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지언 Mar 06. 2020

손만 잡아도 애가 생긴다면서요

모두의 난임

난임 인구 20만 시대다. 7쌍 중 1쌍은 난임이라 한다. 이제는 난임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다. 내 주변만 보아도 그냥 평균이다. 사실 나도 임신이 잘 되지 않았다.


혹시 난임이세요? 출처: 연합뉴스/마이데일리



“손만 잡아도 애가 들어설 궁합입니다.”

결혼 전 재미로 찾아간 점쟁이의 말. 우리 궁합에 합이 들어 아이 걱정은 말라니 그 말만 철석같이 믿었다. 남편과 나의 나이 차이는 9살. 사실 바로 낳아도 늦은 때였다. 아이 대학 갈 때 예순 잔치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때 되면 되겠지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으로 황금 같은 젊은 (임신 가능성이 더 높은) 나날을 그냥 흘려보냈다.

그런데 때가 되어도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아니, 아예 생기지 않았다면 맘고생을 그나마 덜했을까. 정확히 말하면 나는 임신을 반복했다. 그렇다. 임신이 반복되었다 함은 유산이 반복되었다는 것이다.

첫 임신 때 나는 두줄을 확인하고 모두에게 알렸다. 두줄을 보았으니 모든 게 만사형통일 듯했다. 예쁜 태몽도 꾸었다. 내 마음은 이미 아이를 낳아 안고 있었다. 그런데 내 바램과 달리 아기집은 계속 보이지 않았다. 피검 수치는 조금씩 더디게 올랐다. 나는 결국 천명 중에 한 명이 걸린다는 ‘자궁외임신’ 판정을 받았다. 임신을 종결시키는 주사를 맞고 나올 때, 그때의 심정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끝났어도 포기하고 싶지 않던 마음. 아직도 뱃속에 있는 듯한 기분.  부작용인지 그 후로 나는 왼쪽 발에 냉증이 생겨 사계절 수면양말을 신는다.

그 후로 나는 5번의 유산을 더 반복하였다. 내 병명은 ‘습관성유산'. 난임 전문 선생님을 만났다. 그래도 안되어 병원을 옮겨 습관성 유산 전문 선생님을 만났다. 병원 입구에는 ‘난임'이라는 글자가 크게 붙어있었다. 처음 들어갈 때 살짝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그나마 '불임'이 아니라서 다행이라 생각 들었다.

모든 종류의 검사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바가지로 치면 어디가 새는지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한 번만,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임신이 되면 된다고 하셨다. 검사 결과는 허탈했다. 든 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뭔가 특이한 부분이 있었다. 살해 세포 수치가 너무 높았다. 몸에 과잉 면역력이 작용하는 듯했다. 평소 힘들면 두드러기가 생기곤 했었다. 나는 나를 적으로 알고 공격하는 걸까? 내 아이를 침입자로 알고 공격하는 것은 아닐까? 스트레스에 민감해서 애가 안 생기는 건가? 근거 없는 생각들에 사로잡혔다. 그런데 남편의 결과에서도 뭔가 나왔다. 이번만큼은 시댁에서도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저 우리에게 보약 한 첩을 지어주셨다.

우리는 고민 끝에 바로 시험관 시술을 선택했다. 지체하지 않는 것이 좋은 상황이었다. 과배란을 시작했다. 매일 주사기로 배에 자가 주사를 놓았다. 마치 내가 인공적으로 아기를 생산해야 하는 가축이 된 느낌이었다. 아무렴 어때. 제발 아이 하나만... 하나만... 밤마다 남편과 손을 잡고 기도했다. 종교가 없는 남편도 이때만큼은 나와한 마음 한 뜻이 되었다. 배란이 되고 수정란이 나왔다. A급 두 개를 이식했다. 하루 종일 구글링으로 시험관 성공 확률을 높이는 외국의 연구결과를 뒤졌다. 운이 좋게 나는 임신에 성공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지금부터였다. 원래 임신은 잘 되었으니까. 이제 유지가 되어야 했다. 습관성 유산 환자 위한 치료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과배란 부작용인 복수 때문에 포카리스웨트를 하루 두통씩 마셨다. 40주째 되는 날 나는 헬렌을 무사히 낳을 수 있었다.




난 유산이 반복되며 아이를 갖는 것에 자신감을 많이 잃었다. 해도 해도 안되니 치겠는 상태를 넘어 기상태에 이르렀다.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입양생각해냈다. 고민 끝에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단박에 거절하던 그. 이 세상 제일 미웠다. 비 오듯이 눈물이 났다. 왜 아이도 못 키우게 하는데. 난 이렇게 아이를 원하는데. 세상에 대한 모든 원망을 담아 남편에게 퍼부었다. 지금에야 남편이 이해가 된다. 내 아이 키우는 것도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나 그 당시엔 아무것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입양이 안되니 대리모를 알아보았다. 미국과 인도, 방법이 두 개로 나뉘었다. 비용에서 차이가 났다. 2013년 때쯤 비용으로 미국 2억 원, 인도 1억 원 정도로 정보를 찾은 기억이 난다. 한 가지라도 희망이 있다는 것에 엄청나게 안도했었다.


결과에 집착하지 않겠다던 나. 다 웃긴 얘기고 집어치우라고 해. 최악의 상황까지 가고 싶은 건가. 임신을 느끼는 내 거지 같은 몸뚱이. 더러운 세상. 신은 정말 없다. <두 번째 유산 때 썼던 일기>
세상에 임신만큼 나를 힘들게 했던 게 또 있을까. 이젠 정말 더 이상은 못 견디겠다. 더 이상 임신이라는 거 원하지 않고 이젠 도망가고 싶다. 난 너무 지쳤다. 안 되는 걸 왜 자꾸 가지려고 해. 그냥 그 부분 받아들이고 살면 되는데. 난 이제 더 이상 시도도 하고 싶지 않다. 내 몸 안에서 다른 심장이 뛰는 꿈을 꿨다. 그런 느낌일까. 나는 아마도 평생 느껴보지 못할지도 모르지. 억지로 하려고 되는 게 아닌 것 같다. <세 번째 유산 때 썼던 일기>


난임 여성이었던 난 극도의 우울증에 시달렸다. 밖에만 나가도 불행했다. 아이만 보였다. 엄마들이 부럽고 질투가 났다. 임신도 안 되는 여자라서 모두가 나를 쳐다보며 비웃는 것 같았다. 항상 모자를 푹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쓰고 다녔다.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말도 하기 싫었다. 사람을 기피하고 베란다 텃밭에 매달렸다. 베란다에 씨앗을 심어 키우는 게 재미있어 화분 두 개로 작게 시작했데 거기에 점점 몰입하게 된 것이다. 유산이 거듭될수록 베란다 텃밭의 규모가 커지고 전문적이 되었다. 지금 생각했을 때 아쉬운 건 기록으로 많이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때 나는 아이는 못 낳았지만 열매를 수없이 많이 맺었다. 매일 흙을 파고 담고 새싹들을 바라보며 자가 치유했던 것 같다. 


사실 연구결과 문제의 절반은 남자 몫이라 한다. 여자 위주로 난임에 대한 인식이 되어있는 것도 문제다. 그나마 검사라도 받으면 다행이다. 자신은 문제가 없다고 끝까지 검사를 받지 않는 사람도 있다 한다. 가족들도 임신이 되지 않으면 남자보다는 여자를 채근한다. 병원 시스템도 여자 위주로 되어있다.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것도 여자다. 하나 잘 되지 않으면 남자 쪽인 시댁에서 가장 타박을 한다. 난 여자 남자를 갈라 문제 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나 내가 직접 겪고 아팠던 일이기에 부득이하게 적어본다. 난임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하는 때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난임의 고통을 절대로 알지 못한다.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 제발 제발이라는 말이 수없이 나오는 그 간절함. 소망이라는 말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그 깊은 바람. 삼천배를 지내는 엄마도 있다. 무릎이 닳도록 절하고 또 절한다. 모 한의원이 좋다 모 음식이 좋다 하면 가림 없이 다 찾아가고 먹게 된다. 여행을 다녀와서 됐다더라 포기하니 됐다더라 하면서 여행도 다니고 마음도 내려놓는다. 나는 요가도 했다. 심리상담도 받았다. 한약도 숱하게 먹었다. 질려버린 보양식은 지금 입에도 안 댄다. 그렇게라도 해서 위안이 된다면 다행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 사실 정신이 반쯤은 나가 있는 상태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건 여자에게 무슨 의미일까? 여성성? 열매 맺음? 생존? 무엇이 되었던 많은 이들이 이런 아픈 과정을 겪고 아이를 낳는다. 안되면 또 해보고 또 해보는  필사적인 노력, 과정에서 수없이 몸이 상해도 아이 하나를 얻기 위해 감내하는 그 고통,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 초인의 힘이다. 이미 그 과정에서 마음만큼은 엄마가 되어있는지도  모른다. 몸은 설사 아이를 낳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껌딱아... 엄마는 오늘 하루 종일 울었다. 감격해서 울고, 기뻐서 웃다가, 또 옛날 고생한 게 주마등처럼 지나가서 울고. 우리 껌딱이 엄마한테 와주어서 고마워. 우리 껌딱이 될 놈인가 봐. 엄만 느껴. <임신이 첫 번째 안정권에 들어갔을 때의 일기>



너무나 갖고 싶던 이름, 이렇게 '엄마'가 되었다.

이전 01화 한때는 나도 잘 나갔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