나가면서, 이해하려고 애쓰고, 밤을 지새우기까지 해야 하는 날들도 많았다. 그렇게 주어진 시간에 우리는  맡겨진 일을 감당해 나갔다.  일에 지치고 몸은 피곤하여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잠은 부족했고, 체력은 소진되어 20대 후반을 보내는 게 두려웠던 그 시절.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무엇을 바라보아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고민하던 그 시절이 그때는 그렇게 젊고 푸르른 날인 줄을 미처 알지 못했다.

윤이 내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곧 약혼을 하고 결혼을 하겠다는 거다. 누구와 하게 되는지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고 감도 오지 않았다. 아예 눈치를 채지 못했을 만큼 그리 오랜 시간을 두고 교제한 건 아닌 거 같았다. 내가 모르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내가 둔치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윤은 바로 그와 결혼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뭐라고? 설마? 말도 안 돼.'


내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절대로 사귄 것도 아니고, 서로 잘 챙겨주고 어쩌면 오빠와 동생처럼 다정한 사이 정도였던 그가 다른 여인, 그것도 내 곁에서 나와 같이 일하던 동료와 결혼을 하다니. 너무도 놀란 나머지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도 얼른 감정을 추스르며 얼굴 근육을 정상으로 돌이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윤에게 말했다.


"축하해요. 세상에 언제 그렇게 일이 진행되었어요? 깜짝 놀랐어요."

아무렇지 않은 척,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조심 그러면서도 활기차게 축하의 인사를 전했다.

조금은 부끄러워하는 윤은 갑자기 결정을 했다면서 일찍 얘기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나야 용인에서 출퇴근하는 경기도 사람이었고, 그 둘은 사무실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으니 서로 대화할 기회가 더 많았으리라. 또한 윤은 얼마나 똑똑하고 예쁘기까지 하며, 마음까지 착하고, 얼마나 신앙이 좋으며 헌신되어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일등 신붓감이 맞았다. 그 누구도 그녀를 선택하지 않을 이가 없었으리라. 속으로 항복했다. 손을 들고 말았다.


그렇게 그들이 결혼한 후에 신혼집에도 놀러 가고, 태어난 아이들을 위해 선물도 해주며, 그들의 삶을 축복했다. 내게 소중한 동역자요, 친구였다. 그 후에 그들은 중국으로 떠났다. 십수 년의 세월을 중국에서 보내다 보니, 자주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나도 또한 영국과 인도에서 보낸 세월이 많았으니 더 그러했다.


20대에서 만난 우리는 50대가 되었다. 멀고 먼 아주 오랜 후의 시간일 거라고만 생각했던 50대의 인생이 바로 내 것이 되었고,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와 용인에 정착해서 북카페를 시작했다. 그들은 콜롬비아에서 생활하며 묵직한 그들의 역할을 감당해 내고 있다. 신학교 학장과 한글학교 교장으로 높은 고산지대에서 콜롬비아 커피를 내려마시며 낮과 밤이 정반대인 그곳에서 서로 멀리 떨어져 거하고 있다.


그들이 잠시 한국에 나왔다. 비행기로 24시간이나 걸리는 멀고 먼 항로를 날아온 것이다. 그리고 북카페에 오겠다고 연락이 왔다. 이미 윤과 나는 친한 친구이자 동료로 서로 많고 많은 얘기를 나누며 기도하는 평생지기로 살아오지만, 그녀의 남편과는 그렇지 못했다. 그저 소식을 전해 들으며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축복하는 관계였다. 부부가 함께 오겠다고 했다. 기다렸다. 하루를 우리 부부와 같이 시간을 온종일 보내기로 약속해 두었다.


콜롬비아에서 온 그들의 두 손에 콜롬비아 원두커피가 들려있었다. 한동안 커피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마침내 우리는 콜롬비아산 원두를 갈아서 핸드 드립으로 내려 맛을 보며 콜롬비아 커피 향에 빠져 칭찬 삼매경에 빠졌다. 사실 남편과 그분은 처음 대면하는 자리에서 첫 식사와 첫 대화를 나누는 어색한 순간임에 불구하고도 꽤 말이 잘 통했다. 두 사람의 대화가 무르익어가고 윤과 나는 우리만의 대화 속으로 빠져들어가 심해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넷이서 함께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문득 오래전 우리의 모습이 자꾸 스쳐 지나갔다.   

그때는 우리도 꽤 젊고 예쁘고 활기찬 모습으로 꿈을 꾸던 자들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지금 중년이 되어 어제도 만났던 사람들처럼 마주 앉아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삶과 생각과 비전을 여전히 꽤 싱그럽게 외치고 있었다.


그동안 변한 건 뭐였을까?

우리는 달라졌을까?

성장했을까?

아니면 때가 조금은 묻어있을까?

혹 닳아졌을까?


잠시 생각에 잠겨 보았다. 변하지 않은 듯하면서도 달라진 우리의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수고했다고 토닥토닥 어깨를 서로 두들겨 주고 싶었다. 앞으로 남은 시간도 우리 함께 하자고, 열심히 나아가자고, 서로를 응원하자고, 함께 기도했다.


누구나 미래를 향해 가고 있고, 어느 누구 하나 미래를 알 수 없는 삶.

어느덧, 지금 미래에 와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미래로 오늘도 나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오늘에 감사하며, 지나온 시절에 감사한다.

앞으로 올 미래에 대해서도 미리 감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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