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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유 Mar 30. 2024

바지에 오줌을 쌌다

2부 엄마독립시키기

정신의학자 프로이트의 심리성적 발달 이론에서는 부모와의 초기경험이 일상과 생각을 지배하고 결정한다. 어렸을 때의 기억은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무의식 속에서 떠올라 현재를 구속한다. 아이가 성장하며 성의 본능(libido)이 응집되는 곳이 달라진다. 부위 따라 다섯 단계로 나눴다. 구강기를 거쳐 항문기를 배울 때였다. 유아일 때(1~3세) 배설로 리비도의 만족을 느낀다. 이 시기에 부모와의 배변 갈등을 겪으면, 아이는 커서 고착된 성격 자린고비나 구두쇠가 된다고 했다. 바쁘게 움직이던 손에서 펜이 떨어졌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시골에서 살았다. 그곳은 안테나로 지방방송만 볼 수 있었다. 내가 4살쯤부터 부모님은 아침이면, 서둘러 장사하러 나가고 혼자서 집을 지켰다. 뒷산에 올라 산딸기나 앵두를 따 먹었다. 가끔은 도토리를 먹는 다람쥐를 구경했다. 날씨가 따뜻하면 개울가에서 족대질하다가 심드렁해지면 볕이 잘 드는 대청마루에 누웠다. 머리맡에 카세트테이프로 구연동화를 들었다. 길게 내려온 처마가 얼굴에 내리쬐는 볕을 막아주었다. 그럴 때면 낮잠에 빠져들었다. 아무 탈 없이 편안했던 건 아니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밤이 무서웠다. 부엉이와 들개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방에 있을 때는 괜찮았다. 하지만 화장실을 갈 때면 갓난아이가 되었다.

새벽에 항상 눈이 떠졌다. 장사를 마치고 돌아온 부모님은 흔들어도 일어나지 않았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절벽 위 흔들 다리를 건너는 기분이었다. 소매 춤에 땀을 닦았다. 손에 든 랜턴과 슬리퍼가 자꾸만 미끄러졌다. 낮에는 일 분도 안 걸리는 거리를 십 분이 넘어 도착했다. 크게 호흡을 들이마시고 화장실 문을 열었다. 정화조가 이어진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천장에는 파리 끈끈이 몇 개와 백열전구가 달려있었다. 그곳을 보지 말았어야 했다. 랜턴 불빛이 정화조에 빨려 들어갔다. 일순간 주위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공포에 사로잡혔다. 아기가 아닌데 그 자리에서 오줌을 쌌다. 슬리퍼도 내팽개치고 뛰었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이른 아침이었다. 지린내가 방 안 가득했다. 엄마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다 컸다고 생각했던 아들이 바지에 오줌을 쌌다. 작고 낮은 목소리가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또야? 또!” 찡그린 미간 사이에 내가 끼어있었다. 엄마는 항상 바빴다. 집안일을 하고 장사를 나갔다. 화장실이 무서웠다. 새벽부터 동이 틀 때까지 엎드려 끙끙 앓았다. 꿈을 꾸면 이불에 지도를 그렸다. 엄마는 내 버릇을 고쳐야 한다며 싸리비를 들었다. 키를 쓰고 아랫집 할머니께 소금을 받아오라 시켰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손발에서 땀이 났다. 귓불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부끄러움에 마당에서 하늘이 무너져라, 꺼이꺼이 울었다. 항문기 때 리비도의 만족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부모님과 갈등이 있었다. 서른넷이 된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쳤다.


초등학생 때부터 용돈을 받았다. 군것질하는 것보다 모으는 게 좋았다. 동전이 지폐로 바뀌는 게 행복했다. 그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월급의 80%를 모았다. 통장과 펀드에 쉼표가 많아지는 게 기쁨이었다. 취업한 지 10년이 지났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돈을 많이 버는데 나는 왜 이러고 살까? 마시멜로 실험에서 측정하는 만족지연 능력이 탁월하게 높아서일까?’ 프로이트의 이론 무의식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과거 엄마가 나에게 했던 양육의 결과가 지금 내 모습이었다.


유아기에는 욕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표현하지 못한다. 부모의 섬세한 보살핌이 필요하다. 나는 항문기 때 즐겁지 않은 배변을 경험했다. 이것이 오랜 기간 무의식으로 자리 잡았다. 심리성적 발달 이론을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가설과 추측이 아니었다. 사람을 설명하는데 충분한 가치와 의미가 있었다. 어려운 양육 환경 속에서 갈등을 겪었다. 이것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감정의 골에 영향을 미친 것은 확실하다. 오직 한 가지 접근, 원인이라 생각하고 싶지 않다. 사람은 인지, 행동, 감정 등 다양한 결이 있다.

 

다행히 좋은 책과 사람을 만났다. 성향과 기질 인내심과 자기 조절 능력 발달했다. 덕분에 지금 모습을 갖췄다. 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이론을 공부할 것이다. 심도 있게 배우려 한다. 이제는 무의식 속에 가라앉아 움츠려 울고 있는 아이를 깊이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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