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 Francia Feb 12. 2024

나의 봄방학에 관하여

매년 2월, 학사 일정상의 봄방학은 애매한 시기다.

학년마무리하는 시원함과 아쉬움, 새 학년에 대한 기대와 걱정, 설렘과 불안이 뒤섞인 마음 어수선하다. 이 시기엔 뭘 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렵고, 뭔가 하려고 해도 집중도 잘 안된다. 학창 시절에는 또 다른 시작이라는 압박감에 우왕좌왕했고 교사가 어서는 새 학기 업무 분장과 시수 분담을 둘러싼 크고 작은 갈등을 할 수 없는 불편한 음이다.


올해도 약 한 달간의 겨울 방학이 끝나고 2월 초에 개학을 했다. 일주일 남짓 등교를 하는 기간에 3학년의 졸업식과 1, 2학년의 종업식이 있은 후, 봄방학이라는 것이 시작된다.  2월을 봄이라 부르는 건 시기상조 일 텐데, 겨울방학은 이미 종료되었으니 어쩔 수 없이 '봄'을 갖다 붙인 방학. 겨울방학은 한겨울이고 여름방학은 한여름인 것을 고려하면 진정한 봄방학은 적어도 벚꽃 떨어지는 4월이어야 하지 않은가. 정작 그 시기엔 쉬는 날이 하루도 없는데! 봄방학 말고 더 그럴듯한 이름은 없었을까? 쓸데없는 생각을 이토록 진지하게 해 본다.




하지만 이번 2월은 다르다. 새 학기에 휴직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두 해 연속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과 복직을 반복해 온 지 어느새 7년이다. 그러느라 교사가 된 햇수는 십수 년을 훌쩍 넘겼음에도 실근무 경력은 그에 한참 못 미친다. 함께 부모가 되었지만 애들 아빠는 회사에서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으며 승진을 해왔다. 툭툭 끊기는 나의 교직 경력이 퍽 아쉬웠지만 휴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어디냐는 주위의 위로 혹은 부러움의 시선에 입을 꾹 다물었다. 남편이 육아 휴직을 할 수 있으면 좋았으련만 그는 회사 최초의 남성 육아 휴직자가 되는 거라며 심히 부담스러워했다. 나는 그런 훌륭한 개척 정신을 높이 샀을 테지만 그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은 학령기에 접어들었 올해는 아마 육아휴직의 마지막 해가 듯하다.


초등학교 1학년을 한 번 겪어본 엄마로서 올해 둘째의 입학에 크게 긴장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언니 보리가 든든한 2학년이 되어 동생 담이를 데리고 학교에 가겠다고 하니 이보다 더 안심이 될 수 없다. 출근을 안 하는 나는 가족들을 위한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학교 가는 아이들을 배웅하고, 그들이 돌아올 시간에 맞추어 간식과 식사를 준비할 것이다. 아이들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볼 것이고 뒤통수만 봐도 무엇이 필요한 지 알게 될 것이다. 힘든 일 기쁜 일 오늘 있었던 모든 일, 미주알고주알 쏟아내는 아이들의 이야기 지친 기색 없이 들어줄 것이다. 어릴 적 엄마가 내게 해주었던 대로. 나아가 엄마가 나에게 해주길 바랐던 대로 해줄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로 했다


가족 내의 역할도 소중하지만 '개인적 존재로서의 나'못지않게 소중하다. 그리하여 올해를 내 인생의 봄방학으로 삼아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책 읽기, 글쓰기, 요가.. 내가 좋아하는 일은 주로 무용한 것들이다. 이걸 통해서 뭔가 뚜렷이 성취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점에서 하다. 책 읽고 북튜버가 된다거나, 글 써서 책을 출판한다거나 요가해서 요가 강사가 된다거나 하는 세속적 욕망이 딱히 없다. 그저 조용한 곳에 가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이 세 가지만 주구장창 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 (글쓰기는 기복이 심하여 꾸준히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이들이 학교에 있을 길지 않은 시간 좋아하는 일들로 알차게 채워보고 싶다. 그중에서 요가는 내게 각별한 신체적, 정신적 활동이다. 움직이는 명상이라고 하는 요가는 복잡한 내 마음을 언제나 가라앉힌다. 몸도 개운해지고 활력이 생기는 건 덤이다.


요가라는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공부해보고 싶어서 이번달부터 요가 지도자 양성 과정에 등록했다. 관심 있었지만 나에게는 긴 시간과 큰돈과 많은 에너지가 드는 일이라 미루어왔다. 더 늦기 전에 해야말로 행에 옮겼다. 가원에 담을 받으러 갔을 때 선생님은 나에게 물었다.

 "강사 하실 계획이세요?"

그런 계획은 없다고 답했고, 선생님은 종종 나같이 그냥 배우는 게 좋아서 지도자 과정을 듣는 사람들 있다고 했다. 놀라운 건 요가 선생님의 전직이 고등학교 영어 교사였다는 말이었다.

"좋아서 계속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학교 그만둔 거, 후회는 없어요"

그녀의 말을 듣고, 역시 인생은 예측불가라는 생각을 했다.


내 형편에 과분한 수강료를 손을 덜덜 떨며 결제했다. 취미에 이렇게 큰돈을 들일 일인가 고민했지만,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 여기고 기꺼이 받기로 했다. 7달 동안 매일 내가 사랑하는 요가를 맘껏 할 생각을 하니 설렌다. 좋아하는 일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다 소중한 것이 있을까. 내 인생의 봄방학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존감 낮은 사람이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