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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아 Sep 25. 2020

아버지 지금 돌아가 주셔서
감사해요

손바닥 소설


   


아버지 장례에 조문 와준 대학 친구들을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 그 친구들마저 없었다면 장례식장은 정말 썰렁할 뻔했다. 나는 고마운 마음에 고심하여 메뉴를 고르고, 식당을 정했다. 


아버지는 폐암으로 오 년 전 수술했고, 그 후 재발을 거듭하며 고생했다. 발병 후 삼 년쯤 지나서는 가족들도 반쯤은 포기한 상태가 되었다. 어차피 완치는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십일 전 혼수상태가 시작되었을 때에도, 오래 끌지 않고 돌아가셨을 때에도 차라리 담담했다. 그리고 사실 나는 이 시점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 그가 내게 준 마지막 선물쯤으로 생각되었다. 


하루 걸러 한번쯤은 안부를 묻는 P가 제일 먼저 소식을 알았다. 그는 친절하게도 동문 단톡에 아버지의 부고를 올려 주었다. 이십여 명 친구들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와 ‘조의를 표합니다’라는 메시지를 화음이 훌륭한 합창처럼 번갈아 전하였다. 장례 첫날,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빼놓지 않고 단톡을 확인한 이유는 그녀 때문이었다. 그녀도 내게 조의를 표했는지 궁금했다. 저녁나절에야 겨우 마지막 차례로 그녀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조의를 표합니다.’ 그녀는 짧은 쪽을 선택했다. 휴대폰 화면에 그녀의 프로필이 첨가되자 꽉 막혀왔던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다. 


그 후로 나는 마음이 훈훈해졌다. 엄마가 서럽게 울고, 뒤늦게 누나가 아버지의 죽음이 각성되듯 멍하게 정신을 놓고 있었지만 내 슬픔은 진한 에스프레소가 얼음물에 퍼져나가듯 재빨리 희석되었다. 상실의 마음 사이로 선명한 희망이 파고들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사실 조문객을 맞으면서도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어야만 했다. 조의를 표한다는 메시지가 그토록 로맨틱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나는 속으로 몇 번이나 ‘조의를 표합니다, 조의를 표합니다’ 하고 그녀가 내게 보낸 문장을 되뇌었다.     


장례 이틀째 그녀는 혼자 조문을 왔다. 검은 원피스 차림의 조신한 매무새였고, 표정을 감춘 얼굴로 내게 인사했다. 나는 조문을 받는 내내 그녀와 눈을 마주치기 위해 애썼다. 차분하게 목례를 하고, 아버지에게 국화꽃 한 송이 올린 그녀가 나와 마주 서자 아주 잠깐 빤히 쳐다보았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어쩔 수 없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달리 무슨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곧바로 눈길을 거둔 그녀는 그대로 돌아갔다. 


조문의 짧은 형식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녀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계속 가슴께가 붕 떠올랐다. 시간이 지나도 마음이 쉬 가라앉지 않자 나는 화장실로 갔다. 거울을 보니, 수척한 얼굴에 희미한 홍조가 피어나고 있었다. 남모를 기대로 빛나고 있는 눈빛까지 확인하자 “미친놈...”하는 혼자 말이 절로 나왔다.


장례 내내 자리를 지켜주고 있던 P가 내 몰골을 보자 억지로 식사를 권했다. 밥알이 넘어갈 리 없었다. 그만큼 가슴이 울렁댔다.

“새끼야, 너 할 만큼 했어. 이제 니 인생 살아.” 

 P는 내 어깨를 툭툭 치며 형처럼 말했다.

국밥에 애꿎은 숟가락을 휘휘 돌리며 중얼거렸다.

“나도 살아보고 싶다. 그놈의 내 인생...” 

P가 불쌍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집안에 누군가가 중병을 앓게 되면 모든 것은 유보된다. 아버지가 폐암 3기 선고를 받았을 때부터 내 삶은 정지되었다. 하나뿐인 누나는 미국에 있었고, 엄마는 십 년 전부터 경도인지장애를 앓고 있었다. 그날로 끝이었다. 매일 먹는 약 하나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부모는 시시각각 나를 물고 늘어졌다. 시간은 부족했고, 돈은 모자랐다. 인생이 한마디로 집 잃은 개꼴이었다. 늘 후줄그레 고단해서 그만 살까 하는 말이 나도 모르게 툭툭 튀어나왔다.






그런 시간을 참아내고 있었는데 한 달 전 그녀가 불쑥 나타났다. 술이나 한잔할까 해서 시큰둥하게 참석한 동창모임에서 십수 년 만에 그녀를 만난 것이다. 그녀는 사실 P의 여자 친구이었다. 눈에 띄는 외모는 아니었지만, 그녀를 감싸고 있던 어떤 생동감을 나도 처음부터 알아보았다. 그런데 P는 그녀와 헤어지고 대뜸 딴 여자와 결혼했다. 덕분에 그녀는 우리 주위에서 사라졌지만, 나는 자주 그녀를 떠올렸다. 


그런 그녀가 내 눈 앞에 앉아있었다. 세월이 그렇게 흘렀는데도 그녀에게 끌리는 마음을 깨닫는 데는 몇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술자리가 길어지면서 처음으로 홀가분한 관계에서 말다운 말도 해봤다. 얼마만인가... 몰두가 되는 여자를 앞에 두니 저녁나절 계속되던 두통마저 말끔히 사라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그녀를 놓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누구를 옆에 둘 처지가 아니었다.     


술이 오르자 하루만이라도 그녀를 붙잡아 보고 싶었다. 그래서 데려다준다며 같은 택시에 탔다. 

차 안에서 미친 척 손을 잡고 잊지 못했노라고 천진하게 고백할 수 있었던 건 내게 욕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넌 어디 갔다 이제야 왔냐? 네 생각 꽤 했는데...”

그녀는 잠시 주춤하는 눈치였지만 손을 빼지는 않고 말했다. 

“이제야 솔직해지네. 너는 맨 날 뭐가 그렇게 어려워?”

그녀의 눈빛에 반짝 생기가 돌았다. 

‘살면서 쉬운 게 있기는 한가?’ 

대답 대신 나는 빤히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 장난스럽게 입을 맞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벚꽃 잎이 바람결에 흩날리다 비처럼 떨어지는 광경이 처음으로 눈에 들어왔다. 

‘벚꽃 잎은 참 가볍기도 하다...’


그날 밤새 뒤척였지만 차마 시작하자고 말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분명 연락을 기다리고 있으리라 짐작했지만 내 상황의 설명이 너무 구차했다.

그래서 이틀 후, 꽤나 망설이며 보냈을 그녀의 톡을 씹어 버렸다. 대신 욕실로 들어가 피가 나도록 이를 닦았다. 나는 그녀에게 줄게 하나도 없었고, 이번에도 타이밍은 개떡 같았다. ‘그래, 안 만났다고 치자...’ 

그때 다급하게 나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허겁지겁 나가보니 거실 바닥에 쓰러진 아버지가 보였다. 

그날로 아버지는 깨어나지 못했다.

    

그저 아버지 한 사람 사라졌을 뿐인데, 갑자기 생활이 단순해지고 시간이 남아돈다. 나는 그 바람에 삼십 분이나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그녀는 이 모임의 참석여부에 대해 가타부타 연락이 없었다. 약속시간이 십분 쯤 지나자 P와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나는 반갑게 인사했으나 긴장감으로 자꾸 얼굴이 굳어와 맥주 한잔을 급하게 들이켰다. 혹시 안 오면 어쩌나.... 자꾸 신경이 곤두선다. 


십오 분, 이십 분, 이십오 분, 이십팔 분.... 덜컥 가게 문이 열리면서 태연한 표정의 그녀가 들어선다. 갑자기 나를 향한 친구들의 위로가 축하의 말로 들리기 시작한다.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 지금 돌아가 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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