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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언 Feb 16. 2020

까다로운 아기와의 생존 육아

두 돌까지 가장 힘들었던 날들의 일기

힘들었던 지난 일기들을 정리해 올려본다. 정리하며 다시 읽으니... 정말 이 시기를 어떻게 버텨냈나 모르겠다. 진짜 너무 힘들었었다.


수영, 요가, 마라톤 오래 했던 운동파였던 나. 아이 키우며 허리 나가고, 손목 다치고, 무릎 나가고, 원형 탈모, 만성 이염, 머리만 감아도 감기 걸림 등 몸이 망가졌다. 얼굴은 늙어버렸다. 오늘은 새치 3개 남편이 뽑아줬다. 내 젊음 돌려줘, 흑흑.


그래도 이 시기 견뎌내었다. 두 돌을 기점으로 울 헬렌 많이 안정되었고 애착 짱짱으로 다져졌다.


특히 헬렌의 그 남다른 기질은 - 의지가 강하고, 배우는 것에 열정 가득하고, 감수성 풍부하고, 호기심 많은, 자기 좋아하는 것에 무서운 에너지를 쏟는 초강력 몰입형 유아로 거듭나고 있다. 아직도 많이 힘들지만... 그래도 지금은 완전 용 됐다는 거!!


아래부터 그 처절한 기록들이다.



13개월

미국 가는 비행기 표 취소하고 휴학 결정했을 때쯤의 일기.


힘들다. 5월에 미국 가는 거 포기해야 할 것 같다. 너무너무 힘들다. 이런 거 또 해야 한다면 최대한 피해야 할 것 같다. 두 번은 못하겠다. 전에 시차 적응할 때도 이렇게 고생했다.


내 몸이 정말 완전… 부서질 것 같다. 헬렌 감기는 좀 나았는데 이번엔 이빨이 나오나 보다. 모르겠다. 이제는 왜 그러는지. 하루 종일 징징징 울고 짜증내고 젖도 피한다. 엄마도 힘들다 헬렌… 엄마 좀 봐주라… 엄마도 살고 싶다…



16개월

내 인생 최고의 진바닥을 보았던 날. 이날을 기점으로 미친 듯이 노력했던 것 같다. 밤마다 책 붙들고 일기 쓰고. 살기 위해.


오늘 정말... 내 바닥을 보았다. 아기 키우면서 바닥을 여러 번 확인했는데 이번에는 진바닥을 본 기분. 나는 정말 최악이었다. 내가 내 자신에게 상처를 받았다. 피곤했고 쉬고 싶었다. 몸도 아프고 다 힘들었던 거 안다. 두 시간 낮잠 잘 때 젖을 계속 빨았다. 정지 자세로 누워있어 어깨도 아프고 허리 다친 부분도 백였던거 안다. 그래도 그렇게 이성을 잃으면 안 되었다.


나는 헬렌을 너무너무 사랑하고 헬렌은 나 자신과 같은 존재인데... 정말 내자신이 추잡하고 더럽고 못나고 괴물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런 걸로 또 우울해하면 안 좋은 것만 반복될 뿐이다.


방법을 찾자. 일주일 한 번이라도 헬렌 봐달라 하고 한 시간이라도 나갔다 오자. 문화센터에 가. 오후에 아이 데리고라도 외출하자. 밤에 일찍 자고 뭐 하려고 생각하말자. 잘 먹고 힘들 땐 맛난 음식이던 뭐던 도움을 받.


그리고 기다리자. 이 힘든 시간이 지나가기를. 그리고 이 힘든 시간도 즐겁게 보낼 수 있기를.


요즘 무릎이 너무 안 좋아 외출을 잘 못하고 있다. 헬렌 감기 걸렸을 때 많이 안았더니 무릎이 더 망가져서 요즘 최절정이다. 오늘은 적외선을 좀 쐬어볼까 봐.



18개월

시간이 참 빠르다. 빠른 와중에도 오늘처럼 힘든 날이 꼭 있다. 재접근기& 찡찡 대마왕. 찌찌가 없었으면 어찌 키웠을지. 헬렌이 한없이 사랑스럽고 이쁘다가도, 왜 나는 이렇게 힘들면 차가워지는 것일까.


내 이성을 지킬 수 있는 선을 넘으면 안 된다. 그 선은 아이가 때거나, 내 신체에 어떤 해가 가해졌거나, 너무 시달렸을 때. 너무 오래 참지 말 것이다. 때리면 무조건 그 순간부터 참지 말고 표현하자. 힘들다고 느껴지기 시작하면 모두 다 내려놓고 아무것도 하지 말자. 이미 충분히 참고 있다.


자신감을 찾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내 아이 헬렌은 도대체 왜 이렇게 힘든 걸까. 나도 오빠도 그런 아이였을 테지. 부모를 닮은 것일 테니. 요즘은 많이 좋아졌는데 어금니 때문인지 하...


난 잘하고 있다. 나만한 엄마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 가는 생각 하면서 마음을 정리하자.



18개월

너무 힘들어서 밤에 숨도 안 쉬어지던 날.


힘들다 힘들다 정말로 뭣 때문일까. 생각을 해보자. 헬렌이 예민하고, 껌딱지에, 젖 집착에, 너무 힘들다. 짜증내고 엄마 때리고 집어던지고 참지 못하고.


헬렌을 사랑하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나 하고 싶고 말하고 싶은 거 모두 참으며 아기를 보는데, 이건 스님도 부처도 아니고 어찌 다 그 짜증과 에너지 화를 받아주나. 나도 아픔과 트라우마가 많은 사람인데. “적당히 좀 해라.” 진짜 이 말이 오늘 몇 번을 나왔는지.


엄마 좀 살려줘, 엄마한테 대체 왜 이래, 그만 좀 해, 엄마 진짜 힘들어... 밤이 되어서는 별거 아닌 거에도 다 미워 보였다. 나 자신이 너무 못나게 느껴졌다. 안된단 거 알면서도 도저히 내 감정 추슬러지지가 않는 거... 컨트롤이 1도 안 되는 거.


아 미치겠다 정말 떨어져 있고 싶다. 반나절만이라도. 나 이러다가 미칠 거 같다. 오늘은 정말 모든 게 다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꾹꾹 눌러서인지 더 풀리지가 않는다. 지금도 미치겠다. 사실 잠자기 싫다. 나 혼자 있고 싶고 감정을 추스르고 싶다. 모르겠다. 난 지금 너무 힘들다.



18개월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헬렌 대성통곡해서 오랜만에 아기띠 매고 폭염인데 나가서 동네를 배외함.


 

너무 힘들었던 어제와 오늘. 하루 종일 찌찌 물고 안 놓고, 엄마한테 짜증내고, 엄마 때리고, 엄마는 네 감정의 쓰레기통인 거냐.


나도 사람이다. 정말 힘들다 오늘은. 아기니 참아야지 힘드니 그러겠지 마음 다스리고, 화내지 않고 가르치려 최대한 노력하는데... 이러다 사리 생길 것 같다. 정신줄 조금만 놓으면 미추어 버릴 지경.



19개월

이때를 기점으로 왕년에 한 따까리 하던 내가 정말 개과천선했음을 느꼈다. 애는 둘째 치더라도 엄마인 내가 변했다.

어떻게 해도 진정이 안되어 힘들어하는 헬렌을 아기띠로 안았다. 아파트 단지에서 가장 녹색이 많은 곳으로 대피.


오늘 육아일기에선 나 자신을 칭찬해야겠다. 요즘 헬렌은 또 하나의 중요한 시기를 지나가고 있는데, 많이 힘든 상황임에도 엄마인 나의 대응이 많이 성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예민 까칠 하이니즈 베이비를 키우며 나 자신의 감정 밑바닥을 수없이 경험했다. 이성 자주 잃고 욱도 수없이 겪었다. 정말 힘들고 지치고 험난한 날들이었다.


그럴 때마다 밤마다 반성하고, 육아일기 수없이 쓰고(내용은 한결같이 "나는 최악이다."라고 시작하는), 책 읽으며 마음 다잡고...


지성이면 감천이고 빗물에 바위를 뚫는다고 했던가. 한결같이 하다 보니 왕년에 한 성질 하던 내가 조금 변했다.


이젠 이성이 머리를 탈출하려고 해도 속으로 수없이 되뇐다. ‘지금 정신줄 놓으면 후회한다 후회한다 ’라고. 심장이 쫄깃해지는데 한숨 한 번 푹 쉬고 다시 웃으며 아기를 바라본다. 아무리 생떼를 부려도 감정적 대응보단 이성적인 무시를 할 줄 아는 여유를 조금 가지게 되었다.


물론 이제 시작일 뿐이고 갈길이 멀겠지만, 이렇게 앞으로도 노력해야겠다.



20개월

어째 요 며칠 컨디션이 좋다 했다. 폭풍이 오기 전 고요였던 듯.


어젯밤엔 한 시간마다 깨서 울었다. 오늘은 찌찌를 하루 종일 문다. 낮잠도 안 잔다. 엄마가 뭐만 하면 울음 폭발. 자기만 바라보란다.  자기한테 백 프로 집중 안 하고 아빠랑 대화하는 게 싫은지, 내가 아빠한테 무슨 말만 꺼내면 짜증 낸다. 하루 종일 너무 힘들어 잠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었다. 그랬더니 자기가 좋아하는 사운드북 음악을 갑자기 꺼내 틀으며 엄마가 튼 음악은 듣고 싶지 않다는 무언의 압박을 날린다. 밖에 나가자니 아기띠를 직접 가져온다. 아기띠로 산책하니 좋단다. 오늘 목욕하는데도 어찌나 짜증을 냈는지 아빠 영혼 탈출하고.


어디 아프냐고 물으니 오른쪽 아래 끝 쪽 어금니를 가리킨다. 만져보니 뼈는 느껴지는데 아직 나오려면 좀 걸릴 것 같다. 아래 끝 어금니 자리 아픈지 한참 된 것 같은데 워낙 예민한 헬렌이라 조금만 이상한 감이 느껴져도 난리난리가 나는 듯.


인내심이 강한 나임에도 오늘처럼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하고 헬렌이 원하는 대로 헬렌에게만 백 프로 집중하는 건 정말 너무 힘들다. 하이니즈 베이비 키우며 집안일 요리 청소 뭐 이런 거 내려놓은지는 한참 됐지만 이젠 진짜 막가는 중.


이젠 빨리 나아지길 바라는 것도 무의미한 듯하다. 윗니들도 남아있는데 그냥 난 석돌까지는 마음을 비워야겠다. 두 돌 지나면 괜찮겠지 했는데 벌써 20개월이니.


그냥 체력관리 잘하고, 하루하루 힘들어도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야겠다.



20개월

항상 힘든 영아부 예배.  25개월이 된 지금도 제일 힘든 스케줄.


영아부 예배 가서 매주, "잠을 못 자서." "이가 서요." 이유를 둘러대기도 이젠 민망하다.  매주 컨디션이 안 좋으니 뭐. 다닌 지 세 달째인데 컨디션 좋아서 끝까지 버틴날은 딱 한번, 항상 중간에 혼자 아기띠로 안고 달래야 하네. 처음에는 "졸린가 봐요" "컨디션이 안 좋은 가봐요" 하던 분들도 이젠 그냥 말없이 힘내라며 요구르트를 가져다주신다.


요즘 너무 힘들었던지 오늘 돌아오는 길에 설움이 터지고 말았다. 집에 오자마자 음악 크게 틀고 밥 세 그릇을 펐다.  밥카레에 비벼 미친 듯이 퍼먹으면서 헬렌 놀랠까 봐 소리도 못 내고 눈물만 펑펑 흘렸다. 그래도 다행인 건 혹시나 이성 잃은 말이 나올까 입은 꾹 다물고 있었네.


요즘 다시 시작된 엄마 껌딱지에 찌찌 집착에 유모차 거부에 잠 못 자고 과잉행동 생떼. 전엔 기간이 짧기라도 했지 이번엔 좀 길게 간다. 컨디션 좋은 날도 잠깐 하루뿐 다시 힘들고~ 휴.


힘내자. 맛있는 것도 먹고 좋아하는 것도 보고 일기 도쓰고  책도 읽고 얘기도 하고 뭔가 방법을 찾자



22개월

일분일초도 쉬지 않고 엄마에게 강력 요구를 하던 헬렌. 안 들어지면? 난리가 난다. 근데 그걸 하루 종일 씨름해야 한다는 거. 당연히 다치는 거 위험한 거 아니면 웬만하면 들어줄 수밖에... 속도도 빨라야 한다. 내가 미쳐.


오래간만에 영혼 탈탈 털린 날. 내 인내심 상한선이 10이라면 15까지 두 번 갔다 온 날.


낮잠 찌찌 물고 겨우 한 시간 선잠 잔 거? 그건 별거 아니었지. 밖에 아기띠로 외출한 거? 햇빛이 무섭다고 계속 안고 다닌 거? 그것도 별거 아니었지. 하루 종일 엄마는 나만 바라보라며 일분일초도 딴짓 못하게 한 거? 뭐 그것도 이젠 익숙해.


하이니즈 베이비 아니랄까 봐. 강력한 요구. 너의 강한 에너지. 정말 어찌나 강한지 오늘 같은 날은 엄마 기가 다 빨려. 다행히 오늘은 아빠도 같이 빨렸지.


정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지 않으면 언제 정신줄을 놓을지 모르겠는 이 팽팽한 긴장감. 헬렌 너와의 육아 라이프는 너무나 엄마를 단련시켜.



23개월

어제 새벽 세시부터 깨서 못 잤다. 낮엔 세 시간을 찌찌 물고 선잠. 오늘 밤에도 괴로워하며 못 자고 울고, 못 견디겠는지 벌떡 일어나 어둠 속 방방이 뛰다가 타이레놀 먹고 겨우 잠듦.


사실 나도 힘들었지. 얼마 전 열감기도 힘들었는데. 밤새 잠 못 자고. 낮엔 세 시간 한 자세로 있느라 어깨랑 허리 무리 간 상태에서 하루 종일 안고. 남의 편은 속도 모르고 반찬 타박.


진짜 힘든 건 너일 텐데 엄마가 기대치가 올라간 것인지. 컨디션 안 좋아 더 그랬을 텐데 잠깐 만난 삼촌한테 한 가지 말 반복하는 네 모습이 오늘따라 너무 이상해 보이고. 꽃이랑 고양이 풍선 항상 애 정하 던 건데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고.


씨름하다 겨우 잠들기 직전, 평소 물고기를 꼽꼬비라고 발음하는 네가 "물, 꼽꼬비. 물, 기. 물, 꼬비" 라며 혼자 중얼중얼 물고기 발음을 연습하는 모습에 엄마는 미안해서 눈물이 터져버렸다.


물고기 발음 틀린 건 어찌 알았는지. 잘 못해도 그만인 것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연습하다 자는 그런 너인데. 초특급 하이니즈 베이비였지만 정말 많이 좋아진 헬렌인데. 엄마도 그렇지만 그간 너도 얼마나 노력했겠니. 그럼에도 이젠 잠도 좀 잘 잤으면 좋겠고, 사람들도 좀 만나고 싶고, 엄마 기대치가 자꾸 높아졌었나 봐.


있는 그대로의 너를 바라봐야지. 엄마가 더 노력할게. 이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이렇게 일기를 쓴다. 헬렌은 헬렌 속도대로 가도 돼. 엄마도 천천히 갈게. 아주 많이 사랑한다.







아 정말 다시 읽어도... 울 헬렌을 너무 사랑하지만 다시 하라면 절대 자신이 없다.


지금은 정말 많이 나아졌다. 180도... 는 아니고 90도 바뀌었다. 잠도 전보다 훨씬 잘 잔다. 때리는 건 완전히  없어졌다. 가끔이지만 가만히 혼자 놀 때도 있다. 컨디션 좋았던 날의 일기들도 올려봐야겠다. 컨디션 좋던 날들은 또 완전 극과 극이다.


엄마인 나는?? 완전히 개과천선하고 철들고 도인으로 거듭났다. 이런 시련을 내게 하늘이 주신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헬렌, 앞으로도 잘해보자 :))


전투 육아, 생존 육아 맘들,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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