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한 장 그리고 이야기 하나
상업 영화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돈을 지불하게 만드는 영화 상품이 아닐까요? 그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소비하기 위해서는 극장이라는 특별한 공간이 필요합니다. 극장은 영화가 존재하기 위해 당연히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죠.
OTT 플랫폼이 나왔을 때 기존의 영화산업 기득권자들은 좋아했습니다.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채널이 하나 더 늘은 것 이니까요. 캐이블 TV 정도로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OTT 플랫폼은 자체 제작 영화들을 자신들의 플랫폼에 단독 론칭하게 됩니다. 흥행도 하고 작품성도 인정받기까지 합니다. 그러자 기존의 영화 기득권자들이 얼굴을 바꿉니다. “극장 개봉을 위한 영화만이 진짜 영화이다!”
2022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작품상 후보들 중 5편이 OTT 플랫폼이 제작한 영화였고 애플 TV+의 “코다(CODA)”가 작품상 등 주요 부문 수상자가 됩니다.
불과 몇 년 전 칸 국제 영화제 등에서 OTT 플랫폼의 영화 출품을 막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OTT 영화들이 없으면 영화제가 돌아가지 않을 지경이죠. 그리고 2022년 상업 영화의 심장이라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AI가 인간을 바둑으로 이겼던 장면이 겹쳐 보이는 것은 저만이 아니겠죠.
지난 시절의 영화 산업 기득권자들이 극장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영화 상영이 아닌 부수적인 극장 운영으로 얻는 이득이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극장 팝콘으로 영화산업이 굴러간다고도 말합니다. 영화 제작과 배급까지 다할 수 있는 대한민국은 말할 것도 없고 그렇지 않은 시스템에서도 극장의 존재는 영화 산업의 핵심입니다. 어떻게 보면 OTT 플랫폼은 제작, 배급, 2차 판권 등등 모든 것을 아우르는 무서운 존재입니다.
영화의 자본주의적 관점이 아닌 예술로서의 관점도 OTT가 바꾸어 놓았죠.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영화 평론가인 이동진 평론가가 지난시절 방송에서 영화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화란 한 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보는 행위이다.” (정확한 기억은 아닙니다) 그때만 해도 OTT의 지배력이 미약할 때였죠. 고전적인 영화 개념을 말하는 자리였습니다. 지금 그의 OTT에 대한 생각은 모르겠지만 지난 100년이 넘게 지속된 영화의 패러다임이 급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동의할 것 같군요. “스필버그”도 “스콜세지”도 OTT영화를 혹평했었죠. 지금은 OTT에서 명작을 만들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202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누가, 어떤 작품이 수상할까는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후보작을 보지 못한 것도 있고, 후보작들이 저의 취향이 아닌 점도 있었습니다. 그저 단 하나의 초미의 관심은 OTT 영화의 작품상 수상 여부였죠. 그 밖의 인상 깊었던 장면들은 윤여정 배우의 시상자로서의 모습과 청각 장애인 가족을 다룬 영화 코다의 수상 장면들마다 나오는 관객석의 수어 박수들이었습니다. 남자 주연 배우 수상자인 윌 스미스의 해프닝은 아카데미 시상식 역사에 영원히 박제될 것이고요.
세상의 모든 것에 디지털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영화 산업도 예외일 수 없죠. 팬데믹이 끝난다고 OTT로 대표되는 새로운 흐름이 멈출까요? 영화를 보기 가장 편하고 최적화된 장소는 집입니다.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있는 극장 관람 비용에 비해 OTT의 구독료는 상대적으로 저렴해 보일 정도입니다. 극장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온전한 영화 관람의 장으로서의 구실은 이미 사라졌습니다. 그저 2시간 이상을 때우는 사교의 공간으로 바뀐 지 오래되었습니다. 블럭버스터 영화 말고는 선택의 자유도 없어진 지금의 극장에서 영화를 감상해야 하는 이유를 찾기가 점점 힘들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