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하고부터는 어떻게든 일자리를 찾아보았다. 가장 먼저 연락이 닿았던 곳이, door to door fundraising이라는 것을 하는 단체였다. 여기서는 말 그대로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NGO 등 단체에 기부해달라고 요청을 하는 것이 주 업무였다. (이 일을 시작하기 위해, 서류-(단체)인터뷰 1-(개인)인터뷰 2 과정을 거쳤다. 캐나다에서는 아무리 기본적인 일을 하려고 해도 인터뷰 과정이 최소 두 번은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시급을 받으면서 일하는 것이었고, 법적으로 받아야 하는 기본적인 보호를 받는 것 뿐 아니라 일한지 3개월 이후가 되는 시점부터는 약간의 복지가 더 있었다. (치과 보험 적용이라던지, 일반적으로 가볍게 해주는 복지 정도의 수준이다.) 5-7시간 동안 새로운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모금을 받아오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하지만 강도는 꽤 쎘다. 트레이닝 기간 5일 동안, 총 $105달러 이상의 정기 기부를 받아오는 것이 테스트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일시적으로 주는 돈이 아니라, 월 단위로 매 월 기부금을 받는 것으로 총 $105달러가 넘어야했다. 문을 두드리고, 그 자리에서 정기 기부를 받아오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의아함이 있었지만, 이렇게 한다고 하니까 일단 같이 해보았다.
시작은 자기소개였다.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서서, 자기에 대한 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존 맴버들은 익숙해하는 '활동적인' 환경이 꽤 어색했다. 말을 할 때 일부러 제스처를 크게 한다거나, 효과음을 낸다거나 하는 모습이 꼭 만화속 모습 같았다. 자기의 소개 시간이 끝나고 다음 사람에게 바톤을 넘길 때에는 에네르기파를 쐈다. 참가자의 대부분은 호감이 있는 얼굴형이었고,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했다. (나중에 실습을 하려고 밖에 나와서 돌아다닐 때에는 참가자의 차림새가 꽤 누추하다는 것을 알았다. 사진으로만 본다면 조금 깔끔한 노숙자 정도였다고 할까. 다행히 냄새는 안 났다.) 영어를 배우고 싶은 한국인들은 어학원에 다닐 것이 아니라, 이곳에 온다면 꽤 영어가 빨리 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말을 했고 에너지가 대단했다. 팀 빌딩을 중시하는 문화 같았다.
자기소개가 끝나고는 교육 시간이 있었다. 기부를 받는 단체의 이념, 목표, 원칙 등을 시작으로 활동을 하는 꿀팁 등이 이어졌다. 이 활동가들도 다 같은 사람이구나 느낀 것이, '오늘 오면서 어떤 사람이 말 걸었어. 나도 이렇게 보이겠지?'라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 기부금을 받는 사람들도 실수로 다른 기부금을 받는 사람에게 기부요청을 했다는 우스운 소리도 들려왔다. (동일 업무를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의식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자기가 하는 업무에 대해 꽤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도 꽤 놀라웠다. '우리는 여러 집 문을 두드리지만, 그 개인 한 사람 사람에게는 새로운 일이야.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캔버싱(기부 요청을 위해 문을 두드리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 같았다.)에 대한 선입견은 우리로부터 생겨. 이런 경험을 잘 하지 않거든. 그래서 우리는 언행을 조심해야해.'라고 했다. 하지만 나중에 또 들어보니, 문을 두드리며 기부 요청을 하는 것은 꽤 종종 있는 일이라는 말도 들었다.
교육이 끝나고 나서는 30분의 간단한 식사 시간이 있었다. 그 후에는 우버를 타고 목적지로 향했다. (4명이서 이동했기 때문에 대중교통보다는 우버가 낫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일을 하면서 이동해야하는 비용은 회사에서 대준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짧은 설명과 함께 바로 일을 시작할 줄 알았는데, 뜬금없이 '닌자 게임'을 하자고 했다. 나는 이번 맴버에 아시아인이 많아서 그런가? 하며 기분이 이상했다. 나에게 닌자 소리를 아냐고 물어봤을 때에는 '이렇게 내지 않을까?'라는 추측을 던지기 보다는, '난 닌자에 대해 잘 몰라. 닌자는 소리가 나면 안 되는 것 아니야?'라며 비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약한 방어기재가 작동했던 것이다. 옆에 있던 홍콩 친구는 쿠슝~ 하며 즐겁게 임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깊었다. 저 친구는 정말 구김이 없구나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어린이들이 무궁화가 피었습니다 게임을 하며 놀았던 것 처럼, 우리는 닌자 놀이를 하며 시간을 조금 보냈다. 한국인 사장님이 있는 곳은 '무조건 빨리!' '무조건 일해야해!' '무조건!' '무조건!' 이라는 생각이 너무 강해서, 다른 어느 곳 보다도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할 일이 없으면 땅이라도 쓸고 창이라도 닦아야했다. 하지만 캐나다 회사는 조금 더 여유로운 모습이 있었다. 이것도 팀 빌딩의 일환이야! 라며 천천히 돌아가는 문화에 숨이 좀 쉬어졌다. (닌자 놀이는 정말 하기 싫었다. 너무 재미가 없었다.)
그리고 대망의 집 돌아다니기가 시작되나 했더니, 이제는 태블릿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기부는 모두 태블릿으로 접수를 받았다. 집에 초인종을 어서 누르나 했는데 어떤 친구는 담배 피러가고, 어떤 친구는 화장실에 다녀오고, 나는 그걸 기다리면서 다른 친구와 연설(기부 단체에 대한 설명과 기부를 해주세요! 라는 메세지)을 연습했다. 시간이 참 천천히 지나갔다.
집 돌아다니기를 시작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 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오지 않았다. 활동가들은 '파워 타임'(업무가 끝나는 마지만 시간대이자 사람들이 일하고 집에 돌아오는 시간대. 이 때가 가장 응답률이 높다고 한다.)에는 집에 불이 켜져있는지, 차가 있는지 등을 확인하며 성공률이 더 높아보이는 집만 골라서 문을 두드린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파워 타임 전이기 때문에, 모든 집의 문을 차례차례 두드렸다.
집에서 나온 사람들은 생각보다 우호적이었다. 물론 그들은 기부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도 이야기를 인내있게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기부단체가 하는 일이 의미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정보를 찾아보겠다고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활동가가 하는 말만 듣고 그 자리에서 '정기' 기부를 할 사람은 정말 드물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채팅방에 알람이 울렸다. 누군가 오늘 성과만 150달러의 정기 기부를 받았다는 것이다. 나와 같이 있던 사람이 그 메세지를 읽어줬는데, 그 사람의 눈에는 부러움이 가득했다. 그 눈빛을 보고 이 사람은 정말 이 일이 천성이구나.. 깨달았다. (6년차라고 했다.) 이 사람은 기부를 받는 것이 진실하게 사회에 도움이 되며,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을 했다.
참고로 우리가 소속된 회사는 여러 NGO등으로 부터 프로젝트를 받아서, 기부금을 모아오는 '전문' 회사였다. 매번 기부를 받아야 하는 대상은 달라졌다. 이번에는 자연 보호 프로젝트였는데, 이 NGO가 땅을 살 수 있는 기부금을 받아야 했다. 이 NGO는 땅을 사놓은 다음에, 그 땅에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채 계속 가지고 있으며 땅이 저절로 치유되도록 놔두는 것이 이 단체의 역할이라고 했다.
집에 돌아온 나는 프로젝트 리더에게 문자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내일부터는 못 나올거라고. 사실 얼굴을 보고 말하고 싶었는데, 같이 있는 중간 중간에 '내일은 언제 시간돼?'와 같이 질문을 하는 바람에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는 내가 이곳에 계속 나올거라고 확정하고 말을 하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사람들에게 얘기를 할 때 쓰는 어투이기도 했다. '동참해주실건가요?'라고 묻기보다는, '기부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여드릴게요.'와 같이 단정적이고 자신감있는 어투를 썼다. 톤도 낮춰서 얘기하고, 이 사람이 기부를 할 것이다!라는 것을 전제로 두고 말을 하는 화법을 쓰는 것도 꽤 신기하고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