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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언 Mar 25. 2020

나는 고령산모다

임신은  내 적성 아니여라

고령산모 비율이 2018년 기준으로 30프로를 넘었다.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고령임산부는 만 35세 이상 임신 여성을 말한다. 사실 이젠 30대면 고령로 치지도 않는단다. 40대 임신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중 한 명이 나였다. 첫째는 턱걸이로 면했는데 둘째 때 나는 빼박 고령산모였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둘째 임신이 너무 힘들었다. 사실 임신 체질이 아니기도 했다. 첫째 육아를 겸해 더욱 버거웠다. 수많은 관문을 넘었다.


5주차. 살떨리는 임테기

첫째 반응


울 첫째에게 동생이 생겼다. 입덧이 있어 첫째에게 알려주었다. 초음파도 같이 가서 봤다. 그런데 그 때문인 건지, 퇴행이 왔다. 오랜 노력끝에 겨우 안정된 첫째였는데. 과잉행동에 통제가 안되었다. 엄마도 힘들고 아빠도 힘들. 본인도 힘들었는지 코감기에 열이 39도까지 올라갔다. 코감기를 가장 힘들어하는 아이. 밤에 1분마다 코에 소리가 난다며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달래고 안아주고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며 새벽 4시까지 씨름했다. 앞으로 더 많은 변화가 있을 텐데 어떻게 버틸지 걱정되었다. 오늘 밤이라도 편안하길 기도하며 잠이 들었다. ...이건 시작일 뿐이었다.



고령산모 딱지


병원에 임신 소식을 전했다. 진료 때 선생님의 눈이 반짝였다. 고령산모이십니다. 나에게 딱지가 하나 달렸다. 내 차트에 뭔가 밑줄을 쫙쫙 긋는 느낌이었다. 기형아와 조기 출산 위험사항은 나중에 들을 수 있었다. 습관성 유산 병력에 고령산모인 나는 집중 관리 대상이었다.



입덧 우울증


입덧이 심해 힘들다. 물을 못 마셨다. 멜론으로 90프로 수준을 섭취했다. 그마저도 오전에만 먹다. 물을 찔끔찔끔 겨우 먹는데 오후 3시 후 마신 물은 다 토다. 피부는 쩍쩍 갈라지고, 최소한의 수분으로 생명 유지했다. 저녁을 못 먹었다. 소화가 안되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몇 가지 없고 매일 다른 당겼다. 차라리 먹고 토하란다. 그런데 난 일부러 먹고 토하고 나면 다음날 반 죽음 상태였다.


참다 참다 입덧 약을 먹어봤는데 나랑 안 다. 항히스타민제가 소량 들어있는데 약이 깰 때 머리가 쪼개질 것 같고 수면 질이 매우 나다. 약을 포기하고 반찬을 주문했다. 그런데 냄새 때문에 냉장고 문을 열수도 없었다.  밥통은 오랜 기간 휴가를 떠났다.


매일 점심 밖에서 음식을 사 먹었다. 유달리 msg맛 민감했다. 그 맛이 강하게 느껴져 외식이 괴로웠다. 점점 나아져야 맞는데 수록 더 극으로 치달았다. 몸무게 빠졌다. 밤마다 토하며 변기 잡고 지겨웠다. 둘째가 반응이 강한 걸까 아님 내 몸이 예민한 걸까. 둘 다일까.



너무 힘들어서 찾아봤던 임신 호르몬 그래프. HCG가 줄어들면 입덧이 사그라든다는데. 답도 안 나오는데 혼자 분석하고 있음. 결국은 임신 일기가 입덧 일기.




기형아 검사


기형아 검사는 고령산모에게 필수 관문이었다. 니프티 검사를 했다. 대부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융모막을 선택하는 듯했다. 병원에서 고령산모라고 융모막을 권하는데 (거기다 담당 선생님이 융모막 권위자임) 난 모태 불안녀라서 0.1프로의 유산 확률이 두려웠다. 안전한 피검으로 하겠다고 했다. 니프티 검사 결과는  저위험군이었다.


 

살려주십쇼

수액 투혼


엄마는 염증끼, 탈수 증상, 두드러기 등 이제는 정말 무너져 가는데 둘째는 잘 크고 있다. 수액 맞으니 좀 살  다. 매주 몸무게가 줄어들었다. 맨  숫자가 바뀌었다. 결국 포도당과 수액 링거를 맞았다. 물을 못 마셔 바짝바짝 마르던 입이 좀 나아지는 느낌이었다.



태반이 자궁 입구를 막고 있다고라??

전치태반


초음파 사진에 조그만 하얀 화살표 있는 곳이 자궁 입구와 태반이 만나는 곳. 태반이 자궁입구에 걸쳐있었다. 반이 자궁을 막는 전치태반 끼가 있다고 하다. 폭풍 검색으로 전치태반에 대해 검색했던 내용들. 나는 주수가 일러 뭐라 말할 순 없지만 부분 전치태반인 것으로 보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님)

출처: 일산 제일병원


전치태반 위험이 높은 산모는? 전치태반 병력이 있다. 제왕절개를 했었다. 자궁수술 경험이 있다. 쌍둥이 출산 경험이 있다. 흡연자이다. 코카인을 피운다. 그리고 더 많은 아기를 낳았고 산모 나이가 더 많을수록. 출처: <Who's most at rist for placenta previa>


나이가 더 많을수록

나이가 더 많을수록

나이가 더 많을수록


허허하하 서러워라. 해당사항이 없지만 중요한 하나, 내 나이가 많구려.


전치태반 엄청 위험합니다! 출처: 생로병사의 비밀


위험하. 어떡하나. 나이 많은 것도 서러운데 전치태반까지. 며칠 동안 미친 검색 했다. 혹시 모를 제왕절개까지 머릿속 시뮬레이션했다. 중요한 건 '살면 된다'며... 이 주수엔 과한 심적 다짐을 하였다. 중에 정말 다행히 전치태반은 괜찮아졌다.





기질을 벌써 알다니


고반응성 기질 최고 연구자 제롬 케이건 박사님 왈, 심박수 빠른 아기 고반응성기질 확률이 높다고 하신다. 21주 둘째 심박수는 꾸준히 150을 넘고 170도 넘나들었다.  오호호호호호호호  둘째도 #민감한아기 뱃속부터 미리 당첨인가 에헤라디야. 하니베베카페로 정보 주신 쑥님 감사해요 :)



임당 검사


임당 검사를 했다. 평소 건강 음식에 신경 쓰는 편이라 별로 걱정이 없는... 줄 알았는데 임당 재검하러 오란다. 첫째의 컨디션 난조로 힘들었었다. 임당 검사 전 약 이삼일을 잠을 잘 못 잤다. 목이 가라앉고,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많이 피곤할 때 오랜 공복에 검사 약 먹으면 당이 튄단다. 아마 그 영향이 있었던 듯. 하지만 사실 이건 핑계 인지도 모른다. 나는 고령산모니까. 임당 재검 두 번 다시 가서 받았다. 마지막 결과는 다행히 정상이었다. 시 모르니 임당 검사 전 과로 조심!



첫째 육아


평일 첫째를 혼자 봤다. 집에 있기가 괴로워 무조건 나갔다. 나의 뇌는 정지상태 무아지경. 나가서 남편이 집에 올 때까지 버다. 밖에서 정신이 팔려야 입덧이 좀 나으니께. 나중엔 힘들어 꾸벅꾸벅. 첫째고 졸고 나도 졸고.

하도 나가서 버티니 난 밤 열시면 기절, 얼굴은 띵띵 붓고 입술은 부르다. 첫째에게 미안다. 토 려서 책도 못 읽어줬다. 진짜 정신력, 정신력 하나로 버다.


앞으로 어찌 버틸지 걱정이 되었다. 전치태반이라 그랬다가, 임당 재검 뜨고, 입덧도 심하고, 태동도 유별나고. 어느 날은 문득 너무 서러웠다. 엄마 임신 후 유달리 못 자는 첫째 겨우 재우고 밤에 혼자 쏟아냈다. 첫째 육아에 늙은 엄마 임신은 너무 힘들어. 휴. 그래도 감사해야지.



쓸데없는 연구


며칠 아픈 후 병원 내진하니 3센티 열렸다 다. 구글링 해보3센티 혹은 이상 열린 경우 85퍼센트의 확률로 일주일 안에 아기가 나온다는 연구결과. (일 센티 이하면 50프로 미만) 이젠 애 낳을 때도 연구결과를 찾는군. 아기 키우며 생긴 직업병(?).


예전에는 아기가 엄마한테 준비됐다는 신호를 보내면 진통이 시작된다는 학계의 주장이 강했다. 하지만 이제는 엄마와 쌍방이라는 연구결과다. 엄마의 자궁이 더 이상 기능을 안 하면 아기에게 신호를 보낸다고. 답할지 안 할지는 아기 맘 이겠지만.


또한 예정일 후 일이 주 늦게 나오는 아기는 보통 폐관련 원인이란다. 자세히는 태아 성숙, 엄마 면역 물질 등의 이유라나 뭐라나. 검색해보니 어떤 사람 시어머니는 옛날 애가 안 나와서 그냥 기다렸는데 한 달을 안 나왔다고. 여하튼 결론은 언제 나오냐는 거야!!!!



쓸데없는 리서치


인터넷은 정말 사랑이었다. 가족에게도 못 받는 위로를 해줬다. 찾아보니 나 같은 케이스가 좀 있다. 가진통이 오랫동안 심하고, 자주 낚였던 산모들의 공통적인 얘기는,


힘들고 지친다. 더 어려웠던 임신으로 기억된다. 낚여서 병원에 여러 번 들락날락하는 과정에서 맘 상하고 속상하고 눈물 나고 양치기 소년이 된다. 정말 진진통이 왔을 때 가족들이 안 믿어준다. 미리 자궁문이 열려있어서 실제 분만 시간은 짧다. 차에서 낳았다는 구글 후기도 봤고; 그전엔 빡세게 운동해도 안 나온다는 얘기들. 결국 또 낚인 경우 유도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음.


읽어보니 내가 괜히 힘든 게 아니었다. 이 와중에 입덧은 정말. 또 낚였을 때 가방 싸놓고 처음 든 생각: 애기 너무 궁금하다, 빨리 보고 싶다, 아플까 봐 무섭다, 아닌 이제 맛있게 밥 먹을  있겠다 였다. 내 모성애는 어디에.



쓸데없는 성찰


괜히 고령산모라고 하는 게 아니구나. 예전과 임신 출산 비교 금물. 아이마다 다 다르다. 자식은 정말 부모 맘대로 되는 게 없다. 셋째는 없다.




근데 넘 이쁘긴 하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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