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한 장 그리고 이야기 하나
(영화 "빠삐용"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위의 그림은 영화 “빠삐용 (1973년)”의 한 장면입니다. 탈옥 영화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저에게 이 영화가 각인된 이유는 긴~ 영화라는 겁니다. 아주 어릴 때 TV에서 처음 봤는데 봐도 봐도 끝이 안나더군요. 화장실을 몇 번 갔었던 기억이 납니다. 검색해 보니 러닝타임이 2시간 31분이었네요. 놀랄 정도로 엄청 긴 영화는 아니었군요. 그때는 체감상 3시간 이상이었던 것 같았는데.. 요즘 마블의 어벤저스 같은 영화들도 긴 러닝타임을 자랑하긴 하죠.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1.5배속 재생이 국 룰이다!”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의 OTT 서비스로 콘텐츠를 볼 때 1배속으로 보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직도 디즈니 플러스는 1배속 이상 재생하는 기능이 없나요? 디즈니 플러스를 이용하는 대한민국의 이용자들이 배속재생 기능이 없어서 항의를 많이 했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2022년 2월 5일) 글을 쓰는 현재 확인을 못했습니다.
이제는 많은 정보들을 동영상의 형태로 습득합니다. 텍스트 정보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글을 빨리 읽어낼 수 있었지만 동영상의 경우 러닝타임만큼 시간을 투자해야 했죠. 하지만 1배속 이상 재생에 사람들이 적응하면서 방법을 찾아낸 것 같습니다. 그 속사포 같은 말을 귀신같이 알아듣는 게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한국어 콘텐츠에도 한국어 자막이 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배속 보기에서 말을 못 알아들으면 자막을 보기 위해서요.
정보를 얻기 위한 이유라면 이해가 되지만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볼 때도 1배속 이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다시 놀랐습니다. 배속재생이 습관이 되었다는 것이죠. 1배속이 슬로 모션처럼 느껴지게 된 것입니다.
영화를 보고 감동을 느낀다는 것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적용됩니다. 우리가 대작 영화들, 러닝타임이 긴 영화들을 보며 받는 감동에는 영화를 오래 보고 있는 시간의 양이 중요하게 작용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마치 긴 시간 동안 그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의 인내심에 주어지는 보상 과도 같은 것이죠.
빠삐용이 마지막에 절벽에서 뛰어내릴 때 우리가 받는 감동은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주인공과 함께 탈출의 여정에 동참했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을 1.5배속, 2배속으로 단축시켜서 절벽 위의 주인공과 만난다면 우리가 느끼는 감동의 무게와 깊이는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온전한 길이의 시간으로만 다다를 수 있는 경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시간을 단축시키면 그 경지에 빨리 도달할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시간을 단축시키면 그것이 빨리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라지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기다림은 지루하지만 가치가 있습니다. 정말 급한 경우가 아니라면 감동을 위한 영화감상은 온전한 속도로 관람하세요. 그리고 의외로 많은 경우에서 시간의 단축은 생각보다 결과를 빨리 가져다주지 못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