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된 죽음
한국에는 경조사에 하객이나 조문객이 돈을 내는 문화가 있다. 손님들이 축의금 및 조의금을 내는 이유는 이 의식에 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물론 객이 일정 정도의 돈을 내는 문화나 이런 의식에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 한국만의 특이점은 아니다. 특히 다른 나라에서도 혼인율이 떨어지기 시작한 핵심적인 이유가 결혼식의 비용 문제였으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결혼식이 간소화되고 비용이 감소하는 추세로 전환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한국에서도 최근에 이런 흐름이 생기고 있다. 스몰 웨딩 등이 그런 경향 속에서 나타난 현상들이다. 다만 장례 문화에서는 이런 변화를 찾아보기 힘들다.
장례 비용에 대해서 크게 이슈가 된 적은 없지만 분명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행사다. 다른 나라에서도 장례에는 많은 돈을 쓴다. 독일의 평균 장례비용은 약 1만 3천 유로 (12,980 유로, 한화로 1749만 원)로 그들의 높은 평균 임금 등을 고려해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Statista, 2020). 한국도 이에 못지않다. 2015년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평균 장례비용은 1381만 원 선이다. 개인이 부담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금액이고 지불하려면 장기간의 준비가 필요할 금액이다. 때문에 이를 위한 다양한 사회적 장치들이 생겼다. 사망보험이나 생명보험, 장례보험 같은 상품들이 그러한 것들이다. 일반 상식에서 이런 상품들은 현대 금융 자본주의의 산물이라 보겠지만 실제로 장례보험의 경우 고대 그리스나 로마시대부터 해서 중세 유럽, 빅토리아 시대 영국을 거쳐 지금까지 유지돼 온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장례에 돈이 많이 필요했던 건 고대인들이나 중세인들도 마찬가지였다는 거다. 이쯤 되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인간은 개인의 죽음에 대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비용을 보장 제도나 지원 프로그램의 조력을 받아가면서 까지 지불해오고 있을까?
죽음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본능적인 것이어서 인간의 역사는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점철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는 의료 기술을 넘어서서 나노기술과 유전자 조작 기술들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고 굉장한 성과를 기대하고 있지만 중세에는 종교가 다른 모든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죽음이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도 큰 역할을 수행했다. 죽음이 주는 핵심적 공포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해 볼 수 있는데 그중 하나는 ‘내’가 완전히 소멸된다는 점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동력이 되는 것은 욕구나 욕망을 충족하고자 하는 본능이다. 그리고 이 본능은 필연적으로 ‘희망’을 동반한다. 내일이 모레가 다음 달이 내년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이 욕구와 욕망을 충족할 이유를 만든다. 하지만 죽음은 이러한 동기와 희망을 앗아간다. 죽음 뒤에 ‘더 나은’이라는 말은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때문에 인간은 죽음 앞에서 매우 큰 불안정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 종교가 큰 역할을 수행했다. 많은 종교들이 사후세계의 개념을 만들어 이를 전지전능한 신과 엮는다. 이는 매우 교묘하면서도 효과적인 이론이었다. 사람들은 죽음 이후에도 ‘삶’이 이어진다는 생각에 다시금 희망을 갖게 됐고 사후의 삶을 위해서 종교에 더욱 충실해지게 됐다.
죽음과 관련된 공포의 또 다른 한 축은 잊힐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소위 말하는 명예욕이 있다. 이는 단순하게 유명해지는 것, 자신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면서 권력화 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다른 이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 다른 이에게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 하는 욕구, 그리고 다른 이에게 기억되고 싶은 욕구다. 이 역시 인간이 돈이나 명예, 즉 사회적 권력을 추구하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 개체가 소멸되면 그 시점부터 그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기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본래의 존재를 대체할 물리적 매개가 필요해진다. 이러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 물리적 매개를 만들 필요가 있었는데 이를 위해 탄생한 게 장묘(葬墓) 문화였다. 묘와 비석을 세워 상징적 표시를 만들고 특정한 날을 정해서 지속적으로 죽은 이를 기리는 상징적 의식을 치르기 시작했다. 후대는 본인들 또한 잊히기 싫었기에 그들의 후대에게 이를 교육하며 본인들이 선대를 기리는 모습을 본으로 보였다. 각 지역에서 고유의 문화에 따라 다양한 장묘문화가 존재했지만 범지역적으로 영향을 행사하는 종교들이 나타나면서 일정 정도의 통일성을 가지게 됐다. 한국의 경우에는 유교의 유입으로 일관된 절차를 가지게 됐고 유럽의 경우에는 기독교가 자리를 잡으면서 그런 경향을 띄게 됐다.
종교의 교리와 의식들은 고대와 중세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행동양식을 규정했고 이것이 문화가 되거나 관습이 됐다. 종교에서 파생돼 나온 사상이나 의식, 관습들은 그 본류가 지닌 특성처럼 교조적이고 규범적이었다. 과거에는 이들의 강제성이 더 강력했고 도덕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사실 종교의 일부 교리나 의식들은 고대 국가의 확고한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 고안된 것들이다. 고대 국가에서는 사람들을 통합하고 집단의식(Kollektivbewusstsein)을 입력시켜 국가에 대한 소속감, 충성심을 고취시키려는 목적으로 종교를 적극 활용했다. 그 일환에서 장묘문화는 구성원의 죽음으로 인한 부수적 피해, 다시 말하면 망자의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겪을 수 있는 극도의 우울감과 이를 통해 발생할 수 있는 자살이나 노동력 저하, 사회적 일탈 행위들을 줄이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 여기에 종교적 도덕성과 당위성 때문에 구성원들이 꼭 신경을 쓰고 금전적 지출을 감내해서라도 지켜야 하는 행위가 됐다.
물론 관습도 바뀐다. 사회가 변하고 이에 따라 개인들의 행동양식이 자연스레 변화하거나 사회가 요구하는 행동양식이 바뀌면 관련된 관습들도 바뀐다. 한국의 매장문화 또한 그런 흐름 속에서 변했다. 한국에서 시신을 매장하고 봉분을 만드는 형태는 전통적 관습에 해당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오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변화의 요구가 있었고 이에 따라 관습이 변해갔다. 표면적으로는 달라진 생활양식으로 인한 묘소의 안정적 관리 불가, 그리고 묘지의 기하급수적 증가로 인해 전 국토가 묘지화 될 수 있다는 다소 극단적 이유로 변화에 대한 제안이 나왔다. 하지만 이러한 의견이 기존의 강력한 관습을 바꾸도록 할 수 있었던 점은 토지의 재산권 행사를 원활하게 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이런 요구로 2005년도에 처음으로 화장률이 매장률을 넘겼으며 2017년에는 화장률이 84.6%에 달했다 (보건복지부, 2019). 그렇다고 장묘문화 자체가 극단적으로 변한 것은 아니다. 장례의 형태는 기본 틀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고 봉분을 만드는 형태의 매장이 줄었을 뿐, 화장 후에 납골묘에 유골을 안치해서 기리는 식으로 기본 틀은 유지되고 있다. 죽음으로부터 발생하는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행위라는 목적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인류의 과제다. 하지만 이런 관습이 유지되고 관련해서 지출이 지속되는 게 극복하지 못하는 공포 때문만은 아니다. 이 분야에서 분업화와 산업화가 진행되고, 분업화와 산업화가 항상 야기하는 흐름대로, 서비스가 사람들의 수요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운영되면서 큰 시장을 유지하고 있는 면도 이유 중에 하나다. 특히나 가족 구성원이 죽었을 때 이를 적절한 절차로 처리해야 하는 일은 화급을 다투는 일인 데다 문화적으로 주입된 인식도 있기 때문에 이렇게 제공되는 서비스에 불평을 할 겨를이 없다. 특히나 장묘를 위한 의식에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 과거 중세 사회까지는 노동집약적 사회였기 때문에 의식에 필요한 노동력 문제에는 그래도 대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근대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이러한 노동력을 수급하는 것이 사실상 힘들어졌다. 이러한 배경에서 장례식장이나 장례지도사 같은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장 및 업종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여기서 더 나가 1980년대 초부터 상조회사들이 생겼고 장례의 대부분을 대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서비스들은 문화적으로 종교적으로 역사적으로 형성된 장묘의식을 수행해야 한다는 필요에 의해서 발생했고 여전히 이 필요에 의지해 유지, 발전하고 있다. 그런데 죽음이 주는 공포의 측면에서 장묘문화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제사문화는 최근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사회의 구조와 문화가 변하면서 이 의식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변했고 무엇보다 그 의식을 준비하면서 발생하는 가족 간의 문제가 사회 문제화되면서 사회 운동 비슷한 구호들도 나왔다. 그러면서 제사의 형식이 축소되거나 생략돼 버리는 추세로 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장묘 문화에 대해서는 그러한 이야기들이 언급도 되지 않는다. 그 이유가 어쩌면 지금까지 쭉 이야기했던 인간이 죽음에 대해 가지고 있는 본능이나 문화적 배경 때문이 아니라 산자가 망자에게 가지는 미안함과 후회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망자에게 살아생전에 잘해 주지 못했던 미안함과 후회가 죽음이라는 사건을 통해 강력하게 되살아나고 이 후회를 장묘로 해소하려는 것이 아닐까? 이유야 어떻든 코로나 시국에도 장례식장만은 거리두기 단계 시설에서 일정 정도 예외로 두는 등 여전히 죽음과 장묘 문화는 우리 속에 살아있다.
Statista “Durchschnittliche Kosten von Bestattungen in Deutschland” 2020, https://de.statista.com/statistik/daten/studie/1102200/umfrage/durchschnittliche-kosten-von-bestattungen-in-deutschland/#professional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1월 21일 2017년 화장률 84.6%, 증가 추세 지속” 2019, http://www.mohw.go.kr/react/al/sal0301vw.jsp?PAR_MENU_ID=04&MENU_ID=0403&CONT_SEQ=3474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