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A4 픽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아 Aug 11. 2022

아무도 그를 궁금해하지 않아

A4 픽션-손바닥 소설


지난가을 그가 돌아왔다. 17년 만에.

나의 전남편인 그가 작은 가방 하나만 든 채 털레털레,

마치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온 사람처럼 무심히 집안으로 들어서더니  

“나 얼마 안 남았대. 경빈이랑 같이 있고 싶어서 왔어.”라고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시커먼 안색을 보아하니 간이 제대로 망가진 것 같았고, 하나뿐인 아들과 마지막을 보내고 싶다는데 매몰차게 굴 수가 없었다. 그날부로  그는 현관 옆 비어있던 작은 방 하나를 차지하고 나와 마지막 동거를 시작했다.      

때마침 다니던 학교를 휴직하고 있던 참이었다. 지겨워질 대로 지겨워진 교직 생활을 이참에 정리하겠다고 마음먹고 있기도 했다. 그리고 경빈이는 의대 졸업 후 막 인턴을 시작한 즈음이라 사실 얼굴 구경하기도 힘들었다. 여러모로 그를 거두기엔 적당한 상황인 셈이었다.

통화로 그가 집으로 들어왔다는 말을 전해 들은 경빈이는 “엄마 미쳤어?”라며 질책하듯 말했지만 말투에는 약간의 고마움이 묻어 있었다. 경빈이에게 그는 아버지였다. 경빈이를 위한 일이라고 외면적으로는 생각을 정리했지만 심정은 좀 복잡했다.     


투병 기간 그는 생각 외로 내게 폐를 많이 끼치지는 않았다. 진통제를 달고 있었고 마지막에는 마약성 패치를 붙인 채 하루 종일 누워있었지만 될 수 있으면 나를 부르지 않으려고 애쓰는 듯했다. 하지만 잠시라도 경빈이가 집에 있을 때면 거실로 나와 아들의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가끔 경빈이가 패치를 갈아주거나 수액이라도 놓아주면 죽어가던 안색이 살짝 피기도 했다.

그리고 한겨울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몇 시간이고 창문을 열어 밖을 바라보는 모습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좋아, 세상이 너무 이뻐!”라고 중얼거렸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고 벚꽃이 피어나던 어느 봄날 그는 떠났다.

경빈이와 나는 간단하게 그의 장례를 치렀다.

‘무능해서 이혼했던 남편이 병을 얻어 내게 기어 돌아와 죽었다.’ 이처럼 팩트는 단순했지만 그의 죽음이 내게 선사한 무기력은 심했다.

사실 장례가 끝날 때까진 별 감흥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슬픔은 그 뒤에 몰아닥쳤다.

번쩍번쩍 마른번개가 친 뒤 갑자기 끝도 없이 쏟아지는 폭우 같았다. 무엇보다 나는 그 감정을 혼자 감당하기가 너무 외로웠다. '그'라는 사람을 함께 애도할 누군가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하지만 없었다. 정말 누구도 그를 추억하지 않았고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 안됐다, 그러게 그렇게 살면 끝이 안 좋다.‘ 뭐 대충 이런 말이 지인들이 그에게 쏟아부은 총평이었다. 하지만 그게 그의 모든 것은 절대 아니었다.     



생각하면 그는 정말 세상의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사랑하는 느낌들을 멈추지 못했다. 가령 모두 함께 모여 술을 마시다가 자작나무 숲이 그리우면 왜 그걸 참고 다음으로 미뤄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느낌을 그대로 이어가야  하는 것이 그가 사는 삶의 방식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경빈이를 데리고 떠돌았다. 여름에는 바닷가에서 살았다가 가을에는 숲에도 살았고, 겨울이면 도심의 허름한 빌딩에서도 지냈다.

즐거웠지만 불안했다. 인생이 내일이 없는 축제였다. 하지만 그는 잠자리에 들 때 ’ 오늘이 어땠는지 생각해봐..‘라고 속삭였다. 충만함을 느끼는 목소리였다.     


’사는 건 그런 게 아니야.‘라고 그는 늘 주장했지만 사람들은 그를 버거워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학교도 가고 직장도 가고 그리고 가정도 지키면서 그런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자라지 않았다.

그래서 모두들 그를 조금씩 멀리했는데 나도 그랬다. 그와 함께 경빈이를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게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혼을 했고 그는 그렇게 모두에게 외면당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세월이 흐르고 그는 사라져 버렸는데 이제 와서 그의 인생관이 꼭 나쁘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시간의 유한함을 먼저 알고 있었고 말하자면 시선이 머무는 대로 자신의 장면을 만들며 살고 싶었던 것이다. 그가 왜 해무가 짙은 바다를 그린 ’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라는 회화를 오려 언제나 벽에 붙여두었는지도 알 것 같았다. 그는 이미 우리가 이 혼돈의 바다를 떠도는 미미한 조각배였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어떻게 살아왔던 걸까?’

그가 떠난 이주 뒤, 주민센터에서 사망신고를 마치고 돌아온 날 나는 처음으로 그의 가방을 열었다. 쓸모없는 몇 가지 잡동사니들과 함께 낡은 노트북 하나가 가방 안에 들어 있었다.

전원을 켜고 맨 위쪽 파일을 열자 나는 눈부셔 눈을 감아버렸다.

아직 어린 그의 여자였다. 햇살처럼 눈부시게 웃고 있는 그의 여자가 그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수백 장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을 넘기면서 나는 그 모습들이 자라지 못한 그의 자화상이라고 여겨졌다.


꺼져있던 휴대폰을 켜고 그녀의 이름을 찾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많은 생각도 필요 없었다. 그를 함께 추억할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편안해졌다.

신호음이 멈추고 ‘여보세요.’라는 낮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반가움에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쁘다'는 사랑한다는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