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럽다
빵집 가는 길은 늘 설렜다. 고소한 냄새가 가게 문틈을 타고 흘러나와 길 한복판까지 퍼질 때면, 그 냄새만으로도 배가 부른 기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생일선물로 받은 기프트콘 유효기간이 다 되어간다는 문자를 받고서야 내게 그런 쿠폰이 있었다는 걸 떠올렸다. 마감이 임박한 쿠폰을 확인하고, 빵집으로 향했다.
쿠폰은 케이크 교환권이었지만 빵으로 바꾸기로 했다. 케이크 한 조각보다 호밀식빵 한 봉지가 더 실속 있을 것 같았다. 꽈배기도 담고, 아이가 좋아하는 피자빵도 골랐다. 모닝빵 몇 개를 추가했다. 아직 쿠폰 금액이 남아 빵집안을 두리번거렸다.
빵을 고르는 동안, 빵집에는 나 외에도 두 명의 손님이 있었다. 좁은 공간에서 서로 부딪히지 않게 자연스럽게 동선을 조절하며 빵을 골랐다. 그러다 아이가 좋아하는 샌드위치를 발견했다. 손을 뻗어 집으려는 순간 다른 손님이 재빠르게 그것을 낚아챘다.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분명 내가 먼저 봤는데 내 손이 더 가까웠는데. 하나밖에 남지 않은 빵이라 더욱 아쉬웠다.
다른 빵을 찾았다. 햄버거가 보였다. 아이는 햄버거도 좋아하니 이게 더 나은 선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손을 뻗는 순간, 다른 손이 먼저 햄버거를 집어 갔다. 속이 상했다. 그러나 어쩌랴. 느린 내 동작을 탓해야지. 나는 그 손님과 거리를 두었다. 같은 공간에 있되 서로 마주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이상했다. 내가 방향을 바꾸면 그도 방향을 바꿨다. 우연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려 애썼다. 하지만 여전히 불편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공간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남은 금액을 맞추기 위해 소보로 빵을 몇 개 더 담고 곧장 계산대로 향했다. 결제를 마치고 빵이 담긴 종이봉투를 들고 가게를 나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봉투 손잡이가 찢어졌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오늘따라 예상치 못한 일들이 자꾸 일어나는 것 같았다. 빵이 담긴 종이봉투를 양손으로 움켜쥐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 빵들을 정리했다. 사고 싶었던 샌드위치와 햄버거를 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가격에 맞춰 추가로 담았던 소보로 빵을 보니 커피와 먹으면 맛있을 것 같았다. 점심은 간단하게 소보로 빵으로 때우기로 했다.
소보로 빵을 뜯어 접시에 담으려는 순간, 손에서 빵이 미끄러졌다. 바닥에 그대로 떨어졌다. 소보로 빵의 부스러기가 바닥에 흩어졌다. 나는 그 광경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빵집에서부터 이어진 모든 일이 하나의 흐름처럼 느껴졌다. 샌드위치를 놓치고, 햄버거를 빼앗기고, 봉투가 찢어지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소보로 빵까지 바닥에 떨어졌다. 바닥에 널브러진 빵 부스러기들을 보며 한숨이 나왔다.
혼란.
혼란 스러웠다.
살다 보면 종종 그런 날이 있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 일들이 오늘따라 신경 쓰이고, 모든 것이 엉망으로 꼬여 버리는 날. 머릿속이 어지러워지고,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순간적으로 흐려지는 날.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나는 천천히 바닥에 흩어진 빵부스러기를 주워 담았다.
주워 담기 버거운 감정들이 있다. 혼란이 그렇다. 정리되지 않은 채 사방으로 흩어져, 손을 뻗어도 한 번에 다 쥘 수 없는 감정. 그 감정을 주워 담는 일은 바닥의 부스러기들을 하나씩 쓸어 담는 일과 닮아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소보로 빵을 조심스럽게 들어 접시에 담았다. 떨어뜨린 빵이지만 버리기에는 아까웠다. 나는 빵을 반으로 쪼개어 커피 한 모금과 함께 입에 넣었다. 여전히 달고 고소했다. 아무리 혼란스러운 하루라도, 소보로 빵은 여전히 소보로 빵이었다.
널브러진 빵부스러기들을 모두 정리했다. 어떻게 치울까 혼란스러웠는데. 모두 사라졌다. 혼란스러운 감정도 결국에는 정리가 되겠지. 주워 담기 힘든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씩 쓸어 담다 보면 다시 정리되는 것처럼. 엉망이 된 하루도 결국 지나가고 있다.
나는 커피 한 모금을 더 마셨다. 바닥에 흩어졌던 빵부스러기들은 잊혀 갔고, 달콤한 소보로 빵 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