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초롱 May 11. 2023

처음으로 이탈리아 남자 게스트를 받아보았다

여성 전용 숙박이라는 타이틀에도 메시지를 보낸 게스트

나는 6개월 전부터 내 방을 공유하며 지내고 있다. 옷 방이자 창고로 쓰이던 공간을 정리해 게스트룸으로 꾸며 주말마다 게스트를 받고 있다. 남자와 한 공간을 공유하며 지낸다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해 여성 게스트만을 받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한 남성 게스트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콘퍼런스를 위해 서울에 갈 에정입니다. 저는 이탈리아에서 온 컨설턴트입니다. 콘퍼런스 기간 동안 호텔에서 머무를 예정이지만 이후 이틀 동안 머물 곳이 필요합니다. 제가 머물고 싶은 지역 근처에는 이 숙소 밖에 없습니다. 숙녀분들만 있다고 적혀 있어서 여쭤봅니다. 저는 조용하고 깨끗하며 잠만 잘 것입니다. “ 


번역체의 문장 속에서도 정중한 느낌을 받은 데다가 상대도 숙박 공유를 하고 있다고 밝혀와서 나는 이 게스트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게다가 나는 개인적으로 이탈리아를 무진장 좋아한다. 코로나 전에 3년 정도 이탈리아어를 공부했을 정도다. 내가 배운 언어를 써먹을 절호의 기회였다.


물론 그의 메시지를 받고선 잠깐 ‘위험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 걱정보다는 이탈리아에 대한 호감과 메시지의 정중함 때문에 게스트를 초대하기로 했다. 그래서 내친김에 그에게 이탈리아어로 답장을 보냈다.


Quando viaggio in l'italia, molte persone mi aiutanto.(내가 이탈리아 여행할 때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도와줬어요.)


이 멘트를 포함해 어렵사리 내용 적어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하이킹 코스를 추천해 달라는 게스트에게 북한산과 인왕산 코스를 추천해 주었다.


알고보니 이 게스트는 시칠리아에서 사는 사람이었다. 코로나 이전, 나의 마지막 여행지가 바로 시칠리아였기 때문에 나는 신이나서 시칠리아 여행 이야기를 했고 숙박과는 상관없는 여행 얘기를 몇 차례 하며 수다를 떨었다. 북한산과 시칠리아의 에트나 화산 둘 중 어디가 올라가기 더 어려울까를 얘기하다다가 결론을 짓지 못하고 대화를 종결지었다.


그런데 며칠 전, 다시 게스트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안녕하세요. 며칠 안에 서울로 가는 항공편을 이용할 예정입니다. 정말 기대됩니다. 수건을 가져와야 하는지 아니면 주실 수 있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뭔가를 가져다 드릴까요? “


숙박공유를 한 이후 이런 메시지를 받기 처음이었다. 무엇을 가져다준다니... 그 말만으로도 고마웠다. 하지만 딱히 생각나는 것도 없고 설령 말을 한다고 해도 상대에게 부담이 될까 그냥 괜찮다고 답했다. 그런데 이탈리아 게스트의 이어지는 답변은 이렇다.


“제가 직접 선물을 선택해 가겠습니다. (마실 수 있는 것으로) 하지만 언제든지 제안을 해주셔도 되어요.”


게스트가 보내온 문자 덕에 나도 마음이 활짝 열리는 것 같다. 마실 것을 사 온다는 것은... 이탈리아 와인일까? 머릿 속에 이탈리아의 근사한 와인이 생각났다. 게스트가 선물을 가져온다고 하니 나도 더 꼼꼼하게 집을 챙기게 된다. 그리고 나 역시 한국에 처음 오는 이 게스트를 위해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해야지 싶어 쌀과자와 김을 준비했다. 그리고 작은 메모도 썼다.


“Benvenuti, è regali. (반가워요. 이건 선물이에요)”라는 짧은 이탈리아어로 된 메모를 의자에 올려 두었다.

Benvenuti의 ‘B’를 ’V’로 쓰는 실수


이제 내일이면 게스트가 도착한다. 벌써 많은 대화를 나눠서인지 마치 친한 지인이 놀러 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집에 게스트가 와도 인사 이상으로 별 것 없고 가끔 얼굴 마주하면 ‘헬로’ 하는 것이 전부인데. 나는 세상의 게스트들과 한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여행을 하는 느낌을 받는다.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탈리아 게스트 이후로 다른 외국 게스트들의 예약이 계속 연달아 생기고 있다. 그에 따라 나의 일상이 점점 글로벌해진다. 외국인들과의 소통을 위해 어제는 집안 조리기구의 사용법을 영문으로 작성해 붙여 두었다. 물론 대부분 구글 번역기와 파파고의 도움을 받고 있다.


내일 게스트와 어떤 얘기를 나눌까? 그리고 그는 한국에서 무엇을 할까? 내가 굳이 여행을 하지 않아도, 세상 속의 여행자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내 일상이 참 활기차다.




이전 02화 1인 가구이지만 혼자는 아닙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