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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Jul 29. 2024

화내지 않는 방법이 있긴 한데

그날도 보리와 담이는 말다툼을 했다. 늘 그렇듯 싸움의 발단은 기억나지 않는다. 참을 수 없이 소한 일이었다는 건 분명하다.


연년생 자매는 하루에도 몇 번씩 싸운다. 볼멘소리를 주고받다가 누구 하나가 웃음이 터지는 통에 바람 빠진 풍선처럼 되고 마는 상황도 있지만 때로는 격해진다. 서로 언성을 높이다가 소리를 빽 지르고, 울음이 터지고 눈물 콧물을 흘리며 맹렬하게 꼬집고 밀친다. 분이 안 풀렸을 땐 슬쩍 발을 걸어 넘어뜨리거나, 상대방이 좋아하는 물건을 망가뜨리는 방식으로 복수를 하기도 한다. 무섭다.


나는 아이들이 싸우는 걸 보고 있기가 힘들다. 마음의 평화를 최선의 가치로 두는 나는 갈등 상황에 유독 취약하다. 어린이들이 격해지면 내 목소리도 따라 격앙되고 이성이 무너진다. 평정심은 이미 다 잃었다.  "다 그만둬!" "그거 이리 내! 싸우면 둘 다 못 가질 줄 알아!" "각자 방에 들어가서 엄마가 부를 때까지 나오지 마!" "오늘 다이소 가기로 한 거 다 취소야, 너희들은 선물 살 자격도 없어!" 독한 말들이 입에서 쏟아져 나온다. '하나 있는 집은 얼마나 평화로울까. 나는 어쩌다 둘이나 낳았을까..' 독한 생각에 휩싸인다. 이런 내가 싫다.




그날 자매가 서로 화해한 뒤, 우리 셋은 식탁에서 귤을 까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엄마는 말이야, 참 궁금해. 이번에 학교에서 받아온 통지표를 보니 우리 보리가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라고 적혀있었어. 우리 담이는 모두를 위해 자기 것을 희생 있더라. 그걸 보고 참 기특했지.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집에서는 서로 싸우는 걸까?


-그러게.


-그런데 생각해 보면 엄마도 그런 것 같아. 엄마도 밖에 나가서 다른 어른들한테나 엄마 학교 학생들한테는 화를 안내거든? 아니, 화가 안나거든? 그런데 너희도 알다시피 엄마는 아빠한테 자주 화를 내지. 그리고 너희들이 싸울 때도 아까처럼 소리 지르고 말이야. 엄마는 왜 그런 걸까?


-보리: 응.. 생각해 보니까, 우리가 가족한테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 같아.

-담: 맞아, 밖에서 착한 사람을 많이 하고 와서 집에서는 안 하고 싶은 거 아닐까?


-그렇지, 그런데 생각해 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은 누구지? 그 사람들은 밖에 있어? 아니면 우리 집에 있어?


-담: 집에.

-보리: 가족이 제일 소중하지.


-맞아. 그래서 말이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족에게 화를 안내기 위해서 엄마는 요즘 연습하는 게 있어. 나는 너희들이 싸울 때 화가 나거든? 그래서 그럴 땐 이렇게 생각해. 좀 이상하게 들릴 순 있지만, "쟤들은 내 딸이 아니다.. 쟤들은 이웃집에서 놀러 온 애들이다..." 이렇게 말이야. 그러면 신기하게 화가 안나! 너희도 해볼래?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화를 낼 수가 없어!


자매가 어쩐지 좀 주춤거렸다. 보리는 '응.. 그렇구나.' 했고, 담이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담: 엄마 근데.. 그건 좀 슬퍼. 엄마가 우리를 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나는 너무 속상해. 

-아(살짝 당황) 그러니까 아주 잠깐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마음속으로. 보통 땐 그런 생각 절대 안 하지.

-담: 그래도 그 생각은 슬퍼.. 그냥 화를 내면 안 될까?



나는 시무룩해진 귀염둥이를 안아주지 않을 수 없었다.




방학식날 아이들이 한 학기 동안의 활동물을 가져왔다. 이런 걸 배웠구나, 이런 걸 만들었구나, 이렇게 썼구나.. 혼자 한참 들여다보며 웃었다.


보리는 좋아하는 사람 소개하는 글쓰기에 담이에 관해 썼다. 집에서는 쓰지 않는 일기를 학교에서 잘도 썼다. 글씨도 표현도 자기처럼 예쁘게 쓴다.




담이는 우리가 다음 달에 절에 가기로 한것를 기대하고 있었나 보다. 종을 어떻게 치는지, 강당이 넓을지 그런 것이 궁금했구나.


이의 틀린 맞춤법이 아이처럼 귀엽다.

틀린 줄도 모르고 이렇게 또박또박 쓰는 것이 사랑스러워죽겠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인다. 아직 이렇게 어리고 서툴구나, 싶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얘가 글자를 하나도 안 틀리고 완벽하게 쓰게 되면 지금이 많이 생각날 것이다. "엄마! 나 방학끝나면 2학년이야?"라고 묻는 천진한 이 1학년이 떠올라 웃겠지.

감사하고 소중한 한 시절이 지나간다.


큰소리를 안 쳐도 억울하지 않을 만큼, 꼭 그만큼만 아이들을 위하고 사랑하리라는 게 내가 지키고자 하는 절도다. 부모의 보살핌이나 사랑이 결코 무게로 그들에게 느껴지지 않기를. 집이, 부모의 슬하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기를 바랄 뿐이다.

박완서,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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