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혼성 게스트하우스로 바꿔봐?
처음으로 외국 남자와 숙박 공유를 하게 되었다. 게스트를 만나기 전에 했던 우려와 달리 예상보다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게스트는 외향적인 사람이었다. 어떻게 표현해야 가장 잘 들어맞을까? 나는 그를 호방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활달하고 친근함을 넘어서 거리낌이 없는 사람...
평소 하이킹을 즐긴다는 게스트는 내게 서울에게 제일가는 하이킹 성지가 어디냐고 물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바로 북한산을 추천했다. 그리고 북한산 정상까지 가는 하이킹 경로를 찾아 링크를 보냈다. 그는 사진만으로도 북한산이 꽤나 맘에 들었나 보다. 그래서 당장에 북한산 하이킹을 가겠다고 했다.
“진짜 거기 가려고?” 내가 다시금 묻자 그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답했다.
“북한 - 거기 갈 거야.”
그는 어눌한 한국어를 발음하며 하이킹에 대한 기쁨을 표했다. 그의 대답에 나는 알릴 것은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북한 노노, 북한산 예스, 북한 앤 북한산 베리 디퍼런트.”라고 해줬다. 북한은 North Korea 북한산은 The name of mountain. 이렇게 덧붙여 설명을 해주자 게스트는 자지러질 듯이 웃었다.
“하마터면 북한 갈 뻔했네. “
외국인들과 만나면 빠질 수 없는 게 북한 얘기다. 그들은 해외 언론 보도를 통해 한국의 소식을 접하기 때문에 북한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인지 북한과 관련한 얘기를 농담으로 던지면 대부분 흥미로워하고 좋아한다.
다음날 게스트는 8시간 하이킹을 예정하고 있다고 말하며 2리터짜리 생수를 샀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8시간 공복으로 산행을 한다는 것은 매우 고단한 일, 이 사람 북한산을 너무 쉽게 보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나는 게스트의 건강한 하이킹을 돕고자 북한산 초입에서 꼭 구매해야 할 것들을 말해줬다.
“일단 산에 올라가기 전에 슈퍼마켓 가서 김밥을 사야 해. 그래야 정상에서 먹을 수 있으니까. 거기서 다들 점심을 먹을 거야.” 그러면서 김밥을 검색해 보여줬다. 김밥을 접힌 적 없는 게스트는 땡큐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걸 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대화를 마치고 혼자 나와 집 근처 김밥 맛집에 들렀다. (이 무슨 오지랖이냐며;)
우엉이 많이 들어간 김밥 한 줄을 돌돌 말아 검은 봉지에 쌌다. 그리고 다시 게스트의 방문을 두드렸다. 방금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친 그가 들어오라고 했다.
“이거 봐, 북한산 정상에서는 이걸 꼭 먹어야 해.”
“나를 위해 사 온 거야? 오. 아직 따뜻하네.” 그의 호방한 눈망울에서 고마움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그는 두 팔을 열어 나를 허그했다. 쭈뼛하긴 했지만... 어쨌든 나는 그의 고마움을 마음으로 느꼈다.
무려 8시간의 산행을 하고 돌아온 그는 내게 수건을 부탁했다. 나는 예쁜 라탄 바구니에 미리 수건 두 장을 넣어둔 터였다. 하지만 그는 수건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나가 더 필요하다는 거야?” 내가 이렇게 말하자 게스트가 답했다.
“응. 하나 더 “ 나는 여성전용 게스트룸의 면모에 어울리는 핑크색 얼굴 수건 한 장을 게스트에게 건넸다. 그러자 그가 난감하다는 듯이 날 쳐다봤다.
“이걸로는 다 가릴 수가 없잖아. 어떻게 가려. 앞 뒤로?” 그러면서 그는 두 개의 수건을 몸 앞뒤에 두어도 자신의 몸을 전부 가릴 수 없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 그런 그의 아이 같은 행동에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대답 없이 웃기만 하자 게스트는 한 술 더 떠 “네가 보면 어떻게!” 라며 두 손을 자신의 양볼에 갖다 대며 놀라는 척을 했다.
“절대 보고 싶지 않아.” 나는 웃으면서 호언장담을 했다.
그래서 게스트가 머무는 동안 우리 사이에는 암묵적인 룰이 생겼다. 누군가 먼저 샤워를 한다고 얘기했을 때,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사람이 모든 일을 마치고 방에 들어가기까지 나오지 않기로. 혹시나 하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그는 샤워를 시작하고 마치는 것도 메시지로 보내줬다. 심지어 화장실 변기의 누르는 버튼이 어디 있는 것까지 메시지를 통해 물어왔다.
그렇게 2박 3일 간 남자게스트와의 공유 숙박은 마무리가 되었다. 마지막 체크아웃 시간에 짐 정리를 하면서 나는 평소와 다르게 살짝 아쉬움을 느꼈다. 마치 친구가 놀러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체크인을 할 때의 그 소란하던 게스트도 체크아웃은 얼마나 순조롭게 잘하던지. 그는 벗어놓은 신발을 어색하게 다시 주워 신으면서 내게 See you soon이라는 인사를 건넸다.
“그래요. See you again."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는 게스트에게 나 역시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리고 12시간 즈음 지났을까, 그의 후기가 올라왔다.
“친절하고 늘 도움이 되었던 호스트, 너무나 추천합니다.”라는 메시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