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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언 Feb 19. 2020

예민 둘째 육아. 팩트 폭격

이건 음모다

예민한 아이 포함 아이 둘 키우시는 분, 둘째 고민하시는 분들께 이 글을 드려본다.

나는 이 글을 쓰는 현재 5살 하이니즈 첫째와 11개월 하이니즈 둘째를 키우고 있다. 얼마나 힘든가 과연 가능한가 등 궁금하실 것 같다. 내 솔직한 경험담을 공유해 본다. 지극히 내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만난 둘째를 낳은 예민 아이 엄마들이 공통적으로 너. 무. 나. 극적인 힘듦 을 토로하셔서 대표로 글을 써본다.


먼저, 힘든 건 두 배가 아니라 네 배가 된다. 일반적인 케이스도 둘은 힘들다. 순둥이여도 첫째는 퇴행이 오고 동생을 질투한다. 둘째는 신생아기에 울고 잠을 못 잔다. 두배 아닌 네 배라는 공식은 보통 아이들에게도 해당된다. 그런데 예민 엄마들은 원래 힘든 게 만땅인 상황에 그게 네 배가 된다. 상상이 되는가?

그 힘듦의 정도는 내 기준으로, “항상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를 넘어있는 상황”이라고 생각 든다. 얼마 전 읽은 롤프 젤린의 <예민함이라는 무기>에서는 한계점을 인식하고 그 안에서 행동하라 했다. 이미 한계를 넘어있다니... 이래도 되나? 그게 어떤 상황인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언제든지 폭발 대기. 첫째 미워보이는 건 당연. 어쩔 수 없이 둘째 방치.

언제든지 폭발할 것 같은 빵빵한 풍선 같은 상태. 그게 신기하게 그 빵빵한 채로 어느 정도는 유지가 된다. 아마도 유난스러웠던 첫째를 키운 내공이 분명 있는 것이다. 근데 그 화가 엉뚱한 데로 간다. 일 번 타자 남편. 간식과 야식으로 내 몸매. 그나마 이건 운이 좋은 거지 첫째에게 가는 경우 많다. 제대로 폭발하는 날 온다. 나는 인생의 담금질을 많이 겪어서 기본 내성이 높은 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정신줄을 놓고 있더라. ​

첫째 불쌍해서 어떡하나. 온갖 사랑을 다 누리다가 하루아침에 잃은 왕좌. 손톱 뜯기 입술 빨기 눈비비기 등등 온갖 종류의 스트레스 신체 반응이 나온다. 거기다 너무 힘든 엄마로부터의 부정적 반응. 청각이 예민한 아이면 동생 울음소리에 반응도 크다. 잘 못 자면 밤에 같이 깨기도 한다. 첫째가 밉다 라는 말 들어보셨나? 그게 그렇더라. 생존뇌가 발동하면 주의력이 떨어지고 당장 내가 돌보아야 하는 아기한테 포커스가 맞춰진다. 그것만으로도 힘들기 때문에 다른 힘든 건 방해물이 된다. 보통 엄마들도 그런데 예민 맘은 오죽할까. 정말 전에 쌓았던 애착으로 버틴다. 그때 마음을 상기하면서.. 이성의 뇌를 발휘하여.. 마치 오래된 부부관계처럼. 애착이 견고하지 않은 경우는 더 힘들 것이다.


첫째만 불쌍한 게 아니다. 둘째가 방치되는 경우 많다. 많은 경우 첫째한테 맞춰주고 둘째는 울던 말던 내버려 둔다. 그 뒤탈이 없을까? 예민함이 숨어있을 수 있는데. 상호작용이나 애착 문제도 그렇고.  “둘째는 그래도 잘 자라더라”라는 말 조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첫째 혼나면 쭈그리 되어 눈치 보고. 사랑을 온전히 받으려면 항상 쟁취해야 하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한 마리만 잡을 수도 없고.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엄마가 둘 다 상대해야 하고 초능력자가 되어야 한다. 말은 첫째와 하고 몸은 둘째와 놀아야 한다. 가능한 것인가? 당연 아니다. 나도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른다. 말하다가 꼬이고 둘째 케어하려다 놓치고. 나는 내가 아니고 나는 아이 둘의 아바타다. 패닉이 와서 멍하니 잠시 딴생각하면 첫째는 나 붙들고 계속 말하고 둘째는 클레이 주워 먹고 있다. 그나마 유일한 쉬는 시간은 첫째 기관 가고 둘째랑 둘이 있을 때.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다. 종일 쉬지 않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아무리 해도... 애들은 만족 못한다.


남편과의 사이도 위기다. 보통들 육아 삼 년 차에 남편과의 사이가 결정 난다고 하더라. 그런데 둘째 낳으면 둘째 돌 때 최종 결정 난다고 정정 요청하고 싶다. 우리 집도 첫째 안정되며 겨우 회복되는 듯했다. 그런데 둘째 돌 가까워져 바닥 찍고.. 다행히 다시 올라왔지만. 그간 있었던 일을 말해 무엇할까. 남편도 힘들어하더라. 이렇게까지 힘들 줄 누가 알았을까. 다만 한 가지는 생긴다. 저 여자 힘들긴 힘들었겠구나.. 인정받는 거?


이렇게 하루하루 살다 보면 날짜가 간다. 하루는 엄청 긴데 한 달은 무지 빠르다. 무슨 요일인지 무슨 날인지 감각이 없어도 가긴 간다. 우리 부부는 심지어 결혼 10주년도 놓쳤다. 20일인 줄 알고 부랴부랴 축하했더랬다. 그런데 다음날 보니 전날은 21일이었다. 이러다 보면 6개월이 지나고(기어 다니면 숨이 쉬어진다) 돌이 지나고(둘이 놀기 시작)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인 건가?


여태까지 내가 느낀 건, 엄마가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생존’ 해야 한다. 하루를 버텨내야 한다. 온갖 육아 욕심은 다 내려놓는다. 미니멀 라이프처럼 미니멀 육아가 필요하다. 밥 대충 먹고 청소 정리도 내려놓는다. 놀이나 발달 반응도 잠시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 뒤탈이 없도록 가장 중요한 것 몇 개만 챙겨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들- 예를 들어, 아이가 좋아하는 엄마여야 하고, 뭐 해줄 수 없으니 그냥 같이 데리고 다니고, 긍정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둘이 노는 날이 온다. 둘을 낳은 게 뿌듯해지는 날이 온다. 첫째는 수많은 한계 설정에 부딪혀 사회성이 올라간다. 하도 고통을 당해 회복탄력성도 업된다. 둘째는 첫째 혼나는 걸 많이 봐서 눈치껏 일찍부터 적응 잘한다. 또한 이것저것 조기 노출되니 빠릿빠릿하다. 가장 힘든 건 일 년이다 일 년!!


상상 초월로 너~~~ 무 힘들지만 단언컨대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다. 아주 가끔 정신 돌아올 때 보면 둘째가 너무 이쁘다. 첫째는 너무 기특하다. 사랑은 한 주머니에서 나누는 게 아니라 한 주머니가 더 생긴다. 몸이 한 개여서 생각만큼 못해줘서 그렇지 마음은 너무너무 크다. 물론 그래서 더 괴롭지만... 둘 다 잘 챙겨 줄 수 있는 날이 오겠지?


둘째를 낳아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경우의 수를 한번 이야기해본다. 도움받을 곳이 확실한 분. 남편의 육아 참여도가 높고 거의 싸우지 않는 분. 첫째가 넉돌 이상이고 매우 안정된 분. 부부 중 한 명이 순한 기질인 분. 멀티 능력자 분. 초인이나 도인을 능가하는 높은 정서 지능과 지치지 않는 체력의 소유자...


보통의 경우는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계실 것이다. 아마도 인생의 바닥을 보고 계실 것이다. 부디 적극적으로 주변의 도움을 찾으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상담도 받으시고, 돈도 좀 쓰시고, 이웃과도 연계를 맺으시고... 부디 이 힘든 기간이 트라우마로 남지 않도록.



둘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하다!

둘째 키우는 것은 진정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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