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출산은 마음대로 되지 않은 것이 참 많았다.
형제와 함께 자란 나는, 내가 그랬던 것 처럼 나도 남여 아이 하나씩을 낳고 살 줄 알았다. 하지만 나에게 찾아온 성별은 동성이었다. 당연히, 그냥 내 인생에 있어 둘째 아이는 첫째와 다른 성별의 아기일꺼라는 생각은 산산조각났다.
막달이 되어가니, 의사 선생님이 아기가 역아라고 했다. 자연분만이 어렵다는 소리를 듣고 바로 제왕절개를 해야지 생각했다. 캐나다에는 지인도, 친척도 없었기에 무조건 자연분만을 해서 일찍 회복하고 싶었으나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알아보지 않고 찾아갔던 병원은 나중에 알아보니 평점이 낮았다. 내가 사는 지역을 담당하는 병원은 밴쿠버가 아니라 캐나다 내에서도 아주 의료 수준이 높기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왜 내가 옆동네의 안 좋은 병원에 안착하게 되었는지 내가 참 멍청이 같았다. 내가 다니는 병원은 모든게 분업이 되어있었다. 서류 한 장을 요청하면, 자꾸 다른 분과로 보내고 뺑뺑이를 돌렸다. 아기를 낳고 나서 고생을 꽤 했다. 그래도 다행히 아기 낳을 때에는 지장이 없게 일처리를 해줬다. 사실 의료진은 대체로 친근하고 도움을 주고자 하는 분이 많았다.
첫째를 40주 이후에 낳았기에, 둘째도 문제 없을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왕절개 수술 날짜 이전에 양수가 터져, 응급 제왕을 하게 되었다. 아기 생일을 1일로 맞춰놨는데, 이것이 깨져서 내내 마음이 안 좋았다. 왜냐면 양수가 터진 이유가, 나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나 때문에 아기가 세상에 너무 일찍 나온 것 같았고, 또 생일을 예쁘게 만들어주지 못한 것 같았다.
양수는 브라질리언 왁싱을 받았던 날 터졌다. 첫째 때에 브라질리언 왁싱을 받을까 하다가, 의사 선생님이 하지 말라고 해서 안 받았던 기억이 있다. 둘째 때에는 조금 더 긴장이 완화되기도 했고, 친구가 아기 낳을때 꼭 추천한다고 해서 받아보았다. 하지만 왁싱을 받고 1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이슬이 맺혔고, 3시간 여만에 양수가 터졌다. 다행히 이슬을 본 순간 병원에 갔기 때문에 응급 제왕을 했더라도 그렇게 1분 1초를 다투지는 않았다. 역아였기에 자연 분만이 어려워, 사실 위급 상황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태어난 아기는 뱀 눈을 가졌다. 아무리 뱀띠라고 해도, 뱀 눈이라니.. 내가 정말 싫어하는 눈이었기에 현실로 느껴지지 않았다. 아기는 크며 눈이 예뻐질 꺼라고 아직도 기대하고 있다.
늦은 나이에 캐나다에 워킹홀리데이를 오며, 나는 여태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하며 살았다. 하지만 이번 출산 만큼은 꽤나 내 마음대로 된 것이 없어 보였다. 같은 시기에, 내 인생에 상상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이전에 미국에 박사를 갈 수 있도록 한국에서 장학금을 받아놓은 것이 있었다. 나는 MIT말고는 다른 학교는 안중에도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같은 과 교수님들이 왠만하면 이 학교 출신이기도 했고, 나 역시 가장 좋은 대학에 가야지라는 생각이 굳건했기 때문이다. 장학금은 박사과정에 대해 지원해주는 것이었는데, 내가 이번에 MIT의 석사 과정에 지원서를 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냈다. 즉, MIT는 원서 지원 시도도 해보기 전에 물건너 가버린 셈이었다.
이번 시기가,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오히려 가장 마음대로 안 되고있는 시기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는 '다 갖췄으면서 3% 부족하다고 불평하지마!'라고 했다. 그 말도 맞기는 했다. 미래에 지금을 돌이켜보면, 참 반짝반짝하고 아름다운 추억일 것 같았다. 그리운 과거가 될 텐데, 왜 나는 현재에 불만족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