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에서 임신한 채로 일을 시작했다.

by 박모카

현지에 도착해보니 마주치는 사람들은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었다.

우린 오해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내 마음은 점점 풀어져서 밴쿠버에서 아기들을 키우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자리잡게 된다.


내가 식당에서 일한다고 했을 때, 찬성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부모님은 청개구리 같은 내 심보를 알기 때문에 긁어부스럼 만들지 않도록 반대를 하지 않은 것일 뿐이었다. 좋은 커리어를 놔두고 왜 굳이 식당에 가서 일을 하는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나 역시, 이것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웠다. 논리적으로 그들의 말이 맞는 것 같았으니까.

사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국제기구 취업 시도를 한 지 6개월이 넘었고, 아직까지 취업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도피의 방안으로 이 식당을 선택했다는 생각말이다.


하지만 현지에 도착하고 나서, 내 생각이 조금 정리되었다. 논문을 쓰는 것이나, 연구를 하는 것은 큰 주제를 다루지만 실질적으로 그에 대한 결과를 보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식당에서 일하기로 했을 때, 더군다나 식당 사장님께서 식당에서 쓰지 않던 공간을 새로 쓰고 싶어하는 의지를 보였을 때 내 심장은 두근거렸다. 남의 돈(사장님의 자산)으로 내가 생각했을 때 좋아보이는 시도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주 잘 된다고 해도 내가 금전적으로 얻을 부분은 많지 않겠지만, 이것이 실패해도 그것에 따른 금전적인 손해는 발생하지 않는다. 이 기회를 통해, 나는 경험이라는 것을 만들어 볼 수 있었다. 단순히 서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식당 운영 시스템에 관여를 하는 것.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이에 대한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받아보는 것. 나에게 가장 절실했던 것은 성공에 대한 경험이었다. 공부를 해서 얻는 성공이 아니라, 사업에 대한 성공 말이다. 차곡차곡 쌓아가면 무조건 보장되는 미래가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오히려 잃을 수 있는 리스크가 있는 것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이를 성공하는 것이다. 개인 자산으로 시도해보기에는 겁이 너무 많아서 하지 못할법한 것을, 이번에 식당에서 일하면서는 새로이 할 수 있어 보였다.


그래서 였던 것 같다. 캐나다에 와보니, 사회주의와 비슷한 사회를 직접 경험해보는 것도 (대학생 때 몇 개월 지냈던 적이 있지만 그 때는 사회 시스템에 대해 생각해보거나 경험해볼 일이 많지 않았다..) 꽤 흥미로운 관심거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뱃속의 아기까지 책임져야 하는 홑몸으로 해외에 오기란 굉장히 부담스러운 것이 맞긴 하다. 앞으로 더 좋은 보금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이 당연히 있다. 출산을 하게 된다면 가족을 데리고 와야하기에, 또 세상에 나올 아기를 위해 지금보다 안락한 환경이 필요했다. 이 때 필요한 돈을 마련하고, 한국에 보내줄 여분의 돈까지 차곡차곡 모으는 것 역시 부담이긴 했다. 사실 이게 가능한지조차 의문이긴 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캐나다의 사회주의 모습 덕분에 출산휴가, 육아휴가 등 혜택이 있다는 것 이었다. 하지만 이런 혜택을 받기 위해서 최소 일해야 하는 600시간 근무를 채워야 한다. 내가 한 달만 더 빨리 캐나다에 왔으면 만삭까지 일하지 않아도 되니 부담이 덜할껄 (비자가 나오지 않아서 실질적으로 불가능했다.)이라는 상상을 가끔씩 하곤 하지만 해외에 혼자 떨어진 나는 꽤 강했다. 밴쿠버 도착과 함께 입덧이 사라졌고, 왕성했던 식욕만 살아있어서 끊임없이 먹어댔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18시간씩 잤던 내 모습과는 반대로 캐나다에서는 잠이 오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알아서 적응해주는 내 몸에게 감사한 느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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