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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백만 Aug 10. 2021

어느새 늙어버린 우리 아빠

- 자꾸만 뒤처지는 아빠....

한순간이었다. 아빠가 아저씨에서 노인으로 변해버린 건....

내 나이가 한 살씩 늘어갈수록 아빠의 나이도 한 살씩 늘어간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한순간에 노인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


운동으로 단단해진 두꺼웠던 어깨는 움켜쥐면 부서질 듯 얇아졌다.

단단했던 두 다리가 생명을 다한 노계처럼 앙상한 뼈만 남았다.

목젖을 감싸고 있던 근육이 늘어져 아래로 툭 떨어졌고

아빠의 목에서는 쉰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빠, 왜 아빠 목소리에서 할아버지 소리가 나?"

어눌하고 쉬어빠진 저 목소리가 아빠의 목소리일 리가 없다.

"니 아빠 이제 할아버지야. 나이가 70이 넘었잖아."

옆에서 콩나물을 다듬으며 엄마가 한마디 거들었다.

"할아버지...."

나는 아빠가 할아버지가 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우리 아빠는, 우리 엄마는 영원히 나에게 엄마 아빠일 뿐 이렇게 늙어버리라고 상상도 못 했다.

아니, 막연하게 상상은 했지만 그걸 현실로 직접 만나니 믿을 수가 없었다.


"나 바다 보고 싶어."

그때 아빠가 말했다.

희미하게 웃고 있는 아빠의 얼굴에 주름이 너무 많아 낯설었다. 

어느새  풍성했던 눈썹이 새하얗게 변해버려 아래고 내려앉았다. 머리는 이제 가죽이 훤히 보일 정도로 듬성듬성 빠져 버렸다.

내가 그렇게 무서워했던 아빠가, 내가 그렇게 든든해했던 아빠가~ 

이제는 없다.

"그래. 가자. 제주도 여행 갈까?"

나는 당장 아빠가 떠날 것처럼 두려웠고 그래서 망설임 없이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그렇게 우리 셋은 제주도로 떠났다.

첫날 공항에서 아빠는 길 잃은 아이처럼 불안해했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우리를 놓치지 않을까 초조해하며 연신 식은땀을 닦았다.

나는 아빠의 팔짱을 꼭 쥐고 사람들 속을 헤집고 들어갔다.

아빠는 사람들에 부딪혀 계속 뒤처졌다. 아빠가 어느 순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왜 그래?"

"응? 이상하게 무릎이 아파서."

아빠는 자리에 멈춰서 손으로 연신 자신의 무릎을 주물렀다.

'이젠 정말 늙어버린 거야? 정말 할아버지로 변해버린 거야'

언제부터 아빠가 할아버지로 변해버렸던 걸일까?

아빠의 모습을 도저히 볼 수가 없어 고개를 돌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 슬프게 했다.

아빠 옆에서 아이 대하듯 그를 챙기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도 곧 할머니가 되겠지?

반짝이는 눈동자는 점점 생기를 잃어 갈 것이다.

자그마한 키는 더욱더 작아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나갈 것이다.

만날 수 있을 때 더 자주 만나고, 만질 수 있을 때 더 자주 안아줄게

아프지 않게, 조금 더 행복하게 있다가 떠나 줘.

부탁할게....

4월 제주도 섬 가파도의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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