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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유 Mar 23. 2024

가끔 사이코패스가 된다.

2부 엄마독립시키기

< 만약 내가 윤재의 부모라면 변함없이 사랑해 줄 수 있을까?>


소년 선윤재는 선천적으로 아몬드처럼 생긴 편도체가 작다. 타인의 감정을 느낄 수도, 표현할 수도 없었다. 윤재의 엄마는 편도체가 커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몬드를 볶아 먹인다. 가족이란 울타리가 사라진 윤재의 삶이 평온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하나의 현상에 이변의 뜻이 숨어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색종이에 여러 가지 문장을 쓴다. 그것을 전지에 일일이 붙여 벽을 장식한다. 엄마는 죽는 날까지 아들을 사랑했다. 아들은 엄마가 죽는 날까지 알지 못했다.


독서 모임 질문지를 받았다. 그것은 잊으려 노력했던 무언가를 깨웠다. 순식간에 편도체가 아몬드만큼 쪼그라들었다. 나도 감정표현 불능증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책이나 드라마에서 부모의 사랑을 보여준다. 사회생활을 하며 힘든 일이 생긴다. 그때 본가로 무작정 찾아간다. 늦은 밤 자다 깬 엄마가 문을 열어준다. “밥은 먹었어?” 장면은 바뀐다. 식탁에 밥과 찌개 반찬이 차려진다. 아무 말 없이 밥을 밀어 넣는 자식을 본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엄마가 클로즈업된다. 이런 장면 혹은 책에서 보여주는 사랑 이야기를 볼 때, 가끔 나는 사이코패스가 된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엄마가 해준 반찬이나 국 찌개를 먹고 싶다는 것을 들었다. 그때마다 ‘내가 만든 게 훨씬 맛있는데’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을 본다. 공감하고 가슴 뭉클한 표정을 짓는다. ‘사람들은 이런 곳에서 감동하는구나?’ 머릿속에 저장한다. 아는 사람들과 있을 때 기억한 모습을 연기한다. 하나도 공감이 되지 않는다. 다만 아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지난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소설책 <아몬드>의 주인공 윤재처럼 노력했다. 부모님과 싸워서 사이가 좋지 않다. 싫어서 독립하고 싶다는 투정을 들었다. 가루약을 털어 넣은 것처럼 목구멍에서 쓴맛이 올라왔다. 알고 싶지 않은 가족사를 들었다. 그럴 때마다 목이 메어왔다. 불평불만 하는 모습이 배부른 돼지처럼 보였다. 급발진하면 어떤 상황이 될지 뻔히 보였다. 분위기를 맞췄다. 같은 편을 들어주며 넘어갔다.


부모 자격이 미달인 사람 아래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이런 내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드라마나 책에서 자주 접했다. 싫어하는 부모님 모습을 똑같이 따라 하는 주인공. 나도 같은 사람이 될까 두렵다. 부모에게 칭찬이나 감정적 지지받은 기억이 없다. 덕분에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것이 나를 열정적으로 만들었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게 했다. 고등학생 때 전교 일 등을 했다. 대학생 때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그때 “잘했다 우리 아들 대단하네!” 한마디 들었다면 삶이 지금과는 달라졌을까?


15년 만에 얼굴을 떠올려 봤다. 표정이 없고 늘 힘들어 보였다. 아침마다 소주를 마시며 학교 가는 나를 볼 때만,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저당 잡힌 인생이 아깝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 아닐까? 나는 태어난 죄 밖에 없었다. 그런데 짐짝이 되었다. 억울하게 만드는 가해자가 되었다. 취업에 성공하자 양육비를 청구했다. 이자까지 톡톡히 쳐서 말이다.


윤재의 엄마처럼 챙겨주는 사람이 없다. 스스로 아몬드를 볶는다. 이것도 모자라 피스타치오 캐슈너트를 볶았다. 부모를 생각하면 작게 쪼그라드는 편도체. 이것이 다시 커질 수 있을까? 아직도 가족만큼은 카드놀이를 통해 응대한다. 이런 내가 진심으로 공감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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