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 가설. 힘들겠어요, 그래도 잘 자랄 거예요

내가 그리 듣고 싶던 한마디 말

by 엄지언

하루 종일 울고 뒤집어지는 내 아이. 과연 잘 자랄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될 땐 기초부터 의심이 들었다. 애착은 제대로 형성된 것인지, 아이가 정상은 맞는 지, 아니면 내가 무슨 문제가 있는 건지.


누군가 나에게 말해주어야 했다. 괜찮다고. 잘 자랄 수 있다고. 시간이 지나면 나아진다고. 사례가 필요했다. 그래도 잘 컸다는 확인 사살이 필요했다. 나뿐 아닌 내 주변도 의심하기 시작했다.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니야? 엄마가 뭐 잘못하는 거 아냐? 이렇게 좀 해봐요. 저렇게 좀 해봐요. 그렇게 하면 안 돼요. 반대의 반응도 상처가 되었다. 괜찮아요. 아무 문제없어요. 뭐가 힘들어요. 육아는 원래 그런 거예요. 그게 아닌데. 나 진짜 너무 힘든데. 여기 갈팡 저기 갈팡 나의 불안은 나날이 커져갔다. 그러다 돌잔치 스냅 작가 분을 만났다. 나와 남편 우리 아이를 찍으며 하신 첫 말씀.


머리에 원형 탈모가 있으시네요. 엄마가 참 고생이 많으세요.

흑. 가린다고 했는데 보이나요? 육아가 참 힘드네요.

그러게요. 정말 많이 힘드시겠어요. 저희 딸도 그랬어요. 그래서 알아요.


아 작가님의 딸도 그랬다니. 대체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계실까.


그런데요, 그 힘들었던 아이가 지금 너무 잘 자랐어요. 시간 지나면 괜찮아져요. 두 돌, 제일 힘든 건 딱 두 돌까지예요.

두 돌이요..?

그리고 정말 힘드니 아빠가 많이 도와주셔야 해요. 절대로 엄마 혼자서는 안돼요.


남편에게 직접 가서 이야기까지. 아 이 무슨 귀인이신가. 돌잔치 스냅 작가 분은 하늘이 나에게 보낸 천사셨다. 이 대화 하나에 내 돌잔치는 무사히 끝날 수 있었다. 돌잔치 사진을 보면 다 환하게 빛이 나는 듯하다. 나와 남편 아이까지 빛이 났다. 물론 다시는 하지 않고 싶을 정도로 엄청 힘들었음이다. 하지만 그분 덕에 힘듦은 두 번째가 되었다.


또 한 분이 생각난다. 분식집에서 저녁거리 포장을 했다. 여느 때처럼 아이를 아기띠에 안고 있었다. 손목이 나가 양쪽에 보호대를 차고, 칭얼거리는 아이를 둥둥거리고 달래며 기다렸다. 아이 셋과 함께인 어떤 엄마 한 분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기 보니 저희 첫째 어릴 때 생각이 나네요.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그런데 그 아이가 가장 잘 자랐어요. 얼마나 똑똑하고 바른지 몰라요. 시간 지나면 거짓말처럼 괜찮아져요. 힘내세요.


아... 나는 어쩌면 그냥 공감과 지지 그것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안 도와줘도 되니까 그냥, 힘들겠다고. 잘 자랄 거라고. 내 육아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두 사람. 선한 영향력의 그분들. 나도 그리 되어야겠다 결심한다.


나 나름의 공부를 했다. 그들은 그렇다던데, 그럼 그게 정말 맞는 이야길까.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사례는 없을까. 그런 중 난초 가설을 찾았다. 유레카를 외쳤다.




예민한 아이의 기질을 구성하는 여러 유전자들이 있다. 그중 스트레스에 취약한 일부는 우울증이나 중독 등 정신 질환의 원인이라고 알려져 왔다. 하나 이 유전자들이 대를 이어 유지되어 온 데는 나름의 생존 전략이 있을 터. 아니나 다를까, 최근의 연구들은 다른 견해를 줄줄이 내놓고 있다. 공통적으로 이 유전자는 좋은 양육 환경에서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고 이야기한다.


학자들은 이 아이들을 ‘난초’라 부른다. 키우기 어렵지만 환경을 잘 조절하면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는 이야기다. 반면 어떤 환경에도 잘 자라는 순한 기질의 아이들을 ‘민들레'라고 한다.


붉은 털 원숭이 실험에서 특별한 보살핌을 받은 어미에게서 키워진 난초들은 스트레스에 보다 강해졌다. 집단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 친구 사귀기, 동맹 맺기, 갈등 해소하기 등 핵심적인 사교 기술에서 다른 원숭이들보다 나았다. 그렇게 되기까지 관찰하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반면에 보살핌을 받지 못한 난초들은 최악의 결과를 보여줬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환경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부드러운 훈육을 받은 경우 더 친사회적이 되는 결과를 보였다. 든든한 환경에서 자라날 경우 각종 질환의 면역력이 더 높았다. 인지활동에서 높은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정서 문제가 적고 사교 기술이 더 뛰어났다.


우리나라에서도 연구가 있었다. 난초 아이들은 따뜻한 양육을 할수록 생활 만족도가 높아졌다. 민들레들과도 큰 차이가 없어졌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 생활 만족도가 눈에 띄게 떨어졌다. 난초들이 확 달라지는 부분도 있었다. 긍정적 양육 환경에서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높은 학업 성취를 보였다. 공부는 잘할 수도 있겠다. 작은 위안이 되려나


아이는 이렇게 자랄 것이다. 공감능력이 높다. 협조적이다. 친절하다. 양심적이다. 부당함에 쉽게 흥분한다. 자신의 일에 성공적이다. 난초 가설을 지지하는 벨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이 아이들을... 가변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나쁜 쪽으로도, 좋은 쪽으로도, 쉽게 변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부모의 양육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부모가 잘 키우면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부모가 좋은 환경에' 속해있으면 된다. 내 경험으로는 그것이 팔 할은 먹고 들어간다. 옛날에는 난초 아이를 키우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웃이 있었고 자연이 있었다. 그들이 반 이상 키워주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독박 육아의 시대 아닌가? 탈 자연화의 세상 아닌가? 모든 노력을 부모 특히 그중에서도 엄마가 해야 한다면. 그 엄마는 어떻게 되는 건가. 나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얼마나 망가졌는지. 나는 그 방법을 늦게야 깨달았다. 남은 끄트머리 힘 하나로 이 글을 쓴다.


난초 아이를 키운다면 무엇보다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부모에게 맞아야 한다. 자연을 가까이해야 한다. 사람을 찾아야 한다. 철저하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 도움을 받는 것에도 노하우가 필요하다. 으로 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써보겠다. 물론 부모가 직접 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사회의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가 직접 움직이기 시작할 때다.



그리고 당신, 정말 힘들겠어요. 알아요. 우리 아이들도 그랬거든요. 힘내요. 이 어둠이 지나면 밝은 빛이 비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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