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나폴레옹이다 (7)
2024년 4월 24일 수요일 (5일 차)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식도락 도시 에스테야까지
아침 7시 38분. 같은 방에 있던 미국 젊은이는 길에서 넘어지면서 왼팔을 다쳐 오늘 병원에 들러 깁스를 해야 한다고 한다. 하루 쉬면서 까미노를 계속할 수 있을지 판단하겠다며 슬픈 얼굴로 나를 배웅하고 있다. 안타까운 마음에 가볍게 포옹해 주고 출발했지만 아쉽게도 이 청년은 순례길에서 다시 만나지 못했다. 미국에서 이곳까지 올 때는 뭔가 큰 뜻이 있었을 텐데···
벌써 정이 들어버린 왕비의 마을을 서둘러 빠져나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왕비의 다리 난간에 걸터앉았다. 하나둘 낯익은 사람들이 나타나고 다리를 건너 까미노 숲길로 사라져 간다. 나는 왕비의 다리를 온전히 볼 수 있는 건너편 다리로 넘어가 한참을 바라보다 본격적으로 까미노에 접어들었다.
숲 속 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잔뜩 찌푸린 구름 사이로 아침 해가 쥐어짜듯 고개를 내민다.
우거진 자작나무 사이로 들어온 아침 햇살이 덮치듯 쏟아져 내리고, 이미 온 숲 속을 점령하고 있던 안개를 붉은빛으로 물들여갔다. 나뭇잎 사이로 벨벳처럼 펼쳐져 내리던 붉은 햇살은 나의 몸까지도 감싸 주고 깊숙이 스며들어 따스함을 느끼게 했다. 잠시 고개를 들어 나무 사이로 흐르는 붉은빛의 조각들을 바라보다 손을 내밀어 그 빛을 잡으려 했다. 자작나무 잎사귀를 마구 흔들어 대다 아래로 쏟아진 햇살은 내 얼굴과 가슴까지 물들이고 있다.
나는 이 순간 살아있음을 느꼈고 무한한 감사함으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고개를 숙였다. 붉은 햇살에 섞여 무언가 나에게 이야기를 걸고 있는 것 같은데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저 내 속 마음이 후련 해 질 때까지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나도 모르겠다. 팜플로나 대성당의 채플에서 그리고 오늘 또다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를 ···
순례길을 걷다가 유난히 고개를 푹 숙이고 걷는 사람들을 보면 울고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오늘 아침은 내가 그런 것이다. 작은 일상의 기적을 본 것이다. 따스한 햇살, 부드러운 바람 모두가 소중한 선물이었고, 감사한 마음으로 걸어가니 내 앞에 놓인 모든 순간이, 모든 사물이 아름답게만 느껴졌다.
많은 순례자가 나를 앞질러 가며 힐끗힐끗 바라본다. “정신을 차리자!” 마음을 바로잡고 다시 걷다 보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서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단체다. 순례자들은 단순하게 노란 화살표만 의지하고 걷고 있는데 화살표가 두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처음 본 두 개의 화살표에 모두 어리둥절한 상태이다. 어쩌란 말인가? 다들 망설거리고 있는데 뒤에서 오던 스페인의 ‘호세 마리아’가 망설임 없이 왼쪽 길로 간다. “호세! 그 길이 맞아?” 뒤돌아본 호세는 자기도 처음이지만 어차피 두 길이 까미노 어디선가 만나게 될 테니 신경 쓸 필요가 없다며 씩씩하게 먼저 간다.
우리의 삶 가운데에도 이런 일들이 많았다. 결정의 시간에 많은 고통을 겪기도 했지만 결국 지나고 보면 두 개의 선택지에 별반 차이가 없거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만 다소 남을 뿐이었다. 결국 자신의 선택을 믿고, 그 결정에 대해 소신 있게 도전하는 것이 가장 좋았음을 경험한 적이 많았다.
나도 왼쪽 길을 택했고, 오스트리아 순례자들도 모두 같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음속으로는 반대편 오른쪽 길은 어떤 길일까? 궁금하긴 하다. 갈림길에서 출발하자마자 심한 오르막이 나타났다. 잘못 들어선 건가? 하는 마음에 잠시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내 결정을 신뢰했다.
앞선 사람들 배낭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자기 몸 크기의 큰 배낭 뒤에 에코백(Reusable bag)을 매달고 가고 있다. "그 가방에 뭐가 들어 있어요?" 밝게 웃던 할머니는 오늘 아침과 점심이라고 한다. 나는 아침도 못 먹었고, 점심도 어찌 될지 모르는데 저 큼지막한 배낭에 먹을 음식까지 달고 가다니. 나는 사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물 한 병 달랑 넣고 비상식량마저도 준비하지 않고 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내 배낭 속 한가운데에는 아직 한 번도 꺼내 보지 않은 물건들이 주인처럼 자리하고 있다. 나는 애써 변론한다. “언젠가 쓰겠지. 아니 저녁에 당장 필요할 거야.” 나는 언젠가가 영원히 오지 않음을 깨닫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고, 며칠 후 숙소에서 과감하게 배낭을 정리하게 될 줄은 아직 몰랐다. 순례자 배낭에서 가장 무거운 무게는 염려의 무게일 뿐이다.
힘들게 오르고 있는데 먼저 간 호세가 언덕 위에서 나를 기다리다 호들갑을 떤다. 멀리 가리키는 손가락 끝에는 놀라운 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너른 유채밭이 펼쳐지고, 그 사이로 양귀비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것이다. 붉은 양귀비가 서로 경쟁적으로 피어올랐다. 누가 이 아름다운 색깔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누가 이 아름다운 형상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양귀비를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창조에 대해 깊은 감동과 감사가 고백 됐다.
작고 조용한 ‘마네루’ 마을을 지나가는 데 뒤에서 노래를 부르며 한 무리의 청소년들이 걸어오고 있다. 노래 부르고 웃고 수다를 떨면서 지나간다. 뒤에서 따라가며 실룩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뭐가 저리 신이 날까? 젊음이 부럽다.
나는 첫날부터 계속 혼자 걸으며, 혼자 생각하고, 혼자 대화하며 걸었는데, 저기 친구인 듯한 여러 명이 함께 웃고, 함께 떠들며, 함께 걷고 있는 모습도 조금 부럽기까지 했다. 우연히 마주친 젊은 청소년들로부터 양념처럼 즐거움을 맛본 것이다. 이들은 고등학생들로 학교에서 단거리 순례길을 가는 길이란다. 마치 우리 현장학습 같은 것이다. 노래를 부르던 이 아이들은 나와의 대화를 마치 영어 회화 공부하듯 서로 경쟁적으로 한국에 대해, K-Pop에 대해 물었고 나는 대답하려 애썼다.
양귀비의 환영을 받으며 다음 마을 ‘시라우키’에 접어들었다. 시라우키(Cirauqui)는 바스크어로 ‘독사의 둥지’란 뜻이다. 사실 순례길 준비하면서 눈에 담아 두었던 마을 중 하나이다. 멀리서 보니 언덕 중심의 산 로만 성당을 중심으로 오밀조밀하게 어깨를 마주한 작은 지붕들이 모여 큰 둥지처럼 형성되어 있는데 정겹다. 특히 늦은 석양에 뒷산 언덕 위에 올라 촬영한 사진을 보니 포도밭이 마을을 빙 둘러 감싸고 그 뒤로 떨어지는 낙조는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당초 계획에는 이곳에서 하루 머물다 가는 것이었는데 숙소 난으로 인해 어제 이곳에서 8.5km밖에 떨어지지 않은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머물렀기에 이번에는 그냥 지나갈 수밖에 없어 아쉽다. 작은 카페에서 커피 한잔하고 까미노에서 벗어나 골목길을 찬찬히 돌아보고 다음 마을로 넘어갔다.
포도밭, 유채밭이 이어지고 아름다운 양귀비가 풍성하게 피어 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사람이 자주 걷지 않은 듯한 조그만 샛길이 나온다. 나는 망설임 없이 방향을 틀어 그 샛길로 들어섰다. 내 생각이 적중했다. 붉은 양귀비가 지천으로 피어있고 샛길에는 사람이 걸어간 흔적이 적어서인지 양귀비도 더 반갑게 맞이해 주어 또 다른 행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사람도 얼마 다니지 않는 길에, 하루에 순례자 몇 명만 지나갈 만한 길에 작은 다리가 놓여 있다. 나는 이 다리를 넘어가는 순례자들을 촬영하기 위해 옆길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내 뒤에 오던 사람들이 모두 나를 따라오는 게 아닌가? 웃으며 다리 위로 그냥 지나가라고 손짓해도 자꾸만 내가 걸어온 길로 온다. 불편하고 돌아가는 길인데··· 나는 순간 앞서 걸어간 자, 즉 리더의 중요성을 느끼는 시간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헌신했던 회사에서 나는 어떤 리더였을까? 내 후배들, 사랑하는 직원들은 내가 걸어간 길만 보고 따라갈 것이다. “이 길이 아니야.” 아무리 소리쳐 외쳐도 내 발자국은 지울 수 없기에 후배들은 내가 걸어간 길로 가게 될 것이다. 나의 선택, 나의 결정과 내가 걸어온 역사는 이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통상 사진 찍는 사람들 격언에 "뒤돌아봐라!"라는 말이 있다. 사진 촬영 목표만 바라보고 가다 보면 정작 아름다움이 뒤에 있음에도 놓치기 십상이다. 오늘도 그랬다. 다음 마을 ‘로르카’를 향해 가다 우연히 뒤돌아본 시라우키 마을은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었다. 유채와 양귀비, 보리밭 그리고 그 뒤로 높이 솟아 있는 중세풍 마을이 수채화처럼 그려져 있었다.
앞선 하늘에 검은 구름이 더 많이 몰려오자 갑자기 얼음같이 차가운 맞바람이 불어온다. 뜨끈뜨끈한 엄마의 국물이 생각나는 시간이다. 앞으로 5.3km만 더 가면 나오는 ‘로르카’ 마을에 한국인 부인이 운영하는 알베르게가 있는데 그곳에 가면 따뜻한 국물이나 잘하면 라면도 한 그릇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힘을 내본다.
알베르게 로르카에 도착했다. 입구 간판에 ‘맛집’이라는 한글이 쓰여 있다. 추위에 13.5km를 허기진 배로 걸어왔으니 이제 따뜻한 국물을 먹고 싶다. 가게에 들어서니 한국인 부인이 반갑게 맞아준다. 추운 날씨를 고려하여 병아리콩 수프와 토르티야를 추천해 주었는데 아쉽지만 라면은 할 수 없단다. 앉을자리가 없는데 한국인 3명이 앉은자리에 가서 합석했다. 병아리콩 수프는 따뜻하고 맛있었다.
다시 출발한 스페인의 오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람이 멈추고 보리밭 위로 하얀 구름이 예쁘게 펼쳐져 있다. 우리 아내가 좋아하는 하얀 뭉게구름이다. 아마 같이 왔다면 “예쁘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사진 찍느라 한참을 지체했을 것이다. 나는 아내의 모습을 상상하고 웃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혼자 이 길에 왔는데 구름을 보니 같이 오지 않은 것이 후회됐다.
여러 겹 겹쳐 입은 옷들을 하나씩 벗어내고 온기를 즐기면서 오늘의 목적지 ‘에스테야’를 향해 한발 한발 걸었다. 3.5 km 남긴 마지막 마을 ‘빌라추에르타’에 도착했다. 마을 공원 잔디에 앉아있다 배낭을 가만히 보니 아침에 챙겨 온 물 한 병이 그대로 있다. 이런 바보! 오늘도 물을 마시지 않았다. 이제야 물 한 모금 마시고 걷기를 계속하니 작은 강을 따라 멀리 목적지가 보인다. 에스테야! 이곳에 도착한들 나를 반겨줄 사람도 없고, 딱히 할 일도 없는데 도착이라는 단어가 주는 안도감이 외로움을 이겨내고 편안함을 전해 주고 있다.
‘에가’강 옆에 있는 숙소 호스텔 쿠티도레스는 평가만큼이나 아늑하고 좋았다. 오늘은 프랑스 청년과 미국에서 온 연인 등 4명이 한 방을 사용한다. 프랑스에서 왔다는 청년은 양쪽 발바닥, 뒤꿈치에 온통 물집이 잡혀 있었다. 마침 가지고 있는 요오드 소독약을 건네주었다. 무척이나 아파하면서 온 발에 바늘을 이용하여 물을 빼고 요오드 바르고, 물집 전용 반창고 콤피드를 발랐다. 내가 보기엔 너무 작은 새 신발을 신고 온 것이다. 조금 더 큰 신발을 사는 게 좋겠다고 조언해 주고 빨래하러 내려갔다. 빨래하고 강가 빨랫줄에 널고 앉아있으니 살랑거리는 바람과 뜨거운 스페인 햇살에 정말 금세 말랐다. 고실고실 잘 마른 빨랫감을 정리하다 허기를 느껴 뭔가 좀 먹어야겠다 생각하고 아픈 다리를 끌고 시내로 들어갔다.
아무 데도 문을 연 식당이 없다! 모두 시에스타에 들어간 것이다. 시내를 돌아다니다 만난 순례자들에게 물어봐도 다 똑같은 소리다. 맥주 파는 곳은 있는데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돌고 돌아 6시부터 문 여는 식당이 있어 앞에서 기다렸더니 7시에 다시 오란다. “이런! 밥 안 먹는다!” 불편한 마음에 모든 걸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가다 매우 지친 모습으로 식당을 찾고 있는 한국 아주머니를 만난다. 사정을 들어보니 아무것도 못 먹었단다. 아주머니와 함께 좀 전에 들렸던 식당에 다시 찾아가 사정했더니 다른 것은 안 되고 파에야만 가능하단다. 먹물 파에야! 그거면 어디냐? 이천 아주머니는 7년 전 남편과 같이 순례길에 오기로 했는데 갑작스러운 사별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 이제 마음을 추스르고 혼자 왔다고 한다. 남편이 남겨 둔 유산을 정리해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남은 얼마를 가지고 남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혼자 순례길에 온 것이다. 머리가 숙여진다.
12세기에 제작되었다는 공식 순례길 안내서에 에스테야를 가리켜 “좋은 빵과 훌륭한 포도주, 고기와 물고기가 풍성하고, 맛있는 음식이 넘쳐나는 모든 종류의 행복함이 있는 도시”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내가 만난 에스테야는 영 딴판이다. 모든 종류의 행복함은 고사하고 어디에도 허기진 순례자들이 배불리 먹을 식당도 없다. 순례자들은 내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데 7시 이후에나 식사할 수 있다면 아무리 좋은 빵과 훌륭한 포도주가 넘쳐난다 한들 그림의 떡이 될 수밖에 없다.
하여간 불평은 그만해야지··· 지친 몸을 침대에 뉘었다. 같은 방 쓰는 친구들은 아무도 들어오지 않아 창밖의 강물 소리만 들린다. 나는 지금 스페인의 어느 작은 마을, 다시 올 것 같지 않은 한적한 시골 마을 숙소에 지친 몸뚱이를 뉜 것이다.
순례길에 오지 않았으면 느낄 수 없는 감정들, 오늘 아침 숲 속에서 느꼈던 깊은 영적 교감 그리고 지금 조용한 방안에 혼자 누워 무엇인가와 대화하며 깊은 생각에 빠져 들었다.
바위처럼 강하게만 느껴왔던 내 마음은 오늘 모두 무너져 내려버렸다.
그리고 그 바위는 아이처럼 울었다.
https://youtu.be/p5uEZxs3wk8?si=hoo1708xBlAezAw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