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팩트에 의한, 팩트의 사회가 됐다. 어떤 사안에서 건 팩트를 따져 묻는 사람들이 과거에 비해 늘어났다. 팩트가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것은 ‘팩트’다. 하지만 그 자체가 진실은 아니다. 진실은 다면적 구조를 가진 사실의 총화다. 때문에 진실은 한두 가지의 팩트로 설명할 수 없다. 오히려 진실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팩트들을 사건의 순서대로, 혹은 개연성이 확보될 수 있게 정렬시킬 수 있는 추론 능력과 논리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맥락, 컨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능력, 더 중요하게는 이 프로세스를 기꺼이 수행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횡단보도에 서 있었다. 건너편 신호등을 바라보는데 문득 건물과 하늘 사이 경계의 색채 대비가 아름답도록 뚜렷했다. 이 도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우중충한 건물과 확연히 대비된 그날 하늘의 색감 때문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린 시절 학교 교보재로 사용했던 청사진의 그것처럼 맑은 푸르름 속에 연보라색이 슬며시 묻어있는 그런 오묘한 색이었다. 그리 자주 마주할 수 없는 반가운 얼굴이라 한참을 바라봤다. 그때 옆에서 사람들이 걷기 시작했다. 다행히(?) 횡단보도 가장자리에 서 있었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보행을 방해하지는 않았으나 몇몇은 지나가며 이상하다는 눈빛,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힐끔거렸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가장 쉽게 접하게 되는 팩트는 내 눈앞에서 벌어진 사실이다. 이 팩트에 해석의 여지는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여기에 거세된 맥락들이 있다. 나를 힐끔 거렸던 사람들에게 팩트는 한가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며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길을 건너지 않는 얼빠진 녀석이다. 그 팩트에서 근자에 잘 보지 못했던 맑은 날씨나 오묘한 색을 뽐내던 하늘의 빛깔이나 그에 감탄하던 나의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맥락까지 포함된 상황이 진실이다. 다만 누구도 관심이 없을 뿐.
이 단절된 팩트는 관계와 소통을 일방적으로 만든다. 우리가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했을 때 기대하는 바는 쌍방향적 상호작용이다. 하지만 단절된 팩트의 맥목적 신뢰는 이 커뮤니케이션의 성립 자체를 방해한다. 이 단절된 팩트는 그 명료성과 단순성 때문에 상황의 규정과 평가로 이어질 뿐 교류와 조정으로의 길은 막는다. 이 사회에서 관계와 소통이 수년째 지속적으로 화두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이유다.
우리가 팩트를 대하는 태도와 이로 인해 파생되는 관계와 소통의 문제는 단순하게 예의나 무례의 문제를 넘어서는 사회에 만연한 현상이라고 봐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진실과 팩트를 구분하고 이해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팩트 무용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팩트 만능론에 대한 이야기이며 진실이 가지는 복잡성에 대한 이야기다.
진짜 진실을 알고 싶다면 귀찮아지고 피곤해질 각오가 있어야 한다. 편하게 날로 먹는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