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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Jun 27. 2024

절에서의 하룻밤

아이들과 함께, 화엄사 템플스테이

남편은 지리산을 사랑한다.

해 일출을 보 위해 천왕봉에 차례 올랐고, 리산 종주도 여러 번 . 회사에 연차를 내고 등산을 다녀그에게는 비장한 설렘이 있.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을 봤다며 어찌나 자랑을 하던지. 도 그를 따라 1박 2일 산행을 간 적이 한번 있는데 짙은 안개 때문에 일출은 지 못했다.



'지리산 화대종주'라는 말이 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를 의미한다는 것을 나는 이번에 알았다. 종주를 시작할 때 지나치는 화엄사에  한번 문해보고 싶다는 말을 종종 했다. 그 소원 내가 들어주지, 하는 마음에 시도한 일이었다. 운 좋게 화엄사 템플 스테이 예약에 성공다.



우리 가족 모두에게 생애 첫 템플 스테이였다. 나는 큰 설렘과 자잘한 걱정들을 품고 있었다. 활동적인 두 어린이가 에서 소란을 피울까 봐  염려되었다. 내 맘을 알 리 없는 보리와 담이는 신이 서 방방 뛰었다.


절에서 잔다고요!? 오~~ 재밌겠다~~ 절에도 침대가 있을까? 파자마도 챙겨야겠지? 엄마, 보드게임 가져가도 돼요? 줄넘기도 가져가야지! 연필깎이랑 색연필도!

 

줄넘기는 안 가져가는 게 좋겠다고, 할머니집에 가는 거랑은 다르다고, 거기선 조용히 지내야 한다고 애들을 진정시켰다. 그래도 불안했다. 남들에게 폐를 끼쳐서 행여나 쫓겨나진 않을지. 워낙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들이라 평소에 들을 데리고 카페가지  지 말이다.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떠나는 토요일. 비가 많이 내다.

운전 중에 호우주의보에 주의하라는 안내문자 받았다. 휴게소에 들러 간식을 사 먹으면서 남편과 나는 운전을  번 교대했다. 뒷좌석에 앉은 아이들과는 끝없는 끝말잇기 스무고개를 다. 차 안에서 조용히 창밖의 풍경을 감상하는 일을 아이들에겐 해당사항 없다. 게임하다 지친 자매가 르르 잠들 마침내 요함이 찾아왔다. 루프에 타닥타닥 어지는 빗방울 소리 흘러나오던 재즈 어우러졌다. Duke Jordan의 Everything happens to me 가  좋아서 몇 번이고 반복 재생을 했다. 조용한 차 안의 공기가 감미로다. 그래, 나는 이렇게 음악을 듣고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운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순간이 주는 충만감을 느끼며 우리는 손을 잡았다. 그날은 우리의 결혼 10주년 기념일이도 했다.



3시간을 달려 절에 도착했다. 각자 배낭을 메고 템플스테이 사무실로 가자 내직원이 우리 맞이해 주셨다. 무지고 친절한 분이다. 어떤 곳이든 처음 도착해서 만나는 사람의 인상이 그곳의 인상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우리 어린이들을 환대해 주셔서 는 살짝 감동받았다. 우리 방사에는 이들위한 색칠놀이와 스티커등 놀잇감이 비치되어 있었다.



에는 침구 4장이 듯하게 깔려있었고 깔끔한 화장실이 딸려 있었다. 간소하지만 필요한 것은 모두 있었다.(수건과 샤워용품은 개인이 준비해야 한다.) 리는 짐을 내려놓고 제공받은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안한 옷차림을 한 채 요  위에 벌러덩 누더니 "아 좋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열린 방문을 통해  밖의 풍경이 고했다. 빗소리 산사의 풍경을 더욱 운치 있게 만든다. 빗물이 처마 끝에서 모래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기분 좋은 리듬감을 자아냈다. 에는 안개가 자욱해서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돌았고, 새로운 세상에 들어온 듯 비현실적이었다.


방사에서 내다본 풍경
우천으로 인해 아침 산책(암자순례)이 명상으로 변경되었다


화엄사 각황전


간단한 오리엔테이션 이후 사찰 투어를 했다. 화엄사는 백제 때 지어졌지만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7세기에 재건되었다고 한다. 리나라의 국보와 보물을 다채롭게 소장하고 있는 유서 깊은 절이다. 대웅전은 현재 보수 중이라 볼 수 없었고 각황전에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천고가 높은 각황전은 그 규모와 공간감이 웅장했다. 이 낡은 사찰이 겪었 일들과 이곳에 다녀갔을 무수한 옛사람들을 헤아려보며 아득해졌다. 수백 년 동안 저 석탑은 무엇을 보았왔을까. 저 홍매화 나무는 해마다 봄이되면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왔겠지. 각황전에 앉아계신 부처님은 어떤 이들의 기도를 들어왔을까. 자세히 관찰하면 달리 보이고, 모르던 것을 알게 되며,  사랑을 가져오는 법이다.




5시가 지나 공양을 했다. 어릴 적 엄마를 따라 부처님 오신 날에 절에 가서 밥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비빔밥이었던가. 그때는 인파로 북적대던 공간에급히 식사를 하느라 맛을 잘 몰랐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절밥이 이렇게 다채롭고 맛있을 수 있다니. 리는 연신 라워하며 밥을 먹었다. 식을 하는 딸들은 쌀밥을 깨작거리고 있었는데, 그걸 보신 스님이 웃으며 조미김 두 봉지를 갖다주셨다. 이가 내 어깨를 끌어내려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엄마, 스님이 착해요!" 분에 아이들도 밥을 싹 비웠다. 양간 출구 근처에는 장독대가 빼곡했다. 마늘이 빠졌는데도 감칠맛이 난 건 잘 담근 장맛 덕분이었을까. 식사 후에도 소화가 잘되고 속이 편안고 가벼웠다.


절에서 먹은 세 끼


저녁 공양 후 스님과 차담이 있었다.

시간 맞춰 공용 거실로 가보니 인원수에 맞게 찻상이 준비되어 있었, 스님이 차를 우려내 계셨다.

조금 전 식당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김을 갖다 주신 님이셨다. 곳에는 참가자 10명 중 유일한 어린이들인 내 딸들을 위한 다과상 세팅되어 있었다. 색이 예쁜 오미자차와 과자를 보고 아이들이 어찌나 좋아하던지. 어른에게는 발효녹차만 주어졌기에, 그 자리에 있던 어른들은 모두 어린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라보았다.


어린이를 위한 특별한 다과상♡


스님과 가까이 앉아 대화를 나누는 경험이 신선했다. 무교인 나는 모든 종교인에게 거리감을 느끼는 편인데, 화엄사 성각스님을 통해 스님이라는 존재가 친근해졌다. 우리는 행복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님은 참가자 모두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건네시고, 렵지 않은 질문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내.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 둘러앉아 있는데도 마음이 편안했다. 똑같은 옷을 입고 있어서였을까.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온화해서였을까. 



'자신이 행복해야 타인을 돌볼 품이 생긴다'는 말씀이 깊이 와닿았다. 평생 자녀를 위해 희생하는 부모의 삶을 예로 드셨다. 그것 또한 숭고하지만 자신의 삶을 놓치지 말자는 메시지였다. 어디선가 읽은 쇼펜하우어의 말이 떠올랐다. "가장 좋은 것을 늘 나에게 먼저 주어라. 행복은 거기에서부터 온다."



분주한 일상을 살다 보면 잊어버리고 마는 것들이 있다.

내 삶의 무게 중심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소중한 걸 발견한 기분이었다. 여행이 주는 가장 좋은 효용, 그것은 낯선 환경으로의 전환이다. 전환된 감각은 광학렌즈처럼 세상을 넓게 보게 한다. 속세와 멀어진 곳에서 그 감각은 한층 선명해졌다. 내 존재가 피어나는 순간은 바로 이런 때이다. 보리와 담이 처음 만져보는 찻주전자를 달그락 거리며 나름의 방식으로 차담시간을 즐겼다.




이튿날 아침, 6시 전에 아침 공양을 했다. 절에서는 하루가 일찍 시작되고 일찍 마무리된다. 아이들은 매끼 밥을 깨끗이 비웠다.(스님께서 꼬박꼬박 김을 챙겨주셨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의 방식대로 사용한 식기를 직접 설거지했다. 자신의 그릇과 수저, 컵까지 직접 세척한 자매는 몹시 뿌듯해했다. 집에서 보리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한 적이 있지만 나는 자주 말렸었다. 접시를 깰까 봐, 다칠까 봐.

환경을 만들어주고 꾸준히 가르치면 아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날 테다. 나의 불안이 아이들이 능력을 발휘하고 성취감을 느낄 기회를 막는 건 아닌지 생각했다.


식기세척실에서 담이와



남편과 나는 아침 명상 참여했다. 비가 와서 대체된 일정이 나는  반가웠다. 스님이 어렵지 않게 가이드 해주셔서 명상을 처음 접한 남편도 꽤 집중했다. 명상시간에 눈을 감고 있다 보면 졸리기 마련인데, 잠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마음속으로 내 이름을 되뇌는 '내 이름 부르기 명상'을 배웠다. 계속 반복하자  이름이 낯설게 들렸고, 정신이 깨어났다. 요가센터가 아닌 곳에서 명상을 하며 상이라는 세계에 한 뼘 더 가닿은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요가와 불교는 닮은 구석이 있다. 인도에서 유래했다는 점, 합장 인사를 한다는 점,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는 점.


 

우리는 점심공양까지 살뜰히 챙겨 먹고 퇴소했다. 때마침 특식이었다. 메밀국수, 유부초밥, 떡볶이! 모든 메뉴가 너무너무 맛있었다. 아이들은 어느새 묵언공양에 익숙해져 있었다. 눈을 똥그랗게 뜨고 엄지 척하며 맛있음을 표현했다. 그런 자매를 귀엽게 보시던 템플스테이 일행분께서 식사 후에 말씀하셨다.

"애기엄마, 어쩜 애들이 이렇게 차분해요? 정말 잘 키우셨네요."

그러고 보니 천방지축으로 산만하던 아이들이 사찰 분위기에 조금 스며든 것 같았다. 아이 잘 키웠다는 칭찬이 부끄럽고 기분 좋았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보리가 말했다.

"엄마, 절 사람들은 다 착한 것 같애."


담이도 말했다.

"우리 다음 주 토요일에 또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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