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두 돌 즈음 용감히 다녀온 제주도 여행. 새로운 환경에 저항 심한 아이라 역시나 고생 많았다. 하지만 역시 다녀오니 좋았던 것만 기억난다. 순딩 아기와의 여행과는 조금 다른, 평생 못 잊을 까다로운 아기와의 두 돌 제주도 여행. 그 이야기를 적어본다.
표 끊기 전 하루에도 열두 번씩 마음이 바뀌었다. 출발 전날까지도 취소할까 말까. 심지어 도착해서도 하루 더 일찍 돌아갈까 말까. 이리 고민한 이유는 낯선 곳을 힘들어하는 예민한 헬렌 때문. 아기 때 미국에서 한국 돌아오며 너무 고생했었다. 환경이 바뀌니 삼주를, 트라우마 생길정도로. 그리고 그보다 큰 이유가 있었다.
친정엄마, 나, 헬렌 이렇게 삼대가 함께 하기로 계획한 여행이었다. 그런데 헬렌이 출발 며칠전부터 외할머니 거부. 친정엄마와헬렌이 잘 놀길래 한 시간 잠깐 나갔다 왔었다. 그때 헬렌이 엄마 보고 싶어 많이 울었단다. 그날부터 할머니랑 같은 공간에 있는 것 자체를 힘들어하기 시작.
제주도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랑 있을 때 엄마가 안 보이면 불안해했다. 나 혼자선 떵도 못 싸고 목욕도 못하고 집에있을때보다도 더 힘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외할머니와의 일을 제외하면 엄마랑 붙어있을 때는 잘 버텼다.
공항 오는길 카시트에서 잠듦. 비행기타고 오며 잠. 횟집에서 한시간 버팀. 거기다 밤잠도 별일 없이 제시간에 잠들었네?! 비행기 책자에서 기어이 고양이를 찾아내고. 나 혼자 애 안고 여행하는 기분이지만. 나중에 아빠랑 같이 여행 다니면 수월할 것 같으다?
그리하여 결국 티브이 무한 시청, 밤새도록 불 다 켜놓기의 단꿈을 꾸고 있던 남편을 소환했지. 일박이일만 함께하기로. 너무 힘들면 남편 갈 때 같이 돌아가자고 생각했다. 그간 여행 너무 좋아하는데 어찌 참고 살았는지. 만약 잘버텨준다면 앞으로 매달 여행 다니기. 미국 친정집이랑 동생네도 다녀오고 싶었다. 삼 박사일 잘 버텨보자는 기도와 다짐을 하였다.
에코랜드. 제주도에서 헬렌 델고 가장 가고 싶었던곳 중 하나. 오전에 설국열차 타고 강이랑 금잔디 두 군데 방문. 근데 엄마만 즐거웠던것 같다. 헬렌의 컨디션은 점점 나빠지고.
엄마 향해 뛰어오기.안아달라고만 하는 헬렌을 걷게 하는 방법 :)
제주도 여행 둘째 날 오후,바다에게 하소연
오늘 너무 힘든 하루였어. 걷지 않겠다는 너를 엄마 혼자 하루 종일 안고 다녔지. 하루도 엄마랑 안 떨어지려 했지. 할머니도 오늘 도착한 아빠도 엄마 없인 아무 소용이 없었어. 엄마가 잠시 화장실만 가도 울어댔지.
기저귀 한번 입히기 위해 30분을 씨름했으며 옷입히는것도 너무 힘들었어. 시도 때도 없이 찌찌 타령을 했고 엘리베이터 삐 못 눌렀다고 난리가 났지.
엄마는 너무 힘들어서 힘들다는 말을 수십 번 했어. 과연 이렇게 여행 온게 잘한건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 삼박사일 일정중 이틀째였어. 하루 일찍 돌아갈까 많은 고민을 했다. 그래도 바다를 보겠다고 너를 안고 나가려 했지. 옷을 입기 싫다고 난리 치는 너를 도저히 못 보겠는지 그냥 안고 아빠가 나가버렸지. 엄마가 올 때까지 대성통곡하는 너를 보며 억장이 무너지더라. 바다도 너무 예쁘고 숙소도 너무 좋고 조식도 너무 맛있어 그런가 너무나 슬프더라.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건가 하고. 엄마를 보고 더 발악하는 너를 안고 바다로 가서 아기처럼 막 울며 정신 나간 뇨자처럼 바다를 향해 막 소리쳤다.
너무 힘들어. 정말 최선을 다하는데 왜 이런거야. 많이 나아진 건 알겠는데 아직도 먼것 같아. 너도 힘든거 알지만 나도 사람이야.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고 이젠 한계야. 너를 사랑해. 하지만 이건 별개의 문제야. 너무너무 힘들고 더 이상은 못하겠어~~ 엉엉엉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고 일순간 조용해진 너. 한참 바다한테 하소연하다가 정신 차리고 너의 얼굴을 보았다. 아까 하도 울어서 눈은 빨갛고 코는 허옇게 입까지 다 늘러붙어 참 볼만 하더구나.
그런데 그렇게 바다에 토해놓고 나니 뭔가 후련한 기분 뭐지? 속이 뻥 뚫리고 숙변이 내려간 것 같다. 2년의 육아 스트레스를 던지고 온 기분. 처음으로 네가 아닌 내가 너무 안쓰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간 네가 감각이 많이 예민해 힘들겠거니. 이해하고 도와주려 또한 뭔가 모를 죄책감에 나 자신을 얼마나 다스리고 살아왔던지.. 그 설움을 다 풀어냈나 봐.
나중에 여기 다시 놀러 오면 이때 생각 많이 나겠지? 여행은 뭐가 됐던 얻는 게 있다고 믿는데 이번엔 그게 이렇게 짠한 추억이 되려나보다.
태어나 처음만난 바다. 컨디션이 무지 안좋았었는데 바다에선 잘 놀았다. 다행
제주도 여행 셋째 날 오전, 귤 따기 체험
엄마 나 귤따기 관심 없거든요?
귤 따기보단 동백꽃에 관심.사진 한 장 건지기 어렵다. 할머니네 귤 농장에 가서 귤 따기와 동백꽃 따기 놀이를 한 헬렌.
사진은 좋다만, 오며 가며 준비하고 이동하는데 두세 시간. 놀기는 딱 오분. 귤 따기는 좋아할 줄 알았는데옆 동백꽃에 더 관심이 많았다. 낯설어 전혀 걷지 않으려고 하고. 대체 누구를 위한 여정인지.
아빠가 와서 그나마 버텼는데 아빠도 돌아갔다. 남편이 떠나며 걱정되는지 뭘 하려고 하질 말라고. 헬렌은 계속 안아달라고만 하고 관심도 잠깐뿐인데 힘들게 왜 고생하냐며. 그냥 숙소에서 맛있는거나 먹으며 쉬란다. 그래 맞는 말이야.
어제 나도 헬렌도 많이 울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남은 하루 편안히 보내다 돌아가자. 미안하고 사랑해.
제주도 여행 셋째 날 오후, 이모할머니네
역시 가족이 최고. 여행중 제일 잘 논곳. 에코랜드 감귤농장 필요 없었다. 물고기랑 도마뱀있는 아늑한 이모할머니네가 최고.
온갖 맛있는건 다 얻어먹고. 물고기 밥 주고 책 다 꺼내오고. 외할머니랑 이모할머니 오목 두는데 무한 참견하고.이모할머니가 헬렌 만나자마자 고양이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모할머니만 보면 신나서 코코!라고.
제주도 여행 마지막 밤 일기, 삼대 모녀
삼대 모녀샷
헬렌이 여행 오기 며칠전부터 외할머니를 거부해 얼마나 힘들었던지. 당연히 같이 여행 와서도 힘들었고 결국 남편까지 소환했는데 여행 마지막밤 다시 할머니에게 마음을 조금이나마 연 헬렌. 처음에는 거부까지 하니 무슨일이 있었나 할머니한테 맘 상한게 있나 헷갈렸다.
그런데 여행하며 보니 할머니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었다. 애착을 맺지 않은 상대와 있을 때 엄마랑 떨어지는 고통을 깨달은 것이 문제인 듯했다.
그래서 방법을 바꿔 이렇게 얘기를 해봤다. 헬렌 엄마랑 떨어질까 봐 무서워서 그래? 할머니는 헬렌을 너~~ 무 사랑한대. 그런데 헬렌이 할머니를 거부하니까 할머니가 너무너무 마음이 아프대. 엄마 샤워하는 동안 할머니랑 잠깐만 놀고 있어. 엄마 금방 올게. 알겠지?
그랬더니 조금 훌쩍이다 할머니랑 놀겠다고 엄마 곁에서 일어나 할머니에게 스스로 갔다. 약 일주일 만에. 어제 푸닥거리를 해서일 수도 있고, 여행의 영향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다시 할머니에게 마음을 조금 열었다. 할머니도 많이 섭섭했을 텐데 나아져서 다행이다. 미국에서 손녀 보고 싶다고 왔는데. 자주 못 봐서 그런가 얼마나 마음 아팠을지.
하루 일찍 돌아갔다면 혹은 같이 여행을 오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풀어내지 못했을지도.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 너무 사랑해.
다녀와 대자연에 감동했는지 바다를 매일 그렸다. 바다 집 이야기도 자주 하던 헬렌. 힘들었지만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 여행할 때 뭐가 필요할까 고민 많이 했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이거였다.
"아주 힘들 수도 있다는 강한 마음의 준비"
한번 갔다 왔다고 용감해졌다. 헬렌은 점점 더 나아졌다. 더 즐겁게 다녀올 수 있을 거란 무한 긍정이 생겼다. 결국 여름에 친정 가려고 벼르고 벼르던 미국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내가 대체 무슨 깡이었을까. 간땡이가 배 밖으로 나온 걸까. 그해 여름 친정에 다녀오고 고생한 이야기는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