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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언 May 20. 2020

육아란 내가 하고 싶은 걸 내려놓는 것이다

포기는 배추 셀 때뿐 아닌 육아할 때도 쓴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하루 한 글을 올리기로 목표를 정했다. 하루 글 하나 그까이꺼~! 시간만 주어지면 충분하지~!! 라며 호언장담했다. 이 호언장담에는 큰 오류가 있었다. 시간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첫째는 유치원에 가고 둘째는 어린이집에 오전만이라도 잠깐 다녀오면 되었다. 그러면 내게 3시간 정도의 시간이 생길 수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발병했다. 우리 아이 유치원은 아직 정상 등원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참고로 우리 동네는 이태원과 가깝다.


밤에라도 애들 재우고 일을 보고 싶었다. 잠을 좀 못 자더라도 그리해야 정신적으로 괜찮을 듯싶었다. 그런데 아이 둘과 하루 종일 씨름하니 밤이 되면 이미 체력이 고갈되었다. 아이들을 재우다 나도 같이 잠드는 날이 부지기수. 재우다 잠들어 새벽에 깼다. 잠깐 일 보고 자면 다음날 피곤함이 극에 달했다. 만약 잠들면 그냥 쭉 자는 게 답이었다. 잠들고 아침에 일어나면 그리 억울하고 허탈했다. 그런데 그 날들이 반복되니 결국 체념이 시작됐다. 우울증 초기 증상이나 다름없었다. 아, 또 안되는구나. 또 조정해야 하는구나. 내 뜻대로 되는 거 하나 없는 육아. 지난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결혼 후 하던 일 모두 접고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정말 원하던 학교에서 원하던 공부를 했다. 내 열정에 상응하는 성적을 받았다. 아이 출산하고서도 계속 다닐 생각이었다. 그런데 임신기간 쏟아지는 을 주체할 수 없었다. 워낙 빡세기로 유명한 학교였다. 새벽에 마무리를 다 하지 못하고 잠드는 날이 늘었다. 결국 중간에 클래스 하나를 드롭했다. 어떤 과제는 마무리를 못해 0점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도 한두 수업을 들었다. 골반이 다 붙지 않았는데 밤앉아 공부를 했다. 그 학기 내 인생 처음 형편없는 성적표를 받았다. 고민 끝에 휴학하고 올인해서 첫째를 돌보았다. 내 도움이 많이 필요한 아이였다. 다시 돌아가려고 생각한 첫돌 즈음, 결국 나는 비행기표를 취소했다.


아쉬웠던 나는 둘째를 낳고 학점은행제로 아동학 수업을 들었다. 뭐라도 배운다는 것이 나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사실 방통대나 사이버대학을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클래스를 다 들을 시간이 없었다. 내게 적당한 수준은 딱 한두 과목 정도였다. 하루 삼십 분 정도 투자하는 것이 적당했다. 그래서 학점은행제로 한두 과목씩 들으니 나에게 딱 좋았다. 육아서를 워낙 많이 읽어놓아 어렵지 않았다. 에세이도 술술 써졌다. 그런데 그렇게 들으니 학위를 따기까진 너무 오래 걸렸다. 최소 삼사 년은 해야 할 듯했다. 당장 먹고살아야 하는 내게 공부는 찔끔찔끔하는 취미일 수밖에 없었다.


둘째 첫돌 지나 유튜브를 시작했다. 원래의 나 같으면 한 번에 달려들어 몰아쳐서 뭔가 하나라도 이루어 놓는데. 한 영상을 편집해 올리는 데 일주일이 걸렸다. 영상 하나 올리려다 다른 아무것도 못할 지경이었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시도했다. 아주 짧게 찍어 올리기도 하고, 대본을 워 찍어 컷 편집을 없앴다. 하지만 결국 유튜브를 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블로그 인스타 등 sns를 운영 중이다. 그런데 나는 인플루언서라기엔 한참 모자라다.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좀 나을 것이다. 하지만 답글 달 시간조차 부족한  현실이다.



뭘 해도 바람 빠진 풍선 같다. 내 특장점인 몰입치고 올라가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를 키우며 배웠다. 포기하기. 내려놓기. 갈 곳 없는 열정으로 나는 나 자신을 다스린다. 그 에너지를 나를 달래는데 쓴다.


가끔 상상을 해본다. 만약 내가 아이를 키우지 않는다면. 지금 어떻게 하고 있을까? 아마 나는 sns에 몰입해 다수의  플랫폼을 살려놓았을 것이다. 학위 받는 날짜를 앞에 두고 있을 것이다. 유튜브에서도 수익이 나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이 둘을 가정보육하고 있다. 편은 이런 내게 그런 되지도 않을 상상은 하지도 말라고 한다. 이번만큼은 남편 말이 맞다. 내가 상상해서 쓴 이 문단의 글은 없는 걸로 하자.


이런 방법도 있다. 돈을 쓰는 것이다. 특히 sns 같은 경우는 조력자를 만나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라고 요즘 생각하고 있다. 유튜브 편집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당장 수입이 필요한 내가 조달할 돈이 있을까? 회사 투자금액이라 생각하고 투자해볼까? 뭐가 됐던 돈을 벌기 위해 분명  시드머니는 필요하다. 육아 에세이를 쓰는데 경력단절 매거진에 어울릴 법한 글로 바뀌고 있으니 여기서 마무리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요즘 좋다. 드디어 집에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육아하며 나를 비우게 된다. 포기하는 법을 배운다. 내려놓는 걸 연습한다. 그래도 또 살아진다. 그 빈자리를 아이들이 채우고 내 가정이 채운다. 또한 그래도 또 방법을 찾게 된다. 타협안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언젠가 엄마가 아닌 나를 다시 펼칠 날이 오게 될까? 모르겠다. 엄마라는 타이틀을 빼고는 이제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지만 행복하다. 한계를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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