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나폴레옹이다 (9)
2024년 4월 26일 금요일 (7일 차)
리오하 중심도시 로그로뇨
일주일째 걷는다. 정말 해 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벌써 걸어온 거리가 200km를 넘어서고 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서울에서 출발하여 경북 구미를 지나가고 있는 거리이다. 다시 생각해도 정말 먼 거리를 걸어온 것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 칭찬과 포상으로 '호박잎 쌈밥'을 선물했다. 머릿속으로 시커먼 재래 된장을 가득 담은 호박잎에 보리밥 한 숟갈을 얹어 입이 터지라 먹는 상상을 해 본다. 그리고 혼자 웃었다. 먹는 상상을 하는 모습이 정상일까? 그래도 오늘은 하얀 쌀밥이라도 먹어봤으면 좋겠다. 하여간 이곳에 온 이후로 모든 생각과 행동이 단순해져 버린 나를 발견했다.
호텔을 나와 옆 마을 ‘토레스 델 리오’로 가는 오솔길에는 참으로 많은 새들의 노랫소리로 소란스러웠다. 몇 걸음 걸으니 다음 마을이 나올 정도로 두 마을은 가까웠다. 마을 광장에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많은 사람이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마치 설악산 탐방 지원 센터 주차장을 본 듯하다. 친목회 버스에서 내린 관광객들이 산을 오르기 위해 장비를 점검하는 모습이 상상될 정도로 많은 한국인들이 여기저기에서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몇몇 눈에 익은 순례자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길을 나섰다.
대도시 ‘로그로뇨’까지 가는 날이다. 아침 공기는 맑고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헤엄치듯 흐르고 있다. 마치 우리나라 늦여름 아니 초가을 같은 풍경이다. 하얀 뭉게구름 떠 있는 하늘에 남겨진 비행운을 보며 “나도 비행기 타고 외국에 가보고 싶다”는 상상을 했던 어린이의 꿈은 어른이 되어 현실이 되었다.
나는 독일 보훔, 뒤셀도르프와 영국 맨체스터 그리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애틀랜타에서 13년을 살며 다양한 경험을 했고, 나에겐 남다른 창의력과 도전 정신이 있다는 걸 체험했다. 그리고 지금은 세상을 돌아보며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기분 좋게 하루가 다시 시작되었고, 나는 그저 단순하게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걷고 있다. “까미노를 걸으며 무슨 생각을 하냐?”라고 묻는 사람들이 많은데 솔직하게 대답해 준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아니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다. 무아지경 상태에서 그저 걷고 또 걷는다. 그러다 어떤 상황 하나에 생각지도 않은 뭔가를 느끼거나, 알 수 없는 현상이 나타나면 그 존재를 느끼면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깊은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숲 속에 펼쳐진 햇살을 바라보다 절대자의 능력을 느꼈고 한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혼자 임이 분명한데 누군가 내 곁에 함께 걷고 있음을 느끼기도 했으며, 힘에 부쳐 쉬고 싶을 때도 뒤따라오던 어떤 힘이 내 등을 밀어주기도 했다. 혼자 걸어도 혼자인 것 같지 않으나 뒤돌아보면 아무도 없다. 찾아도 보이지 않고 너른 들판에 바람만 조용히 불고 있었으며, 때론 바람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이럴 때 나는 신의 존재를 느꼈다.
비록 눈에 보이는 건 없어도 오히려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가 되는 믿음으로 소망과 희망을 품게 됨이 선물이 되고 있다. 오늘도 저 멀리 뜨거운 벌판 가운데 아름다운 꽃들이, 서늘한 실바람이 나를 기쁘게 반겨 줄 것이고 나에게 또 다른 선물을 주리라 믿는다.
조금 전 마을 광장에서 만난 어떤 사람은 다리가 퉁퉁 부어 있었다. 뭐에 물렸냐고 하니 ‘햇빛 알레르기’라고 한다. 햇빛 감수성에 의해 면역체계가 이상 반응하면서 나타나는 질병인데 가렵고 붉은 반점과 염증을 수반하고 부어오르는 게 특징이다. 단순한 것 같았던 알레르기로 결국 순례길을 포기해야겠다고 했다. 오랜 갈망과 소망 끝에 많은 장애물을 이기고 이곳까지 왔을 텐데 다른 것도 아니고 뜻밖의 햇빛 알레르기로 포기해야 한다니 안타까웠다.
중도 포기자를 만나니 나도 괜스레 자신이 없어진다. 나도 마음 컨디션은 최상인데 육체 컨디션이 반대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걸어온 거리 200km를 넘기니, 다리 쪽 근육이 아우성을 친다. 비상으로 챙겨 온 소염제, 근육 이완제와 진통제를 먹고 젤도 발랐다. 나뿐 아니라 앞뒤에 걷는 사람 중에도 절뚝거리며 가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래도 출발한다. 아니 출발할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겠고 병원도 의원도 없으며 나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냥 걷다 보면 해결책이 나오겠지··· 이것이 순례자의 운명이려니 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10여 일간 죽을 고생을 하게 된다.
오늘도 아직 숙소를 확보하지 못했다. 무슨 수가 있겠지 하면서도 어제 경험을 토대로 자꾸 휴대전화에 손이 갔다. 사설 예약 사이트 부킹닷컴(Booking.com)에는 목적지 로그로뇨 모든 숙소가 판매 완료됐다고 나오고 심지어 다음 마을도 빠르게 소진되고 있으니 빨리 예약하라고 경고 메시지가 뜬다. 별수 없이 걸어가면서 이쪽저쪽 전화를 돌리다 위치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펜션 하나가 잡혔다. 통상의 알베르게보다 4배 이상 비쌌지만 서둘러 예약하고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한국 순례자가 많이 보인다. 한국 사람들과 교제를 나눠볼 생각으로 같이 걷기 시작했다. 이야기 나누며 함께 걸으니 외롭지도 않고 재미도 있다. 각자의 사정과 형편도 듣고 많은 정보도 얻었다.
공무원이라는 젊은 자매는 연차를 모두 쓰고도 부족해 대통령 선거 때 과외 근무한 것을 모두 모아 딱 한 달 일정으로 왔단다. 살 빼기가 목적이란다. 설마 장난으로 이야기했겠지 하면서도 가장 확실한 목적이라 생각했다. 순례길을 마무리하면 몇 kg은 체중이 줄고 허리띠도 한 칸 이상 줄어들기 때문이다. 다만 이 청년은 분명한 의지와 강단이 있었다. 자기 키만 한 배낭을 메고도 거침없이 걸었다. 정해진 휴가 일정 문제로 나중에는 하루 40km씩 걸어 나보다 며칠이나 앞서 산티아고에서 귀국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시 만나면 정말 맛있는 거 사주고 싶은 당차고 보기 좋은 대한민국의 젊은이였다.
또 다른 한 청년은 어느 교회 전도사라고 한다. 우연히 내가 숲 속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봤다며 “목사님이십니까?” 하고 물어온다. “한국 목사님들은 하도 바빠서 한 달 이상 이렇게 순례길에 오실 수 없을 걸요?” 하고 대답했다. 이 청년은 서울에서 신학대학원을 나와 어느 교회에서 전도사를 시작했는데, 막상 전도사란 직업이 자기가 꿈꿔왔고 생각했던 것과 너무도 괴리가 큰 것을 확인하고 고민 끝에 산티아고에 왔다고 한다. 다시 교회로 돌아가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나는 신앙생활을 더 잘해 보려고 이곳에 왔는데, 이 청년은 신앙생활을 마감하기 위해 왔다고 하니 참으로 마음이 복잡했다.
‘비아나’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인구 4천 명 정도 되는 비교적 큰 마을이다. 마을 광장에 열린 ‘파머스 마켓’에 들렸다. 예전 독일과 미국에 살 때 토요일 아침이면 마을 광장에 늘 이런 시장이 열렸다. 우리 가족들은 참새처럼 이곳 방문을 즐겼고, 신선한 채소와 꿀도 사고, 가끔은 아마추어 음악가들의 CD도 사곤 했었다. 여기에 오니 아이들과의 옛 추억을 다시 떠올려 볼 수 있어 좋았다. 콜라, 아메리카노 커피를 주문하여 콜라와 함께 주는 얼음 들어 있는 유리잔에 아메리카노 커피를 부어 넣으니 제법 그럴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되었다.
여기에서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왔다는 밥과 테라 부부를 만났다. 나를 목표로 한 듯 거침없이 다가와 “한국 사람이냐?”라고 물어본다. 늘 들었던 질문, “왜 이렇게 한국 순례자가 많지?”에 대한 대답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 부부의 질문은 의외였다. 부부는 한국에 대해 매우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케이 팝(K-pop)과 케이 푸드(K-Food)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특히 매운 한국 음식애 잘 맞는다고 한다. 이런저런 대화 가운데 “캐나다를 와 본 적이 있느냐?” 물어 온다. 캐나다에는 와 보지 못했을 거라는 확신에 찬 질문이었다. 밴프, 옐로나이프, 몬트리올, 밴쿠버 그리고 방문했던 캐나다 많은 도시와 ‘오로라 헌팅’, ‘빙하 크루즈’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해 주었다. 캐나다인인 자기보다 더 많은 도시를 방문한 것 같다며 웃는다. 오히려 자기 부부도 오로라를 제대로 보지 못했노라며 올해는 반드시 옐로나이프에 가 보겠다고 한다. 이날 이후 한동안은 이 부부를 정말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용하고 매너 있는 부부였다. 다시 만난다면 한국에 초대하고 싶은데 왜 이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아쉬운 마음이다.
매일매일 먹는 것이 문제가 됐다. 숙소에서 출발할 때는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 아침을 먹을 수가 없고, 또 걷다가 마을이 나오면 카페나 식당에서 아침을 먹어야지 했지만 문을 연 카페가 별로 없다. 결국 오늘도 12km를 걸어 비아나에서 토르티야와 콜라 한 병, 커피 한잔으로 ‘아점’을 때운 것이다. 입이 짧은 사람은 이곳에서 고생한다. 어떤 사람들은 슈퍼에서 음식을 사다가 해 먹고, 아침에는 주먹밥도 싸서 들고 가던데 나는 이런 면에서는 빵점이다. 다음에 이곳에 다시 온다면 음식 하는 법을 꼭 배워서 오리라.
시간이 제법 걸렸다. 오늘은 처음으로 한국 순례자 들이랑 같이 걷다 보니 이야기 나누다 시간이 더 지체되었고 발목 근육통증으로 속도도 내지 못했다. 오후 3시가 넘어서야 ‘에브로’ 강을 건너 마침내 리오하 지방의 중심 도시이자 주도인 ‘로그로뇨’에 입성했다. 한동안 같이 걸었던 한국인들은 도시 입구 알베르게에 짐을 풀었지만 나는 전화로 다른 숙소를 예약했기에 계속 도심을 향해 걸어가야만 했다.
로그로뇨 도심을 관통했다. 그동안 지나온 작은 마을과 달리 로그로뇨는 대도시답게 화려하고 번화했다. 숙소로 찾아가다 보니 저 멀리 가게 이름이 ‘우동’이라 쓰여 있다. 빨리 샤워하고 와서 먹어야지 했는데, 혹시나 해서 다가가서 영업시간을 읽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5시에 문 닫고 8시에 다시 오픈한다고 되어 있다. 항상 이러다 점심도 저녁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마음을 바꾸었다. 밥부터 먹자. 샤워가 뭐라고 나는 항상 “샤워 먼저!”를 외치다 먹는 게 부실했다. 이곳 서양 사람들은 샤워도 잘하지 않던데···
호박잎쌈에 보리밥은 못 먹어도 아시아 음식이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나? 식당으로 쳐들어가다시피 했다. 일본 라면을 먹을까? 덮밥을 먹을까? 처음 아시아 식당이 나오니 정신이 없다. 나는 쌀밥이 그리워 쇠고기 덮밥을 주문했다. 이곳에 온 이후 처음으로 밥을 먹는 것이다. 밥알 한 알 한 톨에서 올라오는 향기가 달콤했는데 밥알의 향기가 이렇게 달콤하기는 처음이다. 맛있게 먹고 숙소로 찾아갔다. 샤워하고 빨래하고 저녁 8시에 다시 와 한 그릇 더 먹을 생각이다.
숙소는 생각보다 먼 외곽에 있는 아파트였다. 샤워를 마친 후 로그로뇨 대성당으로 갔다. 아니 성당에도 시에스타가 있나? 성당 문은 닫혔고 5시에 연다는 안내만 붙어있다. 무슨 종교 시설이 박물관이냐? 개장 시간이 따로 있게? 남은 시간을 소비할 방법을 찾다 이 도시에 중국 가게가 하나 있는데 거기 가면 한국 라면을 판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구글맵을 열고 가게를 찾아 라면 2개와 하리보, 사과를 샀다. 언제 먹을지 모를 라면을 사 오면서 청설모 생각이 났다. 배낭 제일 밑에 하나를 잘 보관해 두고 다음에 먹어야지···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가 그 라면은 12일 후 레온 호텔 방에서 라면 뽀글이로 해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5시가 넘어 대성당에 다시 들려 기도하고 성당 내부를 천천히 돌아보고 숙소로 향했다.
이 도시는 ‘타파스’가 유명하다고 한다. 많은 순례자가 타파스 거리로 모여들어 유명 타파스 맛집 깨기 순례를 한다고 한다. 이 거리에서 서로 만나 인사 나누고, 포도주도 마시며 하루 피로를 푼다. 나도 저녁에 이 거리에 가면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민만 하다 그냥 숙소로 들어가기로 했다. 다리 근육이 뭉치고 통증까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점심을 맛있게 먹은 일본 식당에 다시 들렀다. 언제 먹어볼지 모르는 아시아 음식을 다시 먹기 위해서다. 이번에는 일본 라면과 김치도 주문하고 국물까지 깔끔히 먹고 숙소로 돌아갔다. 비록 아침에 상상했던 호박잎쌈에 보리밥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나에게 충분한 보상은 되었다고 스스로 위안해 주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하고, 견뎌야 하는 일이라면 기꺼이 견뎌내라.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에서는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조차 갖지 마라. 우리는 우리가 살고자 하는 삶이 아니라 살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는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까미노를 걷는 일은 내가 원했던 길이다. 지금은 인내를 요구하고 있기에 기꺼이 견디며 걸어가리라. 이 까미노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서 나만의 순례길을 즐기리라. 오늘 나는 일본 식당에서 먹은 덮밥과 일본 라면 한 그릇으로도 행복해했듯이 지금 이 길은 나에게 행복을 주고 있는 것이다.
숙소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창밖에 비가 내리는지 제법 굵은 빗줄기 소리가 들려온다. 창문을 때리는 빗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온다. 스페인에서의 금요일 밤은 이렇게 깊어 갔고 나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https://youtu.be/8e8eFrFhTJ4?si=JAbRBOKQtodBvK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