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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롱 May 14. 2023

이탈리아 남자 게스트와 첫날밤

이런 식의 첫날밤은 처음이다

이탈리아에서 게스트가 왔다. 게다가 처음으로 받아보는 남자 게스트. 셀프로 체크인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서 나는 그에게 내 카카오톡 계정 정보를 알려줬다. 곧 프로필에 호방한 이탈리아 사람의 프로필이 떴다. 내 카톡 친구 목록에 낯선 외국인의 얼굴이 뜨니 그것 참 새로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막상 게스트가 온다고 하니 부담스럽고 뭔가 준비가 덜 된 것 같은 느낌을 저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몇 번이고 게스트룸을 정비했다.


게스트는 혼자 체크인하기가 쉽지 않다고 느꼈는지 예상보다 더 늦게 체크인을 했다. 그가 도착한 시간은 얼추 내 퇴근 시간과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더 빨랐다. 게스트는 낯선 한국 땅에서 작은 나의 집을 찾으면서 혹시라도 잘못된 곳으로 갈까 봐 몇 번씩이나 확인 문자를 보냈다.


‘이 지번이 너희 집 맞니?‘

'지도는 여기가 맞다고 하는데?'

‘내가 사진 찍었는데 여기가 너네 집이야? 좀 봐줘.’ 이런 식으로.


그리고 마침내 나보다 먼저 집에 들어온 그는, “I win, done.”이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어서 의자에 놓아둔 선물을 찾았는지 고맙다며 인증샷을 보내줬다.


그래, 나 참 스윗하지



이탈리아 게스트에게 

선물을 받다


내가 도착했을 때, 그는 침대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이탈리아 말로 ‘챠오’ 하고 먼저 인사를 건네자 반갑게 웃으며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를 꺼냈다. 내 선물을 사 왔다며 큰 캐리어를 뒤적거리며 무엇인가를 찾았다.


“와. 이거 시칠리아 와인이잖아.” 나는 그 선물을 보자마자 감탄하며 말했다.

“와인 마셔? 화이트 와인이야. 네가 좋아할지 모르겠어. 좋은 와인이야. 그리고 이건 아몬드 초콜릿." 

게스트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고 맛있다고 생각하는 브랜드라며 초콜릿을 건넸다.


나 역시 내가 준비한 선물을 소개했다.

"이건 쌀과자, 이건 김."

뭐라도 더 설명을 했으면 좋으련만 그 이상의 내용이 생각나질 않았다. 그러자 게스트가 쌀과자라면 이미 먹어봤다면서 너무 좋아한다고 해줬다.


이것은 맛있는 시칠리아 아몬드 초콜릿

지금까지 6개월 간 공유 숙박을 해보면서 한 번도 게스트가 나에게 선물을 사 온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게스트는 마치 나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친구처럼 대했다. 그리고선 저녁 먹었는지 물었다.


보통 나는 게스트가 오는 날에 저녁 식사를 밖에서 해결하고 들어간다. 낯선 사람이 있는 곳에서 북적거리며 부엌을 쓰지 않기 위해서다. 게스트가 조용하고 편안하게 우리 집에서 머물렀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그래서 이번에도 간단하게 밥을 먹고 들어갔다.


그런데 게스트는 나에게 혹시 저녁 안 먹었으면 같이 먹을 수 있는지, 혹은 주변에 좋은 식당을 추천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뭘 추천해야 하지? 우리 집 근방에 그 시각 여는 곳은 술 마시는 장소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김밥이나 떡볶이를 먹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그는 한국이 처음이라 음식 종류에 대해 전혀 알고 있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 동네가 한국에서 꽤나 핫플이라는 것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역으로 게스트에게 함께 동네를 돌아보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했고 그는 내 제안에 즐거워하며 엄청 고마워했다.



깜빡했다. 

이 사람 젓가락질 못하지


우리는 불금을 위해 나온 젊은 친구들의 사이에 끼어서 여행을 하듯이 돌아다녔다. 우리 동네라고 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우리 집 근방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나 역시 보이는 대로 이것저것 추천을 했다.

게스트는 '완전 한국 음식'을 먹어보고 싶어 했는데 오후 8시가 늦은 시각에 먹을 수 있는 한국 음식이 무얼까 싶었다.


바로 앞에 '김밥천국'이 보였는데 뭔가 애매했다. 그래서 그 옆의 '북촌 손만두'에 갔다. 그런데 게스트가 '만두'는 중국음식이라고 완전 한국 음식이 아니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래서 또 그 메뉴는 보류하게 되었다. 갈팡질팡 하다가 내 눈에 '육쌈냉면'이 보였다. 그래도 한 때 유행했으니까 이거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서 게스트에게 한번 시도해 보지 않겠냐고 물었는데 그가 흔쾌히 좋다고 했다. 우리는 술집이 즐비한 길거리에서 한국식을 찾다가 얼떨결에 냉면을 먹게 되었다.


그런데 아뿔싸. 냉면이 나오고 나서 그가 당황하는 모습이 보였다. 젓가락이라는 것을 처음 접해보는 그는 그걸 어떻게 쥐어야 하는지를 몰랐다. 나한테 시범을 보여달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도와주긴 했지만 처음 하는 젓가락질로 냉면과 고기와 무쌈을 같이 집는다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젓가락으로 파스타를 집는 건 처음이네. 물이 차가워! 몰랐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주 서투른 젓가락질로 육쌈냉면을 먹었다. 도저히 안 되겠길래 나는 포크를 가져다줬는데 미끌거리는 면 때문에 포크로도 음식을 집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같이 나오는 고기만 다 먹고 냉면을 절반도 먹질 못했다. 그가 냉면 육수를 자신의 티셔츠에 다 튀어가며 젓가락을 썼다가 포크를 썼다가 도무지 안 되어 손으로 집어 먹는 것을 보면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다. 하지만 나의 우려와는 다르게 그는  새로운 음식을 먹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뻐했다.


우리는 육쌈냉면이라는 그 번거로운 작업을 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각자 하는 일에 대해서 얘기하고 어느 나라를 여행했는지에 대해 묻고 대답하기가 이어졌다.



다행이다, 

계란빵이 있어서 


육쌈냉면을 먹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 포장마차에서 계란빵을 팔고 있는 것이 보였다. 게스트는 내게 '우와' 하면서 저게 뭐냐고 물었다. 요즘 포장마차에 영문 표기도 적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나는 표기에 쓰여있던대로 '에그 브레드' 라고 알려줬다. 그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계란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그걸 먹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나랑 나눠 먹어야지 먹을거고 아니면 안 먹겠다고 했다.(이건 무슨 말?)


그래서 우리는 한 개를 사서 나눠 먹기로 했다. 젓가락을 안써도 되는 음식이라서 다행이었다. 그는 계란빵을 먹으면서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옆에서 파는 떡볶이나 순대, 튀김을 먹을꺼냐고 물었는데 그건 또 싫단다. 어쨌든 우리는 육쌈냉면에 이어 계란빵을 먹으며 밤거리를 돌았다. 


육쌈냉면을 아주 어렵게 먹었던 게스트는 순식간에 계란빵을 다 먹었다.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어보이며 너무 맛있다고 말하는 그 순간에 계란빵이 얼마나 고맙던지.


대화를 하다가 '최근에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얘기를 했고 그는 자신이 글로벌 기업에서 리서치를 맡고 있다 답했다. 나는 스타트업 마케터이면서 웹소설 쓰는 작가라고 했다. 그가 대뜸 무슨 소설을 쓰냐고 하길래 최근에 구상한 AI관련 소설이라고 대답을 했다.


"AI? 나 AI 리서치를 해." 우리 둘 사이에 뜻밖에도 인공지능이라는 공통 분모가 생겼다. 그래서 한번도 그려본 적 없는 외국인과의 인공지능 토론을 하게 되었다. 그는 내 소설의 스토리에 대해서 궁금해 했다.


"그건 AI와 인간 사이의 애정에 대한 얘기야." 최대한 쉬운 단어로 설명을 하면 그랬다.

"너는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니?" 그의 그 질문에 멈칫하긴 했지만 나는 "이건 소설이니까." 라고 답했다.


내 대답에 그는 "나는 인공지능에 대해 조사하고 일하고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될 것 같진 않아. 일단 몸도 없고 감정도 없으니까. 오히려 인공지능이 발달할수록 인간이 더 컴퓨터화 될 것 같아. 예를 들어, 나중에 사람들이 죽을 때 자신의 뇌를 복사해 다른 기계에 넣던가 하는 그런 식의 세상은 가능할 것 같아" 방금까지 육쌈냉면과 사투를 벌였다고 하기에는 너무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그는 나에게 인공지능에 대한 얘기를 해줬다.


절반의 이해와 절반의 넘김으로 대화가 이어졌다. 어려운 단어는 손짓 발짓으로 매꿨다. 그렇게 우리의 인공지능 얘기는 제법 오래 동안 진지하게 흘렀다.


나는 늘 궁금한 것이 있어서 전문가인 그에게 물어봤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뇌를 복잡해서 사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아니면 그 반대야?"

그러자 그는 갑자기 멈춰서며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그건 철학가에게 물어봐야지." 라며 껄껄댔다.


계란빵을 다 먹고나서 집에 오는 길에 마트를 들러 장을 봤다. 이것도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게스트가 달걀, 요거트, 땅콩을 사는 것을 도와주며 음식을 나눠 들어 집으로 돌아왔다. 게스트와의 예상치 못한 전개다.


"서울에서 너네 집을 찾아서 정말 다행이야. 내가 어떻게 이런 로컬 사람을 찾았지?" 

"이건 정말 새로운 경험이야. 내가 어떻게 이탈리아 남자랑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있담."


우리는 둘 다 웃으며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게스트에게 수건과 프라이팬, 수저, 소금 등을 챙겨주며 나는 호스트의 책임을 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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