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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언 Jun 11. 2020

내 아이가 잘 안 먹는 이유식

팩트 폭격. 아이주도 이유식 장단점

첫째 때 아이주도 이유식을 했었다. 직구로 용품을 구입했다. 미국 이유식 책까지 읽었다. 매일 레시피를 연구했다. 아이주도 이유식을 주도하는 열혈 엄마였다.


5년 전 블로그글. 어찌나 열심이었는지 +_+


아이주도 이유식을 하면 여러 장점이 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골라 먹으므로 더욱 잘 먹는다. 직접 탐색하고 즐기며 먹으므로 음식에 관심이 커진다. 자기가 원하는 양만큼 먹기에 양육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음식을 직접 집어 먹는 과정에서 소근육이 발달한다. 무엇보다 부모는 옆에서 편히 밥을 먹을 수 있다. 아이가 먹다 캑캑거리는 '구역질 반사'가 일어나도 두려워 말 것. 왜냐면 아이의 구역질이 일어나는 부위는 혀 쪽에 가까워 위험하지 않다. 오히려 이런 일을 몇 번 경험한 아이는 얼마큼 삼키고 뱉어야 하는지 빠르게 습득한다.



그래서 그런지 첫째는 유독 소근육이 빨랐다. 아주 어릴 때부터 손가락을 사용해 조그만 과자를 집어먹었다. 아이주도 이유식을 해서 아이 소근육이 빠르다고 생각되었다.



비장의 무기, 두부 헤쳐먹기

또한 아이는 고맙게도 아주아주 잘 먹었다. 잘 먹기보단 잘 가지고 놀았다고 해야 맞을 것 같지만. 나는 기세 등등했다. 어른들 먹을 음식 준비할 때, 그저 재료를 잘라 간편히 이유식을 준비했다. 우리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오이와 배. 아는 사람들 만나러 갈 때 오이와 배 자른 걸 들고나갔다. 아이에게 그냥 쥐어주는 걸 보며 다들 놀랬다. 그때만 해도 아이주도 이유식은 일부에게만 알려진 마법의 방법이었다. 아, 이렇게 아이 키우니 어렵지 않아. 특히 이유식은 쉽게 갈 방법이 있어. 나는 기세 등등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이유식까지는 괜찮았는데. 유아식부터 난관이 시작된 것이다. 여기서 리얼 팩트를 알려드리겠다. 이유식에서 잘 먹었다고 유아식에서 잘 먹는 거 아님. 편식 없는 거 아님. 물론 계속 잘 먹는 그 패턴을 유지하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멋모르고 입에 넣고 즐기다가, 인지 발달이 시작되며 아이가 달라질 수 있다.


치즈 우유 밥. 유아식을 시작하며 35개월까지 이렇게 세가지만 먹던 우리 첫째. 여보세요? 넌 아이주도 이유식 한 아기라고!!! 하늘을 치솟던 내 어깨 뽕이 점점.


소근육이 유독 빨랐던 우리 첫째. 크며 더더욱, 소근육이 월등히 빠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 아이주도 이유식을 해서 빠른 건 줄 알았는데. 원래 앞서갈 발달이었나..? 타고난 거에서 플러스알파이지, 무에서 유를 이룬 건 아닌 듯하다는 생각이 자꾸.


유아식에서 덩어리 음식을 못 넘기던 첫째. 적응하는데 굉장히 오래 걸렸다. 덩어리를 넘기려다 포기하고 울기도 했다. 마치 트라우마가 있는 것처럼. 혹시.. 구역질 반사 때 경험이 연관 있는지 자책했던.





이런 일들을 겪으며 아이주도 이유식의 단점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첫째, 처음 호기심에 탐색하지만, 나중에 아이가 원하는 것만 골라 먹을 수 있다. 두 번째, 먹다 목에 걸렸던 경험이 어떤 아이에게는 큰 충격이 될 수 있다.


물론 스스로 먹는 양 조절, 죽이라는 이유식의 고정관념 탈피 등 아이주도 이유식이 분명 시사하는 바 있다. 장점이 있는 것도 맞다. 솔직히 아이주도가 편하긴 편... 하지만 오랜 세월 이어져온 이유식 방식에도 이유가 있다. 육아와 마찬가지로 이유식도 뭐가 좋다 뭐가 옳다는 없다. 나와 아이 상황을 고려해 내 아이에게 뭐가 맞나를 끈질기게 관찰하고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경험과 깨달음으로 만약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단계별 이유식 방식을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죽도 먹이며 융합해서 할 것이다. 또한 안전을 좀 더 챙길 것이다. 아이가 음식을 먹을 때 같이 먹는 것도 좋지만, 가능하면 좀 더 조심하고 살펴볼 것이다. 이러면서 아이주도 이유식을 참고해 핑거푸드에 활용할 것이다. 단점을 인정하며 장점을 활용하려 노력할 것이다.


내 성찰은 장엄했다. 둘째에게 이렇게 적용하려 했다. 그런데 우리 둘째는 첫니가 돌에 났다. 그 전엔 알레르기가 심해 이유식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빨이 늦게 한꺼번에 나며 바로 유아식으로 넘어갔다. 물에 밥 말은 걸 가장 잘 먹던 둘째. 깨닫고 배운 걸 적용하려 했는데. 죽과 핑거푸드를 아이 반응에 맞게 적용하며 이유식의 마법을 실행해보려 했는데. 흠. 결국 내 결론은 이리되었다.



"이유식은 시행착오를 거치는 과정"

"이유식은 엄마 맘대로 되는 게 없다는 걸 배우는 것"



물론 잘 먹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우리 둘째가 잘 먹었다면 또 결론이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케이스가 훨씬 많다. 어떤 이유식이던 환상은 없다. 이유식은 진짜 식사로 넘어가는 배움의 단계이다. 먹는 것만큼은 절대로 엄마 맘대로 되지 않는다. 삼키고 뱉어내는 행위는 오로지 아이의 영역이다. 도울 수는 있지만 내가 대신할 순 없다. 엄마는 미리 배운다. 아이의 자아 독립 과정을. 아이의 주도권으로 엄마 품을 박차고 떠날 날을. 그때가 되면 기억해야겠다. 이유식, 정말 내 뜻대로 되지 않았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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