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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레테 작은 성당의 천사

오늘은 내가 나폴레옹이다 (10)

by Kevin Kim

2024년 4월 27일 토요일 (8일 차)

로그로뇨에서 작은 고을 나바레테까지



종일 비가 예보되어 있고, 앞으로 며칠간은 계속 비가 내릴 것이다. 이제 시차는 완전히 적응됐고, 어젯밤은 1인실에 머물다 보니 아무런 간섭 없이 6시까지 푹 잤다. 일반 알베르게였다면 출발하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게으름을 부릴 방법이 없을 텐데 여기는 혼자 있는 아파트이기에 편하게 누워 있었다.


비 내리는 토요일 아침 온 천지가 조용하다. 오늘은 거리를 줄여 ‘나바레테’까지만 가기로 했다. 체력 회복이 필요했고 이틀 전부터 발목 근육도 많이 뭉쳐져 올라오고 있어 하루 이틀은 가볍게 걷기로 일정을 조정한 것이다.

비가 많이 내린다. 도심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온몸은 흠뻑 젖었다. 앞뒤에 사람이 보이지 않아 길을 제대로 가고 있나? 의문이 들 때쯤 산 미구엘 공원을 지나가는데 이곳저곳에서 순례자들이 하나둘 까미노로 합류하기 시작한다. 이런 큰 도시에 숙소가 펼쳐져 있었으니 순례자를 보기 힘들었던 것이다. 모두 어느 곳에 선가 하루를 쉬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다. 나는 지금 대도시 로그로뇨를 빠져나가고 있다.

비 내리는 토요일 이른 아침 길에는 순례자뿐이다


앞에서 내리는 비는 얼굴을 적시고도 성에 차지 않는지 목덜미를 타고 내려와 가슴으로 흐른다. 차가운 빗줄기가 가슴으로 하나가 내려올 때마다 섬뜩한 기운이 든다. 다행히도 스패츠까지 덧신은 신발은 물이 들어오지 않아 뽀송뽀송하다.

로그로뇨에서 제작한 순례자 이정표


그런데 어제부터 다리에 이상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왼쪽 발목 위쪽 근육이 단단하게 뭉쳐 눈에 보일 정도로 올라와 있고 한걸음 걸을 때마다 근육이 땅기면서 아프다. 또 발바닥은 물집이 잡히려는지 이상한 물컹거림이 느껴졌다. 길가에 배낭을 내려놓고 등산화를 다시 고쳐 신어도 보고, 등산화 끈도 느슨하게 매어 봤지만 별반 개선되지 않는다.

더 이상 걷기가 힘들다고 판단되어 공원 벤치에 배낭을 내렸다. 비도 그쳤고, 저 멀리 하얀 뭉게구름과 파란 하늘이 어울려 기분 좋은 모습으로 눈에 들어온다. 배낭에서 소염진통 젤을 찾아 발목에 마사지하고, 비상용으로 챙겨 온 발목 보호대를 꺼내 착용했다. 일주일 만에 200여 km를 걸었다는 게 그리 만만한 거리는 아닐 텐데 다리 아픈 게 당연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위로하였다.

양말까지 벗고 편하게 앉았다. 까미노에서 몇 번 만났던 이탈리아 아가씨가 명랑한 표정으로 다가오다 내 다리를 보더니 갑자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뀐다. “뭐 도와줄 것 없냐?”라고 묻는데 딱히 도와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사과 하나 건네주고 “먼저 갈게” 하며 걸어갔다. 잠시 후 일본 청년도 다가왔고, 국적 불문의 중년 아주머니도 다가와 말을 건네다 먼저 간다. 방금 전 이탈리아 아가씨는 ‘비야 프랑카’에서 한번, 20여 일 후 산티아고에 들어가는 날 숲 속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비가 다시 온다. 복장을 갖추고 출발하려는 데 ‘루시아’라는 아일랜드 소녀가 흥겹게 지나간다. "왜 비옷도 안 입고 가니?" "응! 아일랜드는 비가 많이 와서 이 정도 비는 익숙해.” 그러더니 “사실은 내가 천사인데 날씨를 맑게 해 줄게" 한다. “네가 천사라면 왜 걸어가는 거야? 날개는?”, “ 내 날개는 밤에만 나와, 방금 접어버렸거든.” 잠시 같이 걷다 내 발걸음을 보더니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며 천사에게 부탁하면 나을 거라 한다. "네가 천사라면 내 다리 낫게 해 주라"하니 "OK! 걱정하지 마!" 하면서 성큼성큼 앞서간다. 그리고 정말 화창하게 날이 개었다. 구름도 예쁘고 미세 먼지 하나 없는 맑고 청명한 공기, 푸른 하늘··· 그런데 아무리 서둘러 걸어도 루시아는 다시 볼 수 없었다. 정말 천사였을까?

이번 여행에서 만난 스페인 일반인들은 순례자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여전히 반가움을 표하지만, 일반 시민들은 순례자들을 향해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관광버스를 타고 단체로 오거나, 무례하게 떠들며 무질서하게 행동하는 일부 사람들 때문에 여러 면에서 불편한 점이 있어서 그럴 것이라 생각해 본다. 요즘 바르셀로나에서 발생한 관광객에 대한 비호감과 테러성 공격이 잦은 이유도 거주자 입장에서 보면 그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북촌 한옥마을 골목길에 매일 수백, 수천 명이 배낭을 메고 새벽부터 지나가며 떠든다면 거주민들이 환영할까? 산티아고 순례길은 분명 ‘오버 투어리즘’이 되어가고 있다.


포도주로 유명한 리오하 지방이라 그러는지 계속해서 포도밭을 지나가고 있다. 리오하 포도주의 역사는 기원전으로 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에브로강 강가에 정착했던 페니키아인들이 포도를 재배하고 포도주를 만들어 마셨는데 나중에 로마에 점령당하면서 대규모 포도 단지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지중해성 기후 영향으로 산도도 낮고 알코올 도수가 높기로 유명하고 프레쉬한 과일 향이 일품이다. 이곳에서 재배되던 포도가 나중에 프랑스 보로도에서 유명한 까베르네 소비뇽, 까베르네 프랑, 메를로, 쁘띠 베르도 품종의 원조가 되었다니 스페인 사람들의 리오하 포도주에 대한 긍지와 자랑은 알아줄 만하다. 그러고 보니 매일 식당에서 제공해 주는 순례자 포도주가 모두 자기 지방 포도주로 나왔던 것 같다.

리오하 지방답게 온통 포도밭이다


길을 걷다 보니 국도변 철조망에 수없이 많은 나무 십자가가 걸려 있다. 하나하나가 순례자들의 정성과 소원이 담겨 있는 듯했다. 나는 유난히 눈에 띄는 십자가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수많은 사람이 만졌는지 반질반질하다. 나도 잡아보며 기도하다 뒤에 있는 작은 숲으로 들어가 나뭇가지를 주워 나무 십자가를 만들고 철조망에 걸어 두었다. 언젠가 다시 온다면 멋진 나무 십자가에 소망을 적어 가지고 와 이곳에 걸어둘 것이다.

즉석에서 만든 나무 십자가를 걸어두고 소원을 빌고 간다


다시 비가 내린다. 이젠 소나기처럼 강하게 내린다. 젖어있는 비옷을 다시 꺼내 입고 가는데 “좋은 신발 신었다”라며 말을 걸어온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온 ‘제리’라는 남자였는데 자세히 보니 자기도 똑같은 등산화를 신고 있었다. 나는 이 신발 정말 맘에 든다. 가볍고, 바닥은 단단하고,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완벽하게 방수 성능을 보여 주었다. 땀 배출도 잘되어 항상 뽀송뽀송했다. 참고로 이 신발은 미국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을 주제로 한 영화 ‘와일드(Wild)’에서 여자 주인공 ‘리즈 위더스픈’이 신었던 그 등산화이다. “나는 레이(Rei; 미국에 있는 등산용품 매장)에서 할인 가격으로 샀어.” 했더니 자기도 레이에서 샀다며 웃는다.

제리는 순례길에 임하는 순례자의 자세에 대해 생각하는 스펙트럼이 나와 유사하여 세찬 소나기도 잊고 즐겁게 이야기하며 한참을 걸었다. 드디어 나바레테 입구에 도착했다. 아쉽게도 제리는 16km를 더 걸어 ‘나헤라’까지 갈 예정이라고 한다. 나도 애초 계획은 나헤라까지 가는 것이었으나 발목 근육 통증 문제로 나바레테에서 멈추기로 했다. 나바레테 입구에서 제리와 헤어졌다. “다음에 만나면 더 많이 이야기하자! 난 순례길 마치고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딸을 만나고 돌아갈 거야!”하면서 골목길로 사라졌다. 그러나 이것이 제리와의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

멀리 포도밭 너머로 나바레테 마을이 나타났다

골목길이 달팽이처럼 동글동글 미로같이 생겼다. 숙소를 찾아 헤매다 마을 중심 산타마리아 성당 바로 옆에 있는 알베르게 겸 카페에 배낭을 내렸다.


한눈에 봐도 심각하게 나이 든 강아지 순례자가 꼬리를 잔뜩 내리고 절뚝거리며 골목길을 걸어간다. 뒷모습에서 벌써 안쓰러움이 느껴져 다가가니 13살 욜란다(보라색 제비꽃)라고 소개한다. 이 강아지 순례자는 무슨 이유로 이 길을 걷는 것일까? 이유를 묻는 나에게 이 순례길이 ‘이별 여행’이라고 설명한다. 이탈리아에서 왔다는 젊은 부부는 오랜 시간 함께한 욜란다가 자꾸 순례길에 가자고 조르는 것 같아 같이 왔는데, 욜란다가 자기들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기꺼이 따라왔다고 한다.

나이 든 강아지와 이별 여행 중인 이탈리아 젊은 부부


이별 여행이란 말이 너무 슬펐다. 인간에게 많은 선물을 주는 강아지는 죽음 앞에서도 마지막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욜란다의 걸음걸이를 염려했더니 너무 힘들어하면 손수레에 태워 간다고 하며 웃는데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욜란다는 고개를 돌려 인사도 없이 천천히 걸어 골목 너머로 사라져 갔다. 나는 한참이나 아쉬움으로 골목 끝을 바라보았다. 마치 휘파람을 불면 달려올 것 같다···

며칠 후 부르고스 대성당 앞에서 광장을 천천히 가로질러 여전히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욜란다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보게 된다. 젊은 부부는 말없이 욜란다의 걸음 속도에 맞추어 뒤따라 걷고 있었다.


그 사이 날씨가 활짝 개었다. 그동안 영국,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지를 여행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크고 화려한 성당들은 다 본 것 같다. 이젠 웬만한 성당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 작은 마을에 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이 화려함과 균형 잡힌 기하학적 구조가 내 맘에 확실하게 들어왔다. 강단과 모든 집기류는 금빛으로 장식되었고, 대도시 대성당에 못지않은, 아니 작지만 더 짜임새 있는 성당이었다.

성당을 자세히 보고 싶은데 실내가 너무 어둡다. 마침 일하고 있는 성당 관계자에게 “불을 켜 줄 수 없냐?”라고 물어보니 한쪽 벽을 가리키며 작은 상자에 1유로 동전을 넣으면 7분간 자동으로 조명등이 들어온다고 알려준다. 식당으로 달려가 10유로 지폐를 1유로 동전으로 바꿔왔고, 결국 70분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바레테 성당의 내부


저녁이 되니 순례자를 위한 축복 미사를 한다.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들었지만 상관없다. 성가 소리와 신부님의 설교는 아름다운 메아리가 되어 들려왔고 하나도 버림 없이 온전히 받아들여졌다. “앞으로 나오면 순례자들에게 축복 기도 해 준 데” 옆에 있던 어느 서양인이 나에게 앞으로 나가라고 재촉했다. 무조건 앞으로 걸어 나가 신부님 앞에 섰다. 성당의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성체’를 입으로 받자 평안과 감사가 몸속 깊이 스며든다. 눈을 감고 마음을 집중한다. 세상의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오직 신부님의 기도 소리만이 내 영혼을 감쌌다. 순간순간,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줄기가 나를 감싸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걱정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한가득 평화와 위안이 자리 잡았다. 나를 사랑하고 지켜주는 손길을 확실하게 체험했다.

기도가 끝나고 다시 일어섰다.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아까 나에게 앞으로 나가라 했던 옆자리 서양 사람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누구였지? 큰 은혜 속에 잠시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성당을 나섰다. 밥&테라 부부도 이 성당 미사에 증인으로 참석하고 있었다.

순례자 축복 미사 장면


숙소에 돌아오니 캐나다인, 두 쌍의 독일 부부 그리고 한국에서 온 청년과 같은 방이 배정되었다. 이 청년은 무슨 사연이 있는지 궁금했던 젊은이다. 순례길에서 여러 차례 마주쳤지만 이야기할 기회가 없다가 나중에 ‘트리아카스텔라’에서 다시 만나 저녁을 같이하며 정말 진솔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날 밤은 소란스러웠다. 독일 부부들은 무슨 대화를 하는지 밤늦도록 큰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독일 아주머니는 내가 보는 상태에서도 거리낌 없이 속옷을 갈아입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 개의치 않는 모습을 자유롭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무례하다고 해야 하나? 나라마다 다른 문화가 있고 그 문화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문화 충격은 대단하다.


창밖에 비 내리는 소리가 제법 세차게 들려온다. 나는 평안한 마음으로 침낭에 들어갔다.


오늘 만난 천사와 강아지 순례자, 나바레테 성당에서의 감격과 감동이 하나씩 영화처럼 떠올랐다 사라져 갔다. 그리고 밤이 깊어 갔다.


https://youtu.be/uZ-akQkyt2c?si=k47Fl_fUelf3EN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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