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절개 7일만에 응급실에 갔다.

by 박모카

캐나다는 의료가 열악하다고 하지만, 태어난지 6주 이전의 아기에게는 관대하게 자원을 베풀어주는 느낌이다. 나는 공공 간호사의 도움을 받고 있다. 간간히 연락을 하면서 내 상태를 확인해준다. 어느 날은 공공 간호사에게 내가 흘리는 피가 일반적인 건지 물어봤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출산 후 첫 3-4일간은 피가 많이 나오지만, 이후에는 갈색의 피가 나온다고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에게 피를 너무 많이 흘리고 있고, 911을 부르라고 했다.


응급차를 불러본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가족차를 타고 응급실에 갔다. 낮 시간에 도착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 곳에서 6시간의 대기시간을 기다린 끝에야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제왕절개 일주일만에 6시간 앉아서 기다린다니.. 최악이었다. 처음에는 신생아와 2살배기 딸도 같이 응급실에 왔다가, 기침하는 환자가 너무 많아서 집으로 후퇴시켰는데, 내 출산 인생에 가장 잘한 일 같았다. 간단한 검사와 함께 다음날 초음파 검사를 해보자는 소견을 듣고 집에 귀가했다.


6시간을 기다리며, 나는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연락을 다 해보았다. 산부인과에서는 '출산 이후 일은 우리 소관이 아니기 때문에 도와줄 수 있는게 없어요'라고 했다. 하지만 수술의 오피스에서 (이 병원은 자연분만을 하는 선생님만 있는 산부인과가 있고, 외부에 독립되어 제왕절개만 하는 수술의가 따로 있다.) 이곳의 자연분만 선생님(Dr. L이라고 하겠다.)에게 연락을 해주었고, 병원에 있는 Dr. L 은 나에게 전화를 해주었다. 내가 병원에 있다고 하니, '지금은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걸을 수 없으니, 또 다른 수술의를 그쪽으로 내려보낼게요. 앉아 계세요'라고 해주었다. 하지만 곧 온다는 수술의는 몇 시간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고, 결국 그녀의 얼굴은 보지 못한채 집에 돌아갔다. 내가 Dr. L에게 다시 연락을 하려고 했지만 그 누구도 나를 그 분과 연결시켜주지 않았다. 캐나다에서 의료가 분업되면 얼마나 최악인지 새삼 느꼈다. 응급실에서는 Dr. L의 존재를 아예 모르고 있었다.


다음 날에는 초음파 검사를 하러 갔다. 제왕절개를 한 부위에 젤을 바르고 검사를 했다. 검사를 해준 사람은 하필 학생이었고 그 때문에 더 오랫동안 초음파를 찍었던 것 같다. (여기서는 초음파를 꽤 오래 본다. 산모일 때에도 우리나라에서는 5분만에 끝내는 초음파를, 30분 내내 찍었던 기억이 있다.) 그녀가 초음파를 끝내고, 그녀의 사수가 와서 다시 한 번 검사를 해줬다. 제왕절개 부위를 계속 보는 탓에 아파서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그리고 나는 그 초음파 결과를 보기 위해서 또 의사 선생님을 4시간동안 기다렸다.

(여기서는 초음파를 찍는 사람이 있고, 이 사람이 찍은 사진을 토대로 결과를 분석하는 의사가 있고, 이 자료가 내 담당 의사한테 넘어가고, 담당 의사가 나에게 설명을 해주는 구조다.. 이전날에 응급실에서 이 초음파를 요청했기 때문에 내 담당 의사는 자연스럽게 응급실 의사 선생님이 되었다. 그래서 이 의사 선생님을 위해 4시간이나 기다렸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병원에 입원해 있는 기간인데.. 아기 낳은지 얼마 안되는 산모를 이렇게 고생시켜도 되나 경악스러웠다. 이 와중에 피검사를 위해 채혈을 하는 사람이 피를 못 뽑아서 바늘을 두 번 찔렸다. 그 전날에도 핏줄을 잘 못찾아서 두 번 찔렸는데.. 내 핏줄은 꽤 눈에 잘보이는 것이고, 큰 게 한 팔에 두개나 있어서 우리나라에서는 실패한 적이 없었다. 여기서는 숙련도의 문제로 보였다.


다행히 검사 결과는 이상 없음이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다는 에피소드는 공공 간호사와 나와의 의사소통에 있어 착각에 의한 결과물이었다. 쓸데없이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초음파를 한 번 더 보며, 내 몸에는 이상이 없을을 확인해서 마음이 놓이는 부분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말도 안되는 의료 시스템을 계속 된다. 지속적으로 나를 케어해줄 수 있는 의료진이 없는 탓에 진료기록을 모두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그냥 병원에 가면 되지만, 여기서는 패밀리 닥터라는 시스템이 있다. 패밀리 닥터가 없이는 아주 사소한 진찰이라도 받는데 제약이 아주 많다. 초음파 검사 결과 조차도 의사를 통해서 들어야하는데, 패밀리 닥터가 없으면 이 결과도 못들을 가능성이 있다. 새로 태어난 아기의 경우 신장에 문제가 있어서 초음파를 찍었는데, 이 결과를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현재는 내가 여기저기에 요청을 해놓은 상태다.) 하지만 산부인과 측에서는 '당신은 더이상 임산부가 아니리 때문에 의사 선생님과 예약을 잡아줄 수 없어요.'라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진료기록을 받으려면 무조건 의사 선생님을 보아야 한다고 했다. 이를 놓고 실랑이를 하다가, 의사 선생님이 쉬는 틈이 났을 때 짧게 보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다. 내가 직접 두 눈으로 선생님을 보고, 서류를 요청하면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이 분은 나이가 너무 많아서인지 프린트기를 쓸 줄 모르는 분이었다. 서류를 못 뽑아주는 것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리셉션에 요청하면 인쇄를 해줄꺼라고 했지만 리셉션은 내가 원하는 자료를 주지 않았다. 결국 내가 원했던 서류는 받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의사 선생님한테 새로 태어난 아기의 소아과 리퍼럴도 요청했지만, 이 분은 할 줄 모르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소아과를 가려면 리퍼럴이 필요하다.) 만약 내가 만났던 의사 선생님이 조금이라도 젊었더라면 이런 황당한 일은 없었을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여기서 제왕절개를 했을 때에도 보통 48시간 병원에 입원해 있는다고 알고 있다. 그 시간에 6~8시간은 더 있어도 1인실 요금에 추가요금이 붙지 않는다는 설명도 들었다. 하지만 나의 경우, 입원 30시간이 되기도 전에 간호사가 나에게 나가라는 압박을 주었다. 이 병원에서 나가면 더이상 의료 지원을 받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최대한 오래있고 싶은 것이 내 심정이었다. 하지만 간호사가 강경하게 나오는 탓에 제왕절개 1일 반나절만에 나는 집으로 퇴원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받았던 모든 친절했던 의료진은 기억속에서 사라지고, 캐나다 의료 시스템은 정말 엉망이라는 기억만 가슴 깊이 박히게 되었다. (20일 정도 후에 집으로 입원실 청구서가 날라왔는데, 1일분만 청구되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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