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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언덕에서 내가 용서받았다

오늘은 내가 나폴레옹이다 (6)

by Kevin Kim

2024년 4월 23일 화요일 (4일 차)

'팜플로나'에서 왕비의 다리가 있는 '푸엔테 라 레이나'까지




새벽 6시. 간단하게 배낭 정리를 마치고 숙소를 나선다. 오늘은 '용서의 언덕'을 넘어 왕비의 다리라 불리는 ‘푸엔테 라 레이나’로 가는 길이다.

숙소를 나서니 한적한 팜플로나 구도심 골목길에 비가 내리고 있다. 분주했던 낮 모습과 달리 비 내리는 새벽 팜플로나 좁은 골목길은 조용하다 못해 아무런 움직임 없이 고요하였다. 밤새 내린 비는 이미 골목길을 촉촉하게 적셔 놓았고, 주황색 가로등 불빛에 물들여진 중세 도시는 낭만적이고 고즈넉한 풍경으로 마음마저 따뜻하게 해 주었다. 4월 말 치고는 꽤 쌀쌀하다. 현재 기온 영상 3도, 한낮에도 10도를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 예보되어 있다. 골목길 작은 가게 처마밑에 어설프게 서서 판초 우의를 꺼내 입었다. 비옷으로도 중요하지만 이런 날씨엔 방한용으로 큰 도움이 되리라.

비 내리는 팜플로나 골목길


지난 3일간 구름 한 점 없이 아름다웠던 날씨를 비웃듯 세차게 비가 내린다. 얼굴을 때리는 빗방울이 아프기까지 했다. 땅만 보고 걷는 데 익숙한 미국 남부 발음이 들려온다. 돌아보니 내 나이 또래의 미국인 부부였다. 내가 애틀랜타에 살았었다고 소개하자 우리는 이웃이라며 엄청 반갑게 대해 준다. 이 부부가 까미노에 오게 된 동기는 단순했다. “시간이 남아서···” 뭐 사실 이것보다 명확한 이유가 있을까?


까미노에 올 수 있는 3가지 충분조건이 있는데, 건강, 시간, 재정이다. 젊었을 때는 건강과 시간은 있지만 돈이 없고, 중년이 되니 시간이 없었고, 비로소 노년이 되니 재정도 시간도 생기더란다. 그래서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 전에 결단하고 아내와 함께 왔는데 잘 온 것 같다며 웃는다. 맞는 말이다. 순례길은 이 3가지 조건 충족을 강력히 요구하지만 그리 쉬운 조건은 아니다.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는 순례자들은 까미노가 요구는 3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여 여기에 올 수 있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내 주변에 보면 은퇴하고 나니 시간은 넘치고, 돈도 어느 정도 있는데, 건강이 따라 주지 못한 친구들이 있다.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세월은 흐르고 나이는 하나, 둘 늘어갔다. 건강 배터리는 예상보다 빠르게 소진되어, 이제 몇 개 남지 않은 막대기가 방전을 경고하며 깜빡이고 있다. 깨닫는 순간엔 너무 늦을 수 있으니, 하루라도 빨리 그 배터리를 충전하는 데 게으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미국 부부들은 다른 미국 순례자를 만나 먼저 갔고 나는 이들과 헤어져 혼자 걸었다. 고속도로 위를 넘어가다 많은 차가 쌩쌩 지나가는 것을 묵묵히 바라보는데 이상한 생각이 든다. 저 차로 달려간다면 오늘 목적지 ‘푸엔테 라 레이나’ 까지는 3~40분이면 충분할 텐데 지금 나는 비를 맞으며 하루를 걸려 걸어가는 중이다.

팜플로나에서 푸엔테 라 레이나로 가는 A-12 고속도로


지금까지 내 삶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처럼 무한 질주하며 살아왔다. 누구에게 조금이라도 뒤질세라 잠시도 쉬지 않고 얼마나 부지런히 달려왔던가? 가끔은 천천히, 때로는 쉬어가면 좋았을 텐데 우리 나이 한국인들의 삶에는 액셀러레이터만 있지 브레이크 페달이 없었다. 생각해 보니 40년 사회생활이 대견하기도 하고 미련하기도 했다. 이제야 귀한 진리를 깨닫게 되었는데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이 진리를 어떻게 알려 줘야 할지 모르겠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내용이라 선배의 푸념으로 이해하겠지··· 지금 나는 얇아질 대로 얇아진 두 다리만 의지하고, 가지고 있는 모든 염려의 짐을 어깨에 멘 채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다. 시간은 비록 더디 걸리겠지만, 천천히 걷는 이 한걸음의 가치는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보다 훨씬 소중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을 벗어나니 엄청난 보리밭이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사진에서 봤던 바로 그 순례길 풍경이다. 이날 이후 며칠이나 계속되는 보리밭이지만 오늘 첫 대면은 감격 그 자체였다.

대도시 팜플로나를 벗어나면 끝없는 보리밭이 펼쳐진다

끝도 없이 펼쳐진 보리밭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진 순례길 까미노. 그 길을 따라 군데군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우뚝 자란 미루나무, 나무 사이에서 들려오는 이름 모를 새들의 노랫소리, 그 위로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 소리, 그리고 드문드문 피어난 붉은 양귀비··· 멀리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보리밭 위로 흐르는 바람은 길게 자란 보리의 머리를 빗어 넘기고 가르마를 타며 흐르고 있다.

이 들이 조화를 이뤄낸 풍경을 잊을 수 없다. 얼마나 벼르고 기대하며 여기에 왔던가? 보리밭 길을 걸으며 비로소 ‘까미노 데 산티아고’에 왔다는 생각에 뭉클해진다.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그리고 이 눈물이 빗물과 함께 뺨으로 흐르는 것을 애써 모른 체하며 걸었다.

길고 긴 보리밭 길을 따라 말없는 순례자들이 조용히 걸어가고 있다


저 멀리 오르막이 나타나고 사람들이 줄지어 그 언덕을 오르고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 아이콘 중의 하나인 ‘용서의 언덕’이다. 산티아고 순례길 후기에 이 언덕이 그토록 힘들다고 기록되어 있어 마음을 단단히 했는데, 비 내리는 날씨에도 사실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아마 용서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으로 마음이 어려웠을 것 같았다. 언덕 아래 ‘사리끼에기’ 마을의 산 안드레 교회 벤치에 앉아 비를 맞으며 잠시 쉬었다. 비는 점점 더 내리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을 옆에서 바라보는 재미도 괜찮았다. 대부분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성당 앞을 지나 터벅터벅 언덕길로 올랐다. 나는 영화 보듯 조용히 숨죽이고 앉아 이들을 바라보다 영화가 마치자 이윽고 그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사리끼에기 마을을 지나면 비로소 용서의 언덕을 향해 오르기 시작한다


용서의 언덕을 오르며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누구를 용서할 것인가?”였다. 그런데 잠시 후 “내가 누구를 용서할 것이 아니라, 내가 받아야 할 용서는 무엇인가?”로 자연스럽게 주제가 넘어가는 게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들, 특히 40년 직장생활 가운데 알게 모르게 남에게 주었을 상처에 대해, 살아온 삶에 대해, 내 신앙생활에 대해 반성과 회개가 필요했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다름’에 대한 비판을 마치 방패처럼 창처럼 여기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나와 다르면 우선 비판하고, 생각이 같은 사람끼리 동감하는 모습을 보인다. 나 또한 이런 면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니, 다름을 너그럽게 포용하고 다름과 다름이 융화되어 ‘새로움’을 만들어 나가는 것에 게을리 해온 것이다. 지금 나는 누군가를 용서하기 전에 더 급하게 용서를 구하여야 만 했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발자국에 남아있는 모든 잘못의 흔적들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뎠다. 무엇보다 나와 다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없애고 다름을, 부족함을 이해하는 자세로 살아야겠다. 그리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은 물론 나 자신까지도 용서해야만 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3대째 믿음을 유산으로 받았고, 구제와 봉사, 선교에 열정을 다해 임해왔다. 겉으로 보기엔 제법 경건함을 유지해 왔지만, 어느 날 내 생각과 행동이 따로 놀고, 내가 어떤 존재인지조차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음을 깨달았다. 때때로 당장 눈앞에 보이는 욕심과 자극적인 것에 한눈을 팔며, 예수님 대신 내 육체의 소욕과 욕구에 따라 살아가는 나 자신을 보았다. 다시 말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면서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해야만 하는 것, 하고 싶은 것,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머릿속으로는 정리되지만, 이것이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고 어정쩡한 상태로 살아가는 내 모습이 용서되지 않는다. 이런 고민 속에서 깊은 자괴감을 느끼는 시간도 많아졌고, 영혼과 육체가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용서받아야 했다. 결국 나는 이 먼 길을 달려와 나 자신을 용서해야만 했다. 언덕을 내려가면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의 욕심과 교만을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살아가기로 다짐해 본다.


많은 사람이 언덕을 오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바람도 많이 부는데, 비까지 내리니 이것이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르게 되었다. 나는 언덕에 서서 멀리 지나온 보리밭을 바라보며 비바람을 맞았다. 불어오는 비바람에 내가 지은 죄, 잘못했던 일들이 다 쓸려가고 용서되길 기도했다. 내가 상처를 준 사람에게도 위로와 평강이 선물처럼 배달되면 좋겠다 생각했다. 가슴 가득 불어오는 차가운 비바람을 맞으며 아픔과 고통이 녹아내리고 무거운 짐이 흘러갈 거라 기대하며 한참을 서 있었다.

용서의 언덕에 세워진 순례자 형상의 철제 조형물


비가 그치지 않고 계속된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통상은 오르막이 어렵다고 하지만 여기 까미노는 내리막이 더 어렵다. 오르막은 대부분 완만한 편인데 내리막길은 용서가 없다. 급경사에 날카로운 바위, 굵직한 자갈길이 수 킬로미터 이어진다. 도대체 무슨 자갈들이 이렇게나 많단 말인가? 발목이 휙휙 돌아가고 빙판을 걷듯 미끄럽다.

순례길에 등산 스틱이 필요한가? 네이버 순례길 카페에서 종종 스틱의 필요성을 주제로 토론이 벌어지곤 했다. 다 맞는 말이다. 자기의 경험에서 하는 말이기 때문에 단호하게 결론 내리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여행 준비물은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더욱이 그것이 안전과 관련되어 있다면··· 내 경험으로는 스페인 까미노에서 등산 스틱은 필수다. 특히 중년 이상은 무릎 보호대까지 꼭 착용해야 한다. 남은 인생 건강하게 여행하고 싶은가? 그럼 망설이지 마라! 론세스바예스에서 수비리로 내려가는 길이 ‘용아장성’이라면, 용서의 언덕을 지나 ‘우테르가’로 내려가는 길은 ‘자갈밭’이다. 시골 강가의 자갈밭이 여기에 쫙 깔려있다.

용서의 언덕을 내려가는 길고 긴 하산 길에는 주먹만 한 자갈이 깔려있다


비를 맞고 언덕을 넘은 많은 사람들이 '우테르가'에서 점심과 맥주로 피로를 달랜다. 나도 적당한 카페에 자리 잡고 앉았다. 자리가 모자라 합석했는데 스웨덴에서 온 74세 ‘로랜드’라는 은퇴 대학 교수다. 벌써 4번째 까미노란다. 적지 않게 놀라는 내게 스웨덴 말로 “라곰! (Lagom!)”이라고 외친다. 라곰? 무슨 뜻인지 물어보니 “not too much, not too little. Just right!” 번역하면 ‘인생에서 너무 많거나 너무 적지 않을 정도, 밸런스가 잘 맞는 정도’를 의미한다. 스웨덴 사람들은 ‘주말에는 절대 일하지 않기, 주말에는 무조건 가족과 함께하기, 남들과는 비교하지 않기’ 같은 철학이 있는데, 나에게도 "밸런스를 잘 유지하면 행복해질 거야!"라고 이야기해 준다. 뒤통수를 한 방 맞은 기분이 들었다.

미국에는 가족, 친구들과 함께 느리고 여유로운 자연 속의 소박한 삶을 ‘킨포크 라이프 (Kinfolk Life)'라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고요한, 한적한 이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 ‘오 캄 (Au Calme)’을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심신이 편한 상태, 또는 그런 삶을 추구하자는 의미로 주로 사용한다. “어서 와~한국은 처음이지?”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노르웨이 청년들이 한국에 전파한 ‘휘게 라이프 (Hygge Life)’의 조용함, 편안함, 아늑함을 추구하는 이런 표현들과 맥을 같이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한때 욜로 열풍이 불었지만 결국 현실로 돌아가 이런 단어 자체가 사치로 여겨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이제 우리나라에도 이런 종류의 단어, 문장, 구호를 만들어 보자! 그리고 그렇게 살아보자!


드디어 ‘푸엔테 라 레이나’. 용서의 언덕을 내려와 몇 개의 마을과 보리밭, 올리브 농장을 지나면 마을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한다. 마을 초입에 있는 공립 알베르게 앞에 눈에 익은 미국 청년 윌리엄이 비를 맞으며 서 있다. “혹시 우리 엄마 못 봤어?” 아직 어머니가 도착하지 않아 걱정되어 나와 있다. “한두 시간 전 언덕 아래 카페에서 차 마시는 걸 봤는데 내가 먼저 나왔어. 염려하지 않아도 될 거야.” 이 이후로도 어머니는 계속해서 뒤처지기 시작했다.

윌리엄과 헤어져 마을의 긴 골목길을 걸어 왕비의 다리 바로 옆에 있는 숙소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 배정된 방은 8인실이다. 방에 들어가니 브라질 아저씨가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흥얼거리고 있다. 나중에는 누구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통화했다. 이탈리아 청년은 눈빛으로 나에게 “뭐라 이야기 좀 해 봐” 하소연한다. 나는 굳이 이들의 논란에 끼이고 싶지 않았다.

배낭을 내려놓고 침대 정리를 하는데 웬 여성분이 말을 걸어온다. 한국계 미국 교포이고 미국인과 결혼하였는데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한단다. 한국에 대해 특히 한국 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남편과 순례길에 와서 이렇게 한국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놀랐다고 이야기한다. 한국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이 많아 재미있게 이야기 나누고 있는데 미국인 남편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눈치를 보여 서둘러 샤워와 빨래를 마치고 동네 산책을 나갔다.

왕비의 다리라 칭하는 푸엔테 라 레이나


소문과 같이 왕비의 다리는 명물이었다. 공학 구조적으로나 미학적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과거 11세기 나바르왕 ‘산코 3세’의 왕비가 순례자들의 안전을 위해 7개의 아치를 가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석조 다리를 건설해 줬다고 한다. 이 유래로 왕비의 다리가 되었고, 도시 이름도 왕비의 다리가 됐다. 이틀 전 수비리 숙소 앞에 흐르던 강 이름이 ‘아르가’였는데 여기까지도 흐른다. 알고 보니 피레네산맥의 눈 녹은 물이 계속 흘러 팜플로나를 거쳐 이곳까지 흘렀고 내일 가는 마을 ‘에스테야’까지도 흘러간다고 한다.


산책하는 도중 하늘이 맑아 온다. 골목골목을 돌아 마을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마을 주민도 만나 이야기 나누고, 열려있는 슈퍼에 들려 생필품들도 구경하고, 맛있어 보이는 과일도 한 두 개 구매하였다. 어느 골목에 들어가니 작은 식당이 눈에 들어오는데 몇 명의 한국 순례자가 창문 너머에 흐릿하게 보인다. 그냥 돌아서려 하는데 나를 발견하고 들어오라 손짓한다.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우리는 오래된 친구처럼 함께 먹고 함께 마셨다. 이후에도 많은 순례자들이 들어와 합류했지만 계산은 철저하게 더치페이였다. 처음 본 사람들이 단지 순례길을 걷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오랜 친구처럼 마주 앉아 와인을 나눠 마시고 기분 좋게 떠들어댔다.

모처럼 한가한 오후를 보내고 있다. 순례길 걸어온 거리만큼 어느새 수염도 자라 있다


우리의 삶에서는 수많은 갈림길이 나오고, 우리는 끊임없는 선택을 강요받으며 살아오고 있다. 때론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고, 최고의 선택을 기뻐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달랐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길은 길고 긴 까미노 하나뿐이다. 그리고 그 길만이 진정한 길이 되기에 마주하는 모든 순간이 소중했고, 그 순간들이 모여 추억을 만들어 가고 있다.


다른 길은 없다. 지금도, 과거에도 없었다. 단순하게, 정직하게 그리고 꾸준히 노란 화살표만 따라 걸어가는 것밖에 없다.


그렇게 오늘은 4만보 걸었다.

https://youtu.be/HNtSnpWqyQU?si=WHd-HuIY2CXH8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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