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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둘 곳이 없다

오늘은 내가 나폴레옹이다 (8)

by Kevin Kim

2024년 4월 25일 목요일 (6일 차)

외로운 시골마을 산솔



이른 아침. 침대 옆 창밖으로 보이는 강물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문득 프랑스 청년이 걱정돼 침대를 보니 어느새 출발하고 없다. 발바닥 대부분의 살이 벗겨졌는데도 가장 먼저 출발 한 걸 보니 젊음이 좋은가 보다. 영어 소통이 되지 않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 다소 아쉬웠으나 건강하게 걸어가기를 기도했다.


골목길을 지나 에스테야를 벗어나자 곧바로 포도밭이 펼쳐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예기’ 마을이 나왔다. 마을 어귀 대장간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망치 소리가 청명하게 들려왔다. 21세기에 대장간이라니··· 웬 아저씨가 “안녕하세요?” 한국말로 인사한다. 자신을 헤수스(Jesus)라고 소개한 주인아저씨는 직접 만들었다는 수공예품을 자랑스럽게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마당에는 한 청년이 뜨거운 불 앞에서 망치질하고 있는데 아들이냐고 물어보니 자기는 대장간 일이 좋아 배우는 중이란다. 20살 파오(Pao) 청년은 땀을 흘리며 열심히 불꽃을 내고 망치질에 여념이 없다. 젊은이가 이런 일을 배운다는 것이 귀해 보였다. 주인이 추천해 주는 가리비 목걸이 하나를 사서 목에 걸었다. 까미노를 상징하는 가리비 목걸이를 하고 나니 기분도 좋고 왠지 힘이 났다.

아예기 마을 대장간


얼마를 걸어가니 ‘이라체’ 수도원이 나왔다. 이 수도원에 딸린 와이너리는 건물 한쪽 벽에 수도꼭지를 만들어 지친 순례자들에게 무료로 포도주와 물을 제공한다는 전설적 장소다. 아침 8시부터 하루 100리터 정도만 제공해 주기 때문에, 너무 부지런한 순례자들은 아쉬움을 삼키고, 너무 늦게 도착한 순례자들은 포도주가 다 떨어져 서운함만 마셔야 한다고 하니 시간을 맞춰 가는 것도 중요할 듯하다. 나는 다행히 적절한 시간에 도착했다. 멀리에서부터 포도주 잔을 들고 건배하는 사람들, 함박웃음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 행복한 모습이 보인다. 얼마 후 그 한가운데 나도 서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꼭지를 돌리니 정말로 붉은 포도주가 흘러나온다. 마침 불어온 바람을 타고 아직 어린 포도주에서 나오는 아로마와 발효 작용에 의한 시큼한 부케가 코를 자극하기 충분했다. 밝고 엷은 붉은빛 포도주가 컵을 휘감고 돌아 채워졌다.

반 컵 정도 받아 맛을 본다.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인지 기대보다 훨씬 맛있다. 어떤 이들은 남은 포도주를 주는 것이니, 맛도 별로였느니 불평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감사가 없으면 천하 명품 포도주를 준다 한들 맛있겠느냐··· 나는 정말 기쁨으로 음미하며 천천히 포도주를 마셨다. 이날 내가 본 와인 수돗가에는 목마른 자가 없었고, 선한 포도밭주인의 풍성한 긍휼을 마음껏 마시고 즐기는 순례자만이 꽃처럼 웃고, 새처럼 떠들고 있었다.

도착하는 사람들마다 숲 속의 옹달샘,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난 듯 환한 웃음을 하고 수도꼭지로 달려왔다. 어떤 이는 물병에서 물을 버리고 포도주를 받아 마시고 또다시 가득 채워 가기도 했다. 조가비에 조심스레 포도주를 받는 사람, 몇 번이고 컵에 담아 마시는 사람 등 각기 다른 모습이지만 모두 기쁨으로 즐기는 시간들이 되었다.

전설의 와인 샘에서 기쁨을 누리는 순례자 들


잠시 쉴 수 있는 콘크리트 벤치에 앉았다. 나는 여기에서 대만 순례자 부부와 일본 아주머니를 만났다. 대만 아저씨는 어디에서 구해 왔는지 포도 한 송이 건네주고 웃기만 한다. 이런저런 질문을 하니 “영어를 못해 미안하다”며 드문드문 이야기하는데 다 알아들었다. 일본 아주머니는 영어, 스페인어 모두 할 줄 모르지만 아무런 불편함이 없이 순례길을 즐기는 듯 보였다. 내가 본 바로는 이곳에서 언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소 불편할 뿐 걸림돌은 되지 않았다. 서로 그러려니 하고, 손짓과 발짓으로 아니면 눈으로 다 이야기하고 알아듣고 함께 웃는다.

아직 본격적으로 ‘리오하’ 지방이 나오지 않았는데도 포도밭은 끝없이 펼쳐진다. 걷다 보니 ‘비야마이어’에서 ‘로스 아르코스’까지 12km가 마을도 없이 포도밭만 이어진다. 마음 단단히 먹고 걷고 있는데 너른 포도밭 사이로 난 경치는 정말 아름다웠다. 다행히 지칠만한 중간 지점 나무 그늘 아래 푸드 트럭이 나왔다.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음료수를 마시며 앞뒤에 걷던 사람들과 비로소 반갑게 이야기를 나눈다.

마을이 없는 곳에 놓인 Food Truck 은 정말로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오후 1시 8분. 비교적 이른 시간에 '로스 아르코스'에 도착했다. 에스테야를 떠난 지 약 6시간 만에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로스 아르코스는 어느 왕으로부터 하사 받은 활이 그려진 그림 때문에 아르코스(Arcos) 즉, 활 모양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우선 마을 성당 앞 광장에 배낭을 내리고 숙소를 찾기로 했다. 그런데 이 마을 숙소가 동이 났다. 비상사태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둥지가 있다는데 나는 어딘가에 머리 둘 곳을 찾아야 했다. 예수님도 베들레헴의 숙소가 동이 나 마구간에서 탄생하셨는데, 마구간은 아닐지라도 뭐라도 숙소가 마련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수소문해 봐도 모두 풀(Full)이란 대답만 돌아온다.


마음이 복잡해진다. 성당 처마 밑에서 잘까? 그러면 추억은 엄청나게 쌓이고 영웅담은 그 크기를 더하겠지? 그런데 저녁의 추위를 이 초라한 몸이 견뎌낼지 모르겠다. 지나가는 스페인 사람에게 도와달라 해야 하나? 누구는 그렇게 해서 민박을 했다던데··· 어떤 마을에서는 학교 교실을 내 주기도 한다는데 카페 주인에게 물어볼까? 스페인에 온 이후 처음으로 도전받는 기분이다. 결국 7km 떨어진 곳에 ‘산솔’ 이란 아주 작은 마을 호텔에서 더블룸 하나를 찾아냈다. 비용은 다소 비싸지만 따질 일이 아니었다. 가자! 7km를 가야 한다. 배낭을 다시 둘러멨다.


로스 아르코스에 도착한 순례자들은 대부분 대성당 광장에 모여 맥주, 와인을 마시거나 점심을 먹고 신나게 이야기 나누고 떠들며 피로를 풀고 있다. 이들 사이에 혼자 배낭을 메고 일어서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더 더워지기 전에 서둘러 출발하자!”

스페인 오후 2시의 햇살은 아침과 완전히 다른 난폭성을 보인다. 덥다는 표현보다는 뭔가 다른 표현이 필요할 듯하다. 따가움? 뜨거움? 그래 이 표현이 적당하다. 너무 뜨거워 뒤통수가 따갑다. 얇은 라운드 티셔츠를 입은 바람에 목덜미는 화로에 얹은 듯 따가웠다. 입술은 녹아버릴 것 같고 모자를 뚫고 들어온 열기가 머리카락을 송두리째 뽑아버릴 듯하다. 맑은 날 스페인 오후 햇살은 날카로운 금속으로 할퀴는 듯 매섭다.


마을 어귀 가로등에 붙어있는 택시 광고 스티커를 바라보니 엄청난 유혹으로 속삭인다. “그냥 택시 타고 가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 하와를 유혹했던 그 뱀의 속삭임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 듯하다. “전화하면 10분이면 택시가 오고, 20분만 달리면 시원한 콜라가 기다리는 산솔에 도착하는데··· 유혹은 정말 달콤했다. 그러나 마지막 남은 절제의 힘이 막아섰다. “넌 지금 순례자야!”


로스 아르코스에서 산솔로 가는 길은 너른 보리밭 들녘을 가로질러 나 있었다. 따가운 햇살에 길은 하얗게 보이고 선글라스를 서둘러 썼음에도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순례길 옆에 흐드러지게 핀 붉은 양귀비가 아니었다면 모든 게 흑백 화면이 될 것 같았다. 아무도 없다. 진짜 아무도 없다. 하기야 이 시간에 이 길을 걸어갈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아무도 없는 오후의 순례길을 혼자 걸어가는 것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이런 때 시원한 콜라나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 먹었으면 좋겠다··· 상상 속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다 내 어린 시절로 여행을 간다. 우리 집 뒷산 넘어 ‘아중리’ 저수지로 가는 길이 딱 이랬다. 길은 멀고 사람은 항상 없었다. 좁은 산비탈 길은 비가 올라치면 피할 곳도 없었고, 오늘같이 맑은 날엔 고스란히 온 얼굴과 팔다리에 검정 흔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어느 더운 여름날 저수지에 헤엄치러 갔다 땟국물 졸졸 흘리며 허기진 배 움켜쥐고 집으로 돌아가던 초등학생 어린이가 떠오른다. 그 길 중간쯤에 있던 작은 방죽에서 연잎을 따 머리에 쓰고 걷던 그 어린이는 길가에 핀 토끼풀 꽃으로 시계를 만들어 차고 방아깨비 다리를 잡고 방아깨비 박자에 맞춰 걸음을 재촉하곤 했었다.

앞만 보고 걸었다. 그렇게 예쁘게 보았던 양귀비가 흐드러지게 피었음에도 관심도 없었다. 땅만 보며 걷고 걸어 드디어 산솔에 도착하여 짐을 내렸다. 나바라 지방의 마지막 마을. 작은 언덕에 오래된 중세풍 건물들이 다닥다닥 자리한, 며칠 쉬어가면 딱 좋을 인구 100명도 안 되는 작은 마을이다.

방에 침대가 두 개나 있으니 한 침대 위에는 배낭과 모든 물건을 펼쳐놓았고, 다른 하나는 내가 쓰기로 스스로 타협했다. 커다란 욕조가 있어 따뜻한 물로 목욕하고 모처럼 나만의 시간도 보낼 수 있겠다. 우선 식사하자! 마을 유일의 식당으로 갔더니 몇몇 순례자들이 이미 식사하고 있었다. 나도 그 틈에 끼어 점심인지 저녁인지 분간이 안 되는 식사를 했다.


조용한 스페인의 시골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건 정말 낭만적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마을 초입 가장 좋은 위치에 건물도 새로운 알베르게가 눈에 들어왔다. 잠시 들려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다 보니 숙소에 아직도 자리가 남아 있다고 한다. 심지어 지금 내가 묵고 있는 호텔보다 시설도 새것이었고 나무 침대는 더 편해 보였다. 분명 몇 시간 전 로스 아르코스에서 전화했을 때 침대가 없다고 해서 호텔을 예약한 것인데 이 무슨 일인가? 영어로 질문했을 때 “No!”라고 대답한 것을 나는 침대가 없다고 이해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스페인 시골에도 영어 울렁증이 있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외국 전화번호가 뜨면 아예 받지 않는 예도 있고, 받았다 해도 영어로 이야기하면 그냥 끊어버리거나 No!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No! 는 아마 “나 영어 못해”의 의미였으리라···


계획하지 않은 추가 7km를 그것도 한 낯 스페인 더위에 걸어간다는 것은 정말로 힘든 여정이었다. 어제부터 발목 바로 위 근육에 통증이 있었는데 오늘 생각지 못한 거리를 걷다 보니 더욱 심해졌다. 불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내 침대에, 내가 이고 지고 온 모든 짐들은 옆 침대에 편하게 누워있다. 


https://youtu.be/gTxfvKjySE8?si=tkFL8khPd8PawK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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