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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아 Mar 28. 2022

너를 위한 아침식사

손바닥소설-우리 모두에게 어려운 나와 아이 그리고 일





제대로 된 아침을 준비하려면 한 시간은 일찍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아침마다 음식 냄새를 피우고, 요리하는 소리라도 내야 딸아이가 반응할 거 같아 포기할 수 없었다. 지금 한 달 넘게 현이와 한 공간에 있지만, 그 아이는 내가 있을 때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다. 닫힌 방문 너머로 현이가 깨어 있는지, 잠들어 있는지, 아니 살아있는지 정도라도 알고 싶다.     


4주 전 토요일이었다. 현이는 집으로 돌아온 지 사흘이 지나도록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휴일이라 작정하고 아침 일곱 시부터 거실 소파에 앉아 딸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화장실이라도 가겠지 하는 마음이었고, 나오면 데리고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열 시, 열한 시가 지나고 시계가 오후 세 시를 향하는데도 방문이 열리지 않았다. 나는 불안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더는 참을 수 없어 떨리는 손으로 열쇠를 찾았다. 이대로 두다가는 현이의 방광이 터져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열쇠 구멍에 열쇠를 넣어 도어를 돌렸다. 스르륵 문은 저항 없이 열렸다. 하지만 나는 한 걸음도 들어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현이가 창문가에 의자를 놓고, 그 위에 서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죽어 버릴 거야. 내버려 두라고 했지?”     

활짝 열린 창문으로 아카시아꽃 냄새 같은 것이 바람을 타고 스며들었다. 따뜻한 봄바람이 그 아이의 머리를 ‘찰랑’하고 흔들었다. 저 멀리 놀이터에서 사내아이들의 목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왔다. 밖은 완벽하게 평화로운 주말이었다. 


현이는 내가 한 발짝만 더 움직이면 그대로 뛰어내릴 기세였다. 16층 아파트였고, 다리가 후들거려 꼼짝할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알았어. 엄마 안 들어가. 그러니까 제발….”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현이의 얼굴이 차갑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잠시 후 현이가 고개를 숙인 채 의자에서 내려섰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그날 이후 다시는 먼저 딸의 방문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오늘 메뉴는 스페니쉬 오믈렛으로 정했다. 토마토소스를 얹은 오믈렛과 겉을 바싹하게 구운 치아바타를 곁들인 접시가 완성되었다. 현이는 오늘도 내가 만든 오믈렛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벌써 한 달 넘게 혼자 이 짓을 하고 있다. 저녁에 돌아와 주방 한구석에서 식어 빠진 아침을 데우지도 않고 저녁으로 먹는 날이 늘어갔다.     

 

내가 출근한 사이 현이는 밖으로 나가 끼니를 해결할 것이다. 메뉴를 정하기 위해 혼자 상가를 천천히 돌고 있을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곳은 십 년 전 현이가 예닐곱 살부터 우리 가족 급식 식당의 역할을 했다. 낮 동안 엄마와 도우미 아주머니가 순번에 맞춰 현이를 돌보다가 우리 부부가 퇴근하면 상가 앞에서 아이를 인계하곤 했다. 피곤에 쩐 내가 퇴근 후 제대로 된 식사를 챙기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일주일에 서너 번 이상은 그곳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수십 개의 작은 식당과 음식 좌판이 모여 있는 지하상가는 그 수만큼의 음식 냄새가 잡스럽게 섞여 있었다. 배가 고픈 날은 진한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지만 반대일 경우에는 들어서는 순간 불쾌한 헛구역질을 불러일으켰다. 온갖 종류의 식당이 있으니 웬만한 음식은 다 찾아낼 수 있었다. 가끔은 남편과 나, 현이 모두가 먹고 싶은 메뉴가 달라 합의점을 찾지 못할 때도 있었다. 남편은 속을 풀 순댓국을 나는 매콤한 비빔국수를 아이는 얇게 튀긴 돈까스를 포기할 수 없는 날이었다. 그럴 때면 각자 만 원짜리 한 장씩을 들고 상가 입구에서 헤어져 원하는 음식을 골라 먹기도 했다. 그때 우리에게 밥이란 다음날 전투를 위한 보급 식량 같은 것이었다. 어린 현이는 셀 수없이 많은 끼니를 우리와 함께 그곳에서 때웠다. 문득 현이가 ‘착한 이모네 돈까스’를 아직도 좋아할지 궁금했다.     

 

남편과 나의 직장은 퇴근이 일정치 않고 늘 새로운 비딩에 맞춰 일상을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 전쟁터 같은 곳이었다. 같은 부서에서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하고, 현이를 낳아 키우면서 또래의 인생 항로에 편승했지만, 그 모두를 제대로 해내는 것이 욕심임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애 키운다고 하던 일 접지 말고 너는 니 인생 살아….’

결혼에 묶이지 말고, 육아에 저당 잡히지 말고, 니 인생을 살라는 엄마의 말은 철들 무렵부터 들어온 주문 같은 것이었다. 


“현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엄마의 아침식사라는데요?”

현이의 5학년 때 담임이 현이가 쓴 ‘엄마의 아침식사’라는 제목의 글을 내게 보여주며 가식적인 웃음을 지었다. 

“그래요? 겨우 일주일에 한 번 정돈데...”

담임이 건넨 현이의 글을 건성으로 넘기며 나는 다소 겸손하게 반응했다. 일하는 엄마의 효율적인 관심과 사랑이 인상적이라는 담임의 입에 발린 칭찬이 사실인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일주일에 단 한번 아침식사’도 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 흐지부지 사라졌다. 회사 일에 치이고 떠밀리면서 나는 현이가 자라는 것을 제대로 느끼지도 못한 채 세월을 보냈다. 아이가 커갈수록 엄마 노릇을 못 하고 있다는 자책감이 슬슬 생겨났다. 그래서 현이가 2년 전 중학교를 졸업한 후 유학을 가고 싶다고 했을 때 차라리 그 결정이 고마웠다. 아이나 나를 위해서 가장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남편은 뭐 하러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며 말리는 기색이 완연했지만 내가 밀어붙였다.  

“엄마 아빠 고마워…. 나 열심히 할 수 있어. 그리고 엄마도 이제 회사 일 편하게 해. “ 

헤어지면서 현이가 다 큰 어른처럼 우리를 먼저 안아주었다.     


딸아이가 떠나자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가 생겨났다. 현이 말처럼 나는 남편과 내가 더 일에 집중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돈도 벌고 진급해서 현이를 뒷바라지하면 인생이 성공에 가까워질 거라는 얄팍한 신념이 있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우리 부부의 결속력은 급속도로 헐거워졌다. 우리는 시간에 자유로워졌지만 그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았다. 대신 같이 있으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어색했다. 완벽하게 다른 곳을 보고 있는 느낌. 우리는 예전에 끝나버린 관계의 민낯을 마주하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현이가 우리를 이어주던 유일한 끈이었음을 깨달았다. 건조하고, 지루하고, 차가운 날들만 우리 앞에 놓였다. 함께 있어도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고 싸우지도 않았다. 마침내 일주일에 단 한 번도 같이 밥을 먹지 않은 날들이 생겨났다. 우리는 내부적으로는 완전히 남남이 되었다.      


올해 초, 남편과 이혼을 했다. 원래 이혼이라는 것이 죽기 살기로 싸워서 원수가 되기 전에는 헤어지기 힘들다고 들었지만, 우리의 이혼은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대신 그 과정 내내 몸이 얼어붙듯 서로에게 차가웠다. 

“현이에게는 니가 말해.”

짐을 챙겨 집을 나서면서 남편은 떠넘기듯 내게 이야기했다.

“넌 니가 다 잘하고 있다고 느끼지? 현이에게도….”

문이 닫히고 그가 집을 떠났지만 마지막 말은 어쩐지 계속 머리에서 맴돌았다.


웅크리고 지냈던 겨울이 지나자 어김없이 봄이 왔다. 퇴근 후 텅 빈 집안에 멍하니 있다가 여름에 현이가 한국에 오면 둘이서 여행이나 떠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학 때 엄마랑 여행 안 갈래?”

이제 막 전송 버튼을 눌렀는데 띵똥하고 답이 왔다. 

“나 여기 인천이야. 지금 집으로 가.”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현이의 학교가 방학을 하려면 한 달 넘게 남아 있었다. 정확히 두 시간 후 현이가 현관문 비밀번호를 눌렀다. 

“미쳤어? 학기 중에 오면 어쩌겠다는 거야.”

이건 한 번도 생각지 못한 당황스러운 장면이었다.

“나 학교 그만뒀어. 다시 안 가.”

현이의 대답은 어이없을 만큼 명료했다. 

“안 가면…. 어쩔 거야.”

“나도 몰라. “

“말도 없이 이게 무슨 짓이야, 바로 돌아가.”

“그러는 엄마는 물어보고 이혼했어?”

나는 현이에게 간단히 우리 부부의 이혼을 통보했다. 별말이 없는 현이의 반응을 보고 수긍하며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다. 미국에서 십 대를 보내고 있는 아이니 그런 쪽으로는 이해가 쉬울 줄 알았다.

“먼저 무슨 일이 있었냐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엄마가 그렇지. 더 이상 할 말 없어. 건드리지 마. “

학교를 이렇게 그만두면 절대로 안 된다고 소리치는 내게 현이는 대답 대신 꽝하고 방문을 닫았다. 그게 끝이었다. 그날로 현이는 방안으로 잠적해 버렸다.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또래의 대열에서 이탈한 딸이 두 평 공간으로 숨어들었다.      


어둠이 내려와도 우리의 거실에는 불이 켜지지 않았다. 나는 내 방에서 현이는 현이의 방에서 숨죽이며 시간을 보냈다. 건드리면 죽어버리겠다는 아이의 말이 너무 무서웠다. 이유라도 알면 살 것 같았지만 무슨 말을 들을지도 두려웠다. 그러고 보니 현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딸에게 제대로 된 엄마로 살지 못했다. 엄마란 ‘낳아주는 사람, 모성은 제각각 다 다른 것임.’이라고 사전에 명시해 놓아야 할 것 같았다. 모성도 부지런히 개발하고 키워야 성장하는 것이었다. 

늦지 않았다면 이제라도 현이가 의지할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현이가 어긋나자 뒤늦게 미숙한 나의 모성이 자라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나는 생각다 못해 아침을 만들기 시작했다. 현이가 여행보다 선물보다 내가 만든 아침을 좋아한다고 말해주었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현이는 죽은 듯 조용하다. 주방 바닥에 앉아 차갑게 비틀어진 오믈렛을 맥주와 함께 꾸역꾸역 삼키다가 찔끔찔끔 울었다. 그리고 간 만에 깊은 잠에 빠졌다.

꿈에서 현이와 남편과 함께 아침을 먹고 있었다. 햇살이 거실 깊이 들어와 식탁을 비추었다. 현이의 얼굴이 환해 보였고, 남편도 편안해 보였다. 그들을 바라보는 내 얼굴이 보고 싶었는데 보이지 않았다. 조금만 애쓰면 볼 수 있을 거 같아 용만 쓰다 깨고 말았다. 나도 웃고 있었을까?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하고 싶었지만, 솔직히 어디서부터 다르게 갈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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