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유 Mar 16. 2024

OPEN RUN

2부 엄마독립시키기

OPEN RUN : 명품 등의 원하는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매장 앞에서 기다렸다가 문을 열자마자 매장으로 달려 들어가는 것. 나와는 상관없는 사회현상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번호표를 받기 위해 줄을 섰다. 이번 OPEN RUN은 맥켈란 12년 쉐리 위스키였다. 이전에는 9~10만 원 선에 판매되던 위스키였다. 국내 위스키 수요가 폭발하며 품귀현상이 벌어졌다. 이제는 리쿼샵에서 20만 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었다. 리셀을 목적으로 줄을 서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쉐리 위스키 맛과 향이 궁금해서 잠을 줄이고 참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녹색 병에 든 소주를 가장 싫어한다. 타피오카전분으로 만들어진 주정. 오롯이 취하기 위해 만들어진 쓰고 역한 희석식 소주가 싫다. 가끔 힘든 일을 많이 겪고 나면 달콤한 음료수 같다는 말을 들었다. 티브이에서도 나오지 않을 법한 막장 드라마 주인공으로 살았다. 하지만 소주는 아직도 비린 술이다. 더욱이 술을 자주 마시지 않는다. 전문대 2년을 통틀어 5번쯤 술자리가 있었다. 공부, 아르바이트, 자격증, 대외활동이란 명분이었다. 일부러 술자리를 피했다. 테이블에 소주병이 쌓이면 엄마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였다. 엄마는 교대근무가 끝나면 집 앞 마트에서 산 소주를 마셔야 잠을 잤다. 아침마다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오는 모습이 싫었다. 하교 후 나를 맞이해 주는 건 현관에 쌓인 초록 소주병이었다. 「이곳에 들어오는 자여 모든 소망을 버려라.」 방문 위에 지옥의 현판이 달린 것 같았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천천히 손잡이를 비틀었다. 문풍지와 테이프 암막 커튼 덕분에 밝음은 실오라기만큼도 들어갈 틈이 없었다. 컴컴하고, 환기하지 않아 공기는 답답하고 무거웠다. 방 안 가득 비리고 역한 알코올 냄새가 코점막을 자극했다. 엄마는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까치발로 조용히 들어갔다. 손을 뻗으면 닿을 자리에 얼음물을 내려놓고 방문을 닫았다. 청양고추를 넣은 황태 콩나물국을 끓여놓고 저녁 아르바이트를 하러 집을 나섰다.


버번위스키로 입문했다. 점차 스카치, 아이리시, 피트까지 여러 종류를 즐겼다. 커피만큼이나 깊고 섬세했다. 공부할수록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한 병의 위스키를 통해 바다 건너있는 마스터 디스틸러의 정신이 느껴졌다. 가장 흥미로웠던 건 맛과 향의 스펙트럼이 구분되어서 즐거웠다. 스파이시, 스모키, 바닐라, 건과일, 꿀의 풍미가 느껴졌다. 목 넘김이 부드럽거나, 스모키 아세톤의 강한 타격감이 전해졌다. 위스키에 흠뻑 젖어들 무렵이었다.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왜? 위스키에 관심을 두게 되었을까?’


주야 교대근무를 한 지 10년이 넘었다. 술이 없으면 잠을 못 자는 엄마처럼 될까 봐 회식도 멀리했다. 그런데 우울증으로 삶에 낙이 사라지자, 술이 생각났다. 내게는 삼겹살에 잔을 부딪칠 친구가 없었다. 엄마처럼 혼자 소주를 마시고 싶지 않았다. 그때였다. 도서관에서 읽은 조승원 기자의 「버번위스키의 모든 것」 책이 떠올랐다. 눈에 익은 묵직한 사각 병. Jack Daniel's를 샀다. 40도의 위스키는 알코올 향이 튀고 독했다. 하지만 소주처럼 역하지 않았다. 높은 도수의 술이 들어갔다. 몸 안에 식도와 위가 어디 있는지 느껴졌다. 이어서 목에서부터 올라오는 은은한 스모키향. 달콤한 바닐라 맛이 깔끔하게 떨어졌다. 이것이 위스키와의 첫 만남이었다.

퇴근 후 집에 들어오면 공허했다. 허한 마음을 달래려 잔에 위스키를 따랐다. 야간 조 근무가 끝나고 쉬지 않았다. OPEN RUN 줄을 서서 위스키를 모았다. 살 때 행복했다. 처음 코르크를 따서 마실 때 기뻤다. 그런데 기분이 이상했다. 헛헛함을 달래주지 못했다. 빈 곳을 더 크고 깊게 만들었다. 일시적인 도파민의 쾌락이었다. 새로운 위스키 사서 마셔도 공허함을 채울 수 없었다. 진열된 술을 보며 굴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많은 위스키가 필요 없는데, 습관처럼 위스키를 모았다. 함께 나눌 사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오롯이 나 혼자였다.


삶에서 온전히 엄마를 지워내기는 불가능하다. 내 몸의 반은 그 사람이 만들어 줬으니까. 언제까지 나는 과거에 얽매이고 종속되어야 할까? 시간이 지나면 술잔을 나눌 사람이 생길 것이다. 부질없는 짓인 줄 알고 있다. 오늘도 퉁퉁 부어오른 마음을, 한잔 위스키로 어루만진다.


                     

이전 10화 아리야, 아리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