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18
명절을 며칠 앞두고 거실에선 종종 큰 소리가 났다. 동생과 나는 그걸 ‘전야제’라고 불렀는데 싸움의 원인은 대게 돈 이었고, 아빠 지갑이 헐렁해질수록 고함소리는 육두문자를 더해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다. 나라면 엄마처럼은 안 살아, 태어날 때부터 새겨졌을까 그 말을 달고 살았는데 그 시절에는 싸움의 원인이 돈이 아니라 엄마인 것 같아서 엄마가 미웠다.
아빠의 원맨쇼가 끝나면 엄마는 통곡하듯 주방 일에 몰두했다. 도마 소리는 평소보다 컸고 그릇들도 유난히 화가 나 깨질 것만 같았다. 주방을 방패 삼아 입이 아닌 온몸으로 크고 무서운 소리를 만들어 내던 엄마. 그 소리와 함께 눈물인지 콧물인지 모를 액체를 연신 맨손으로 닦아내던 엄마. 전야제의 끝은 꼭 성을 붙여 날 부르는 걸로 대부분 마무리됐다. 그런 날은 눈치껏 숟가락을 놓고 밥이 차려지면 동생을 불렀다. 우리가 앉으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얼굴로 아빠가 못 이기는 척 자리를 잡았다. 마지막으로 식탁 젤 끝에 자기 밥그릇을 툭 놓는 엄마. 바로 앉지 않고 얼마간 헤매다 자리에 앉는다. 아빠랑 최대한 멀어질 맘이었을 텐데... 네모난 6인용 식탁에서는 멀어져 봤자 결국 마주 봐야 한다. 도망갈 수 없는 사람처럼 엄마가 앉은자리는 결국 아빠 앞이다. 나와 동생도 멀리 가지 못하고 둘 사이에 끼여 있다. 조용하다. 씹지 말고 밥을 삼켜야 하나 싶은데 아빠가 허공에 대고 ‘국 좀 더 도’ 뱉어낸다. 옆에 앉은 내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찰나 엄마가 저 끝에서 팔을 뻗어 국그릇을 낚아채 일어난다. 그러면서 ‘건데기도?’..... 한다. 몇 분 전까지 식탁 주위를 감싸고 있던 먹구름이 팡 하고 터지는 기분, 젖어도 좋을 만큼의 비가 식탁 위로 내린다. 우산을 준비할 틈도 없이 저 둘은 그렇게 싸우고 이렇게 화해한다. 가장 멀리 앉았지만 결국 마주 봐야 하는 저 둘. 식탁만큼의 거리를 유지한 채 살아가는 내 부모. 내가 저 둘을 완벽히 이해하는 날은 오지 않을 거야. 아니 이해하지 않을 거야. 어차피 변하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