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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언 Jun 14. 2020

떠날까 말까 하면 떠나라?

아기와 여행 준비할 때 진짜 중요한 이것

첫째 두 돌 즈음 용감히 다녀온 제주도 여행. 새로운 환경에 저항 심한 아이라 역시나 고생 많았다. 하지만 역시 다녀오니 좋았던 것만 기억난다. 순딩 아기와의 여행과는 조금 다른, 평생 못 잊을 까다로운 아기와의 두 돌 제주도 여행. 그 이야기를 적어본다.




표 끊기 전 하루에도 열두 번씩 마음이 바뀌었다. 출발 전날까지도 취소할까 말까. 심지어 도착해서도 하루 더 일찍 돌아갈까 말까. 이리 고민한 이유는 낯선 곳을 힘들어하는 예민한 헬렌 때문. 아기 때 미국에서 한국 돌아오며 너무 고생했다. 환경이 바뀌니 삼주를, 트라우마 생길 정도로. 그리고 그보다 큰 이유가 있었다.

친정엄마, 나, 헬렌 이렇게 삼대가 함께 하기로 계획한 여행이었다. 그런데 헬렌이 출발 며칠 전부터 외할머니 거부. 친정엄마 헬렌이 잘 놀길래 한 시간 잠깐 나갔다 왔었다. 그때 헬렌이 엄마 보고 싶어 많이 울었다. 그날부터 할머니랑 같은 공간에 있는 것 자체를 힘들어하기 시작.

제주도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랑 있을 때 엄마가 안 보이면 불안해했다. 나 혼자선 떵도 못 싸고 목욕도 못하고 집에 있을 때보다도 더 힘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외할머니와의 일을 제외하면 엄마랑 붙어있을 때는 잘 버다.

공항 오는 길 카시트에서 잠듦. 비행기 타고 오며 잠. 횟집에서 한 시간 버팀. 거기다 밤잠도 별일 없이 제시간에 잠들었네?! 비행기 책자에서 기어이 고양이를 찾아내고. 나 혼자 애 안고 여행하는 기분이지만. 나중에 아빠랑 같이 여행 다니면 수월할 것 같으다?

그리하여 결국 티브이 무한 시청, 밤새도록 불 다 켜놓기의 단꿈을 꾸고 있던 남편을 소환지. 일박이일만 함께하기로. 너무 힘들면 남편 갈 때 같이 돌아가자고 생각다. 그간 여행 너무 좋아하는데 어찌 참고 살았는지. 만약 잘 버텨준다면 앞으로 매달 여행 다니기. 미국 친정집이랑 동생네도 다녀오고 싶었다. 삼 박사일 잘 버텨보자는 기도와 다짐을 하였다.



제주도 여행 첫째 날


여행의 묘미는 역시 일탈 XD. 아이스크림 감자튀김 대방출. 근데 왜때문에 안먹는거니 -.-
비행기를 처음 보고 너무 놀라 할말을 잃은 헬렌
의외로 비행기에서는 가고 오는 내내 자주었다


제주도 여행 둘째 날 오전

에코랜드. 제주도에서 헬렌 델고 가장 가고 싶었던 곳 중 하나. 오전에 설국열차 타고 강이랑 금잔디 두 군데 방문. 근데 엄마만 즐거웠던 것 같다. 헬렌의 컨디션은 점점 나빠지고.


엄마 향해 뛰어오기.안아달라고만 하는 헬렌을 걷게 하는 방법 :)



제주도 여행 둘째 날 오후, 바다에게 하소연


오늘 너무 힘든 하루였어. 걷지 않겠다는 너를 엄마 혼자 하루 종일 안고 다녔지. 하루도 엄마랑 안 떨어지려 했지. 할머니도 오늘 도착한 아빠도 엄마 없인 아무 소용이 없었어. 엄마가 잠시 화장실만 가도 울어댔지.

기저귀 한번 입히기 위해 30분을 씨름했으며 옷 입히는 것도 너무 힘들었어. 시도 때도 없이 찌찌 타령을 했고 엘리베이터 삐 못 눌렀다고 난리가 났지.

엄마는 너무 힘들어서 힘들다는 말을 수십 번 했어. 과연 이렇게 여행 온 게 잘한 건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 삼박사일 일정 중 이틀째였어. 하루 일찍 돌아갈까 많은 고민을 했다. 그래도 바다를 보겠다고 너를 안고 나가려 했지. 옷을 입기 싫다고 난리 치는 너를 도저히 못 보겠는지 그냥 안고 아빠가 나가버렸지. 엄마가 올 때까지 대성통곡하는 너를 보며 억장이 무너지더라. 바다도 너무 예쁘고 숙소도 너무 좋고 조식도 너무 맛있어 그런가 너무나 슬프더라.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 건가 하고. 엄마를 보고 더 발악하는 너를 안고 바다로 가서 아기처럼 막 울며  정신 나간 뇨자처럼 바다를 향해 막 소리쳤다.

너무 힘들어. 정말 최선을 다하는데 왜 이런 거야. 많이 나아진 건 알겠는데 아직도 먼 것 같아. 너도 힘든 거 알지만 나도 사람이야.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고 이젠 한계야. 너를 사랑해. 하지만 이건 별개의 문제야. 너무너무 힘들고 더 이상은 못하겠어~~ 엉엉엉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고 일순간 조용해진 너. 한참 바다한테 하소연하다가 정신 차리고 너의 얼굴을 보았다. 아까 하도 울어서 눈 빨갛고 코는 허옇게 입까지 다 늘러붙어 참 볼만 하더구나.

그런데 그렇게 바다에 토해놓고 나니 뭔가 후련한 기분 뭐지? 속이 뻥 뚫리고 숙변이 내려간 것 같다. 2년의 육아 스트레스를 던지고 온 기분. 처음으로 네가 아닌 내가 너무 안쓰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간 네가 감각이 많이 예민해 힘들겠거니. 이해하고 도와주려 또한 뭔가 모를 죄책감에  자신을 얼마나 다스리고 살아왔던지.. 그 설움을 다 풀어냈나 봐.

나중에 여기 다시 놀러 오면 이때 생각 많이 나겠지? 여행은 뭐가 됐던 얻는 게 있다고 믿는데 이번엔 그이렇게 짠한 추억이 되려나보다.


태어나 처음만난 바다. 컨디션이 무지 안좋았었는데 바다에선 잘 놀았다. 다행






제주도 여행 셋째 날 오전, 귤 따기 체험

엄마 나 귤따기 관심 없거든요?

귤 따기보단 동백꽃에 관심. 사진 한 장 건지기 어렵다. 할머니네 귤 농장에 가서 귤 따기와 동백꽃 따기 놀이를 한 헬렌.

사진은 좋다만, 오며 가며 준비하고 이동하는데 두세 시간. 놀기는 딱 오분. 귤 따기는 좋아할 줄 알았는데 옆 동백꽃에 더 관심이 많았다. 낯설어 전혀 걷지 않으려고 하고. 대체 누구를 위한 여정인지.

아빠가 와서 그나마 버텼는데 아빠도 돌아갔다. 남편이 떠나며 걱정되는지 뭘 하려고 하질 말라고. 헬렌은 계속 안아달라고만 하고 관심도 잠깐뿐인데 힘들게 왜 고생하냐며. 그냥 숙소에서 맛있는 거나 먹으며 쉬란다. 그래 맞는 말이야.

어제 나도 헬렌도 많이 울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남은 하루 편안히 보내다 돌아가자. 미안하고 사랑해.



제주도 여행 셋째 날 오후, 이모할머니네

역시 가족이 최고. 여행 중 제일 잘 논 곳. 에코랜드 감귤농장  필요 없었다. 물고기랑 도마뱀 있는 아늑한 이모할머니네가 최고.

온갖 맛있는 건 다 얻어먹고. 물고기 밥 주고 책 다 꺼내오고. 외할머니랑 이모할머니 오목 두는데 무한 참견하고. 이모할머니가 헬렌 만나자마자 고양이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모할머니만 보면 신나서 코코!라고.




제주도 여행 마지막 밤 일기, 삼대 모녀

삼대 모녀샷

헬렌이 여행 오기 며칠 전부터 외할머니를 거부해 얼마나 힘들었던지. 당연히 같이 여행 와서도 힘들었고 결국 남편까지 소환했는데 여행 마지막 밤 다시 할머니에게 마음을 조금이나마 연 헬렌. 처음에는 거부까지 하니 무슨 일이 있었나 할머니한테 맘 상한 게 있나 헷갈렸다.

그런데 여행하며 보니 할머니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었다. 애착을 맺지 않은 상대와 있을 때 엄마랑 떨어지는 고통을 깨달은 것이 문제인 듯했다.

그래서 방법을 바꿔 이렇게 얘기를 해봤다. 헬렌 엄마랑 떨어질까 봐 무서워서 그래? 할머니는 헬렌을 너~~ 무 사랑한대. 그런데 헬렌이 할머니를 거부하니까 할머니가 너무너무 마음이 아프대. 엄마 샤워하는 동안 할머니랑 잠깐만 놀고 있어. 엄마 금방 올게. 알겠지?

그랬더니 조금 훌쩍이다 할머니랑 놀겠다고 엄마 곁에서 일어나 할머니에게 스스로 갔다. 약 일주일 만에. 어제 푸닥거리를 해서일 수도 있고, 여행의 영향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다시 할머니에게 마음을 조금 열었다. 할머니도 많이 섭섭했을 텐데 나아져서 다행이다. 미국에서 손녀 보고 싶다고 왔는데. 자주 못 봐서 그런가 얼마나 마음 아팠을지.

하루 일찍 돌아갔다면 혹은 같이 여행을 오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풀어내지 못했을지도.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 너무 사랑해.






다녀와 대자연에 감동했는지 바다를 매일 그렸다. 바다 집 이야기도 자주 하던 헬렌. 힘들었지만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 여행할 때 뭐가 필요할까 고민 많이 했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이거였다.

"아주 힘들 수도 있다는 강한 마음의 준비"

한번 갔다 왔다고 용감해졌다. 헬렌은 점점 더 나아졌다. 더 즐겁게 다녀올 수 있을 거란 무한 긍정이 생겼다. 결국 여름에 친정 가려고 벼르고 벼르던 미국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내가 대체 무슨 깡이었을까. 간땡이가 배 밖으로 나온 걸까. 그해 여름 친정에 다녀오고 고생한 이야기는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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