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사람이 되어본 날

by 박모카

나는 '잘 못 알아듣겠어요'라는 말을 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 특히 일을 할 때에는 말이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에, 잘 모르는 것이 있다면 '이것에 대해 알려주세요'라고 할 법도 한데, 나는 이런 상황이 올 때마다 꼭 그렇지 않은 '척'을 하곤 했다.


실시간 통역을 하다보면 이런 '척'이 통하지 않는 순간이 온다. 말을 바로 통역해야 하는데, 통역을 할 수 없다면 바로 들통나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통역을 하면서 사전도 찾아보고 임기응변을 펼치지만, 한 번은 정말 어려운 통역 의뢰가 들어왔던 적이 있었다. 나에게 생소한 제도의 MOU를 맺는 조항을 실시간 통역하는 내용이었다. MOU의 주제나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일단 통역을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조항을 읽기 시작하자, 이들이 정한 단어가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personal assistant를 PA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 단어는 통역하기 꽤 어려웠다. 왜냐면 개인 비서로서의 역할을 하는 사람인지, 간호인을 지칭하는 것인지 기본적인 맥락이 주어지지 않아서 흐름이 통 파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미국 내 기관 등을 줄여서 말하는 약어, 지칭어 등은 계속 등장했다.


나는 알았다.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정중하게 말했다. '저는 이것을 통역 할 능력이 안돼요. 다른 사람을 알아보세요.' 평소에 일 욕심이 많던 내가 일을 포기했던 순간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하지만 혼자서 끙끙 앓느니 진실되게 나는 못하겠다고 말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솔직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약간의 꺼림직함이 있었다. 일을 못하겠다고 하면 쿨하게 놔줄 줄 알았던 상담사가, '이전 통역사도 전화를 끊어버렸어요.'라며 완곡하게 도와주기를 부탁했다. 의외의 답변이었지만 그럴듯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전문 용어를 실시간으로 통역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내 시급의 10배는 더 받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정 그렇다면 나도 최선을 다할테니 한 줄 한 줄 천천히 통역을 시작해보자고 했다. 처음부터 '나는 이걸 할 능력이 없어!'를 밝히고 일에 들어가니 마음이 정말 후련했다. 명확하지 않은 부분은 마음껏 다시 말해주기를 요청했다. 문장을 다시 들으니, 생각보다 어려웠던 것이 아니군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에 문장의 맥락을 파악한 다음, 다시 말해달라고 해서 디테일한 부분을 짚으면서 가니 나도 이 일이 가능했다. 오히려 생각보다 통역이 잘 되어서 나도 놀랐다. 하지만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긴 했다. 30분 이상 양해각서의 조항을 통역하고 있으니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현상을 발견했다. 하지만 상담사도 만족했는지, '이참에 아내분의 MOU도 진행할까요?'라고 먼저 물어봐서 깜짝 놀랐다. (보통 상담사 측에서 '내가 뭘 더 도와줄게!'라고 얘기하는 부분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보통 통화 끝내기 전에 '또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라고 묻기만 할 뿐.) 이런 류의 통역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없었으면 이런 말이 나올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일을 하면서, 내가 약점을 들키지 않으려고 끙끙대며 일에 투입되었다면 통역의 퀄리티는 훨씬 떨어졌을 것이다. '조항을 다시 읽어주세요' 라고 요청하는 것이 미안해서 나혼자 곤란해 하는 상황이 무조건 왔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약점을 미리 공유하고 나서 일을 시작하니, 사람들은 나를 도와주려고 했다. 한국인 의뢰자도 상황을 이해하고 인내있게 받아들였다. 내가 버벅여도 관대한 태도로 수용해주니 자신감도 생겼다. 근로자로서 일을 하는 문화는 우리나라보다 해외가 훨씬 마음이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고객의 입장으로서는 한국이 훨씬 좋다.) 평소에 나는 사람들한테 창피한 것이나 불리한 것은 무조건 숨기는 습성이 있었는데, 이번을 계기로 솔직해지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하고 안정되는구나 라는 점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나에게 불리한 것도 미리 양해를 구해놓고 무언가를 시작한다면 항상 마음이 편했던 것이 기억났다. 예를 들어, 캐나다에 워킹 홀리데이를 올 때에도 미리 '저 임신했는데 가도 되나요?' 확인해놓으니 이후에도 엄마로서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다. (물론 일하던 식당에서 요청이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만약 사장님이 오지 말라고 했으면, '그 때 말하지 말껄'하고 후회를 했을까?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미래에 마음 고생을 끙끙 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깔끔하게 정리를 해놓고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이 마음에 평화가 오는 방법이라는 것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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