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한 장 그리고 이야기 하나
(영화 어쌔신(Assassins 1995)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사라진 하이틴 영화를 찾아서”란 글에서는 소피 마르소의 영화 “라붐”을 소재로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때 자료를 찾기 위해 영화 라붐을 검색했었는데 깜짝 놀랐었습니다. 그 이유는 가장 먼저 검색이 된 것이 아이돌 그룹 라붐이었기 때문입니다. 와~ 라붐을 이기는 다른 라붐이 있다니! 이번 글의 소재인 영화 “어쌔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검색에서 제대로 나오지 않더군요. 영화 라붐보다는 수긍이 되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었습니다.
영화 광으로 가는 길의 단계를 정성일 영화 평론가는 이렇게 말을 했었죠. 한 영화를 두 번 보는 것부터 영화 광의 길은 시작된다. 그리고 그 종착역은 영화를 직접 만드는 것이다. 정성일 영화 평론가는 그래서 영화를 직접 연출을 해서 영화감독이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영화광의 판별법은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나만의 기준으로 선택한 영화 하나쯤 마음속에 품고 있는가?입니다. 저에게는 그런 영화들 중 하나가 바로 “어쌔신 (Assassins 1995)”입니다.
영화 “어쌔신 (Assassins 1995)”은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인 영화입니다. 대부분 스탤론의 대중성은 인정하지만 그의 연기와 그의 영화들이 그렇고 그런 오락영화의 범주에서 못 벗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놀랍게도 힘을 뺀 비교적 담백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영화의 진짜 재미가 주인공 스탤론에 있지 않다는 겁니다.
주인공과 대척점에 서있는 악당의 모습이 너무도 매력적입니다. 저는 항상 “악당이 멋있어야 영화가 성공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의 모습을 제대로 본 게 이 영화에서였던 것 같은데.. 바로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악당으로 나옵니다. 그때만 해도 젊은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스탤론 보다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았지만 그의 연기와 카리스마는 스탤론을 가뿐히 앞지릅니다.
이 영화가 표면적으로 하는 이야기는 두 암살자의 대결이지만 진짜 이야기는 신, 구세대의 갈등과 화해이며 젊음의 열정과 늙음의 혜안을 대비시키면서 인생을 말합니다. 결국 인간의 욕망, 최고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어떻게 인간을 파괴하는지 보여줍니다.
최고의 암살자인 주인공 래스(스탤론)는 이제 그만 은퇴를 하려고 합니다. 그가 맡은 마지막 임무에 또 다른 암살자가 끼어들게 됩니다. 바로 젊은 암살자 베인(반데라스)이죠. 베인은 래스를 동경하면서도 최고의 암살자가 되고 싶은 욕망에 그를 제거해야만 합니다.
영화는 아기자기하면서도 치밀하게 구성된 장면들이 몰입감을 높입니다. 특히 제가 좋아하는 장면이 있는데, 방탄유리를 사이로 두 암살자가 대치하게 되는 택시 속 장면입니다. 여기서 갑자기 방탄유리에 베인이 총을 쏩니다. 그리고 웃으며 이렇게 말하죠. “혹시 모르니 확인해 봐야죠.” 이런 장면들은 소소하지만 영화를 참 맛깔나게 만들어줍니다. 한참 후인 대한민국의 영화 “아저씨”의 주차장 장면을 보면서 이 장면이 떠오르더군요. (방탄유리도 총을 쏴봐야 한다.)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연기한 베인은 참! 입체적인 인물입니다. 오히려 주인공은 평면적이어서 좀 지루합니다. 베인의 모습은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상대와 공존할 수 없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여줍니다. 암살자로서 모든 것을 가졌지만 세계 제일이라는 타이틀을 원했던 베인은 스스로 무너지죠. 세계 최고라는 타이틀이 얼마나 허무한지 아는 자는 지금 최고의 자리에 있는 주인공뿐입니다. 주인공 역시 최고를 위해 인생을 허우적거리며 달려왔고 이루었지만 그가 바랐던 것과는 다른 자리였습니다. 슬프게도 이런 가르침은 직접 겪어봐야 안다는 점입니다. 베인 역시 말로는 설득이 안되었죠.
젊은 세대들의 열정은 부럽지만 정작 중요한 것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조언에 귀를 닫고 승승장구하다 결국 쓰러집니다. 반면 이런 것들을 다 겪고 성공한 기성세대들은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만 남은 시간이 없습니다.
영화 어쌔신은 단점도 많은 영화입니다. 마지막 은행에서의 대치 상황은 이해가 안 되는 억지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곳곳에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의 허술함이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이야기는 볼만하게 짜여있습니다. 아마도 그 일등 공신은 감독일 텐데, 감독이 "리처드 도너"입니다. "슈퍼맨" "구니스" "리썰 웨폰 시리즈"등을 만든 감독입니다. 또한 지금은 최고의 배우로 찬사 받고 있는 "줄리안 무어"의 초창기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평이나 평론가들의 비판과는 무관하게 자신만의 영화 한 편을 가슴에 담아두기를 바랍니다. 그 영화는 내가 어려울 때,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질 때 화면에서 나를 위로해 줄 것입니다. 소중히 간직했던 음악들이 스트리밍으로 흘러나오는 배경음악으로 전락한 것처럼 영화 역시 그저 한 순간 소모되는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자신만의 영화들을 마음속에 새기는 것은 가슴 벅찬 일상을 만드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