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리즘에 빠졌을 때

by 박모카

통역사로 일을 하고, 첫 한 달간은 오히려 영혼없이 콜에 들어가게 된다. 사무적인 말투로 말하다보니, 한국인으로부터 "한국인 아니죠?"와 같은 질문을 받았다.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다고 느꼈나보다. 그 이후부터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에 대해 신경을 쓰게 되었다. 의도했던 것과 다르게, 이후부터는 쭉 "친근한 목소리가 좋아요"라는 통역사 품질관리 코멘트를 받았다. 그렇게 평가가 좋은 통역사 타이틀을 가지고 일을 할 때였다.


콜에 들어가는 만큼 정산을 받으니, 꽤 미래를 한정적으로 보게 되었다. 내 시급이 올라봤자 많이 오르지는 않을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한계가 보였다. 또 다시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일까'라며 답이 없는 질문을 해댔다. 친절한 목소리를 씌운채 영혼 없이 일을 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일반적으로 미국 의료진은 대부분 아주 친절한 편이다. 그런데 유난히도 더 친절해 보이는 간호사가 있었다. 할머니께서 예기치 않게 대변을 누시자 "와 저보다 빨리 누시네요"라며 폭풍 칭찬을 하던 분이었다. 그는 어제 밤에 운전을 하며 해당 환자를 위해 기도했다고 했다. 뭔가 진심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신기하기도 하고, 나도 같이 몽글몽글한 감정이 동기화 되었다. 콜을 끝내려 하니 나한테도 "Thank you, you are the best!"라고 하셨다. 이상한 감정을 느끼며 전화가 끊기자, 나는 "STOP CALLS"버튼('콜을 더 받지 않을게요'라고 상태를 변경하는 버튼)을 누를 수 밖에 없었다. 여운을 느끼기 위해 잠시 쉬는 시간이 필요했다. 행복 바이러스가 있다면 랜선을 통해 나에게도 전염이 된 것 같았다.


얼굴에 웃음기가 번졌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소소한, 소중한 행복감이었다. 그리고 매너리즘에 대한 답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매 순간 순간을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 내 감정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부분에서 행복을 찾는 것도 중요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 여유를 가지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도구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목표도 중요하지만, 여정 그 자체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태도. 태도. 매너리즘에 빠져서 무감정 상태가 되었을 때에는 나의 태도를 되돌아 보는 것이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포인트는 '나'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 맞추는 것이다. 매너리즘은 나에 너무 몰입되어있는 상황에 찾아오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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