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린블루밍 Oct 19. 2021

사람에게는 얼마만한 땅이 필요한가

욕망과 성취의 사이


톨스토이의 단편 제목이다. 사람에게는 얼마만한 땅이 필요한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 속에 살고 있는 현재, 시기적절한 물음이기도 하다. 단편의 주인공인 빠홈은 원래 남의 땅에서 경작을 하며 노동의 대가를 받고 살다가 우연한 기회로 땅을 소유하게 된다.


영원히 자기 것이 된 땅에 나가 새싹과 목초지를 보고 오면서 빠홈은 기뻐 견딜 수가 없었다. 풀이 자라고 꽃이 피는데, 다른 어느 곳에서도 그렇게 잘 자라는 것 같지 않았다. 예전에 그 땅을 지날 때는 다른 땅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땅이 아주 특별하게 느껴졌다.


전월세를 살다가 작고 구축인 아파트라도 마음대로 못질할 수 있는 내 집이 생긴다면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내 것이 되고 나니 괜히 더 좋아 보이고 특별하게 느껴지는 마음. 자연스러운 이치다. 부동산 앱을 들어가 봐도 어떤 아파트를 클릭해 관련 게시글을 쭉 살펴보면, 자신의 아파트가 얼마나 살기 좋고 괜찮은지 써놓은 걸 쉽게 찾을 수 있다. 본인도 리뷰를 써야 다른 사람들의 게시글을 자유롭게 볼 수 있다고 해서, 나도 우리 집 아파트에 대해 적은 적이 있는데 좋은 말 위주로 쓰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더라. 우리 집이 더 좋게 평가받아 가격이 오르길 기대하는 것도 있지만, 실제로 오랫동안 거주하면서 익숙해지다 보니 불편함보다는 편안하고 안정적인 점들이 더욱 짙게 느껴져서 이기도 했다.


<사람에게는 얼마만한 땅이 필요한가>에서 빠홈은 굉장히 솔깃한 이야기를 듣고 기회의 땅을 찾아간다. 하루 동안 자기가 걸어 다닌 만큼의 땅을 모두 주겠다는 조건이었다. 대신 해가 지기 전까지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와야만 조건이 성립된다.


하루 동안 자기가 걸어 다닌 곳을 다 주겠다는 유혹. 철저히 계산하며 걸었지만 결국 욕심이 커진 탓에 그는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와 그 넓은 땅을 가지게 되는 순간, 피를 토하며 죽음을 맞이한다. 빠홈은 정확하게 머리에서 다리까지 들어갈 수 있는 2미터가량의 무덤에 묻혔다.


넓은 땅을 목표로 호기롭게 출발한 그는 하루 만에 시체로 돌아왔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빠홈의 눈앞에 펼쳐진 땅처럼 끝없는 욕심 때문이었다. 돌아갈 길을 생각하며 체력을 안배했어야 하는데, 걷다 보니 땅을 조금 더, 조금 더 갖고 싶다는 욕망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죽음에 이를 만큼 무자비하게 넓은 땅을 걸었던 빠홈, 그는 결국 2미터밖에 되지 않는 작디작은 땅을 소유하고 생과 작별한다.


목표를 설정하고, 원대한 꿈을 펼치는 것과 무작정 욕심만 부리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만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단순히 욕망에 불타올라 나를 갉아먹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스스로 멈출 줄 알아야 한다. 초연한 태도로, 자신의 모습을 객관화할 줄 알아야 한다. 멀리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구름처럼, 자신을 좀 멀리 떼어놓고 살펴봐야 한다. 욕망이 무조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적절한 욕망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일상에 동력을 불어넣는다. 다만, 빠홈처럼 과한 욕심을 잘못 활용해 비극적인 결말을 맞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자신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2030세대의 자산격차를 다룬 기사를 보았다. 소득보다는 부의 대물림으로 인한 세습 중산층 사회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런 글을 보면 사실 질투도 나고 조급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대물림할 정도의 부를 쌓기 위해 그들의 부모는 어떻게 성공 궤도에 올랐는지 관심을 갖고 배워야 한다. 또 2030세대는 어떻게 그 부를 유지하고 불려 가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내가 성장하고, 내 삶이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다.


살면서 목표와 성취는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다. 달성 여부를 떠나  가지 목표가 지워지면 그다음 목표가 있어야 한다. 자잘한 계획이어도 좋다. 뭐가 됐든 자신의 삶에 동기부여를 주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는 의미가 있다. 나는  살지. 뭐하러 사나. 이런다고 뭐가 바뀌겠어. 이런 생각이 들지 않게 하려면 삶의 의미를 찾아가야 한다. 인간은 목표한  갖게 되는 순간,  다른  갖고 싶어 한다. 누구나 그렇다. 그것이 과한 욕망이 아닌 삶의 의미를 갖게 하는 적절한 동력으로 작용하도록 약간의 주의만 기울이면 된다. 욕망과 성취의  아슬아슬한 균형이 우리사는 재미를 보도록 도울 것이라 믿는다.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이 상상력이라는 갈망은 아무리 채워도 또 새롭게 살아나 다른 것을 원하지요. 원하는 것을 다 갖는 순간, 또 더 큰 욕망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 철학자 이믈락(Imlac)

이전 07화 구름은 사랑을 안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